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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아침을

오작교 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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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신선한 아침입니다. 간밤에 한줄기 소나기가 지나가더니 풀잎마다 구슬 같은 이슬이 맺혀 있습니다. 나뭇가지 마다 아침 햇살을 받아 더욱 투명한 초록으로 빛을 발합니다. 세상이 새로 열린 듯한 이런 아침은 일찍 깨어난 살아 있는 것들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입니다.

   나는 이 여름 앞뜰에서 풀 뽑는 일로 무심을 익히면서 풀향기 같은 잔잔한 기쁨을 누릴 때가 있습니다. 해가 뜨기 전 미명(未明)의 예감 속에서 그리고 해가 기운 뒤 산그늘 아래서 풀을 하나하나 뽑고 있으면 내 마음이 아주 한적하고 편안해 집니다. 방안에서 좌선을 하거나 독경하는 시간보다 훨씬 생생하고 그윽한 정신상태입니다.

   번뇌무진(煩惱無盡) 이라더니 잡초 또한 무진입니다.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이 돋아납니다. 한동안 오두막을 비워 두었다가 돌아오면, 앞뜰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손을 댈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채소밭에 돋아난 잡초도 매주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비워둔 빈집에 군불을 지피고 먼지 털고 걸레질 하고 이것저것 정리정돈 하려면 시간과 기운이 함께 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요령이 생겨 일을 한꺼번에 하지 않고 한 가지씩 차근차근 하기로 했습니다.

   마당의 풀 뽑는 일만 하더라도 그전 같으면 잡은 참에 지치도록 단박에 해치우고 나야 직성이 풀리곤 했는데, 요즘 와서는 조금씩 조금씩 전혀 부담 되지 않을 만큼씩만 합니다. 일에 쫒기지 않고 그 일 자체를 삶의 여백을 즐기듯 해 나갑니다. 풀을 뽑기 전에, 오늘 아침에는 이만큼만 하자고 미리 눈대중으로 금을 그어 놓아요. 일을 하다보면 재미가 붙어 번번이 그 경계를 넘게 마련이지요.

   장갑을 끼고 호미로 흙을 파서 풀을 뽑아냈는데 일을 하고 나면 마당이 밭처럼 일구어져 개운한 맛이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텁텁하고 답답한 장갑을 끼지 않고 맨손으로 뽑습니다.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쓰고 뿌리가 뽑히지 않은 것만 호미 대신 대 꼬챙이를 쓰니 밭처럼 일구어지지 않아 일이 적습니다.

   풀을 뽑으면서 문득 일어난 생각인데 우리가 인생을 살다가는 것도 이런 풀 뽑기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잇따라 풀이 돋아나듯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끝이 없습니다. 어떤 일에 마주 쳤을 때 미리 겁부터 먹고 엄두를 못 내거나 미리 무서워하면서, 미적미적 미룬다면 아까운 시간만 허송 하면서 짐스런 삶이 되고 맙니다.

   지금 마주친 이일이 현재의 나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하고 하나하나 삶의 의미를 음미하듯 헤쳐 나간다면 우리의 인생에서 극복 하지 못할 일은 없을 듯싶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간밤에 내린 비로 땅이 촉촉이 젖어 오늘 아침에는 풀이 아주 잘 뽑혔습니다. 일에 재미가 붙어 부풀듯 충만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저 풀을 뽑고 나서 싸리비로 뜰을 말끔히 쓸었더니 내 마음속 뜰도 아주 산뜻하고 말끔해 졌습니다. 그래요. 모든 일은 마음에서 시작해서 결국은 마음으로 귀착 됩니다.

   한 마음이 맑고 평안하면 그 둘레에 맑고 평안한 그늘을 드리우게 됩니다. 이와는 달리 한 마음이 흐리거나, 불안하면 그 둘레도 흐리고 불안한 기운으로 감싸게 되는 게 생명의 메아리입니다.

   이와같이 신선한 아침에는 번잡스런 일에 접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축복 받은 시간에 시끄러운 세상 소식에 귀 기울이거나 신문이나 잡지 같은 것에 눈을 파는 것은 모처럼 찾아온 축복을 밀어내는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명상 서적이나 경전의 한두 구절을 읽고 그 내용을 그날 하루치 양식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일 마치고 눈부신 초록의 햇살 받으며 개울가에 나가 흐르는 물을 한 바가지 떠 마셨습니다. 순간 산천의 맑은 정기가 내 영혼과 몸에 스며드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손을 모으면서 두런두런 이런 말들이 새어 나왔습니다.

   산하대지 (山河大地 )여, 고맙고 고맙습니다!

   이 오두막이여,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이토록 신선한 아침이여,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나이다!

   좁쌀영감 같은 잔소리 그만하고 몇 마디 소감을 전합니다. 우리는 우리 둘레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일에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얽혀 있습니다. 지난 7월 한 달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에 우리 모두가 짓눌려 그 고통과 울분을 나누어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오늘의 우리 얼굴이고 존재양식이라고 생각하니 그저 참담할 뿐이었습니다.

   정치꾼들은 마치 우리가 선진국의 문턱에라도 들어선 듯 착각하여 선정하고 있지만 선진국이 어디 말끝에 달렸습니까. 지은 지 5년밖에 안 된 건물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던 다리가 순식간에 폭삭 주저앉아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게 한 그런 참사의 요인이 우리 안에 세균처럼 만연되어 있다는 사실에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건물 주인과 건축업자, 그리고 부패 공무원에게만 부실 공사의 책임이 있을까요? 그와 같은 비리와 부정이 공공연히 관행화되고 거래된 이 사회에 몸담아 살고 있는 오늘 우리들에게는 그 책임이 없었을까요?

   책임이란 외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뿐 아니라 우리들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인다는 뜻입니다. 우리들 개개인이 심리적으로나 행동으로 무질서 속에서 살고 있는 한, 우리가 하는 그 어떤 일도 결과적으로 무질서를 만들어 냅니다.

   교통질서 하나만 가지고 보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자질과 속 얼굴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집안이나 직장에서는 어엿한 인격체가 일단 차량의 행렬에 끼어들면 난폭해지고 인격 부재의 뻔뻔스런 짓도 서슴지 않습니다. 안과 밖이 다른 것을 위선이라고 합니다. 위선은 무질서와 함께 일종의 사회악입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 악을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도 선진국을 꿈꿀 수 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선진국에 끼어들지 않더라도 좋으니, 사람인 우리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사람은 어디로 간 채 물건과 돈만 나도는 세상은 너무 삭막하고 비정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에는 그토록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온갖 얽힘과 갈등의 늪에서 벗어난 사람에게는 평안이 다릅니다. 그의 삶에는 새로운 지평이 열립니다. 새로운 시작이 없다면 사람은 누구나 진부하고 시들하고 굳어지게 마련입니다.

   책을 읽다가 눈에 띄는 구절이 있어 함께 음미하고자 옮겨 적습니다.

   "혼자서 자란 아이들은 혼자 살 수밖에 없도록 길들여져 있다. 그는 혼자 있는 것이 좋았고 그렇게 훈련되어 왔다. 혼자서 자란 아이들은 결국은 누구나 혼자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그래서 혼자가 되는 이런 순간을 맞닥뜨릴 것에 대비하여 미리 연습을 하면서 살아간다."

   현자들은 말합니다. 홀로 명상하라고. 그리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한번 지나간 일들은 기억에 담아 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이미 죽어 버린 일들입니다.

   우리들이 겪는 불행 중 어떤 것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기억들을 되새기는 데서 옵니다. 지나간 기억에 얽혀들거나 매달리면 현재의 삶이 소멸되고 맙니다. 그리고 홀로 순수하게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처럼 벗어난 갈등의 늪에 다시 뛰어들지 마십시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과 행위가 곧 내일의 나를 만들어 냅니다. 제자리에서 맴도는 타성과 게으름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악덕입니다. 일찍 깨어나 신선한 아침을 맞으십시오. 그래서 새로운 시작을 이루십시오.
 
<95 .9>
글출처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법정스님, 샘터) 中에서......
 
 
 

  
2016.11.28 (19:55:51)
[레벨:28]id: 코^ 주부
 
 
 

한 마음이 맑고 평안하면

그 둘레에 맑고 평안한 그늘을 드리우게 됩니다.   ..   . "평안하시죠"

 
(222.100.227.195)
  
2016.11.29 (07:25:47)
[레벨:29]id: 오작교
 
 
 

예. 코할방님.

덕적도 자연환경에서 잘 계시지요?

뵙고 싶습니다.

 
(183.109.15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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