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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삶으로써 무엇을 하려 하지 않는 자야말로 / 느림과 비움

오작교 2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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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지로 하지 않으면 하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애써 부귀와 공명을 쫓아 삽니다. 부귀와 공명이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좋은 집과 좋은 차를 타고 남의 섬김을 받으며 살 수 있는 것은 지상에서 누리는 복이지요. 하지만 그것을 억지로 하려고 들면 안 됩니다. 삶을 억지로 도모하는 것은 유위에 처하는 일이고 유위는 곤란을 불러들입니다. 그것은 노자가 삶의 최고의 기술로 여기는 무사, 무위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사는 자는 현명합니다. 그것은 삶을 인위로써가 아니라 휘돌고 감돌아 느릿느릿 저의 길을 찾아 나아가는 물과 같이 순리에 따르는 까닭이지요. 

 

   안성으로 내려올 때 친구 홍이종이 찾아와서 불쑥 옷 속에 품고 있던 것을 건네줬습니다. 슈나우저 종인 강아지는 마치 검정색 털 뭉치 같았지요. 시골 살림살이의 적적함을 걱정하는 친구의 마음씀씀이가 따뜻했습니다. 겨우 젖을 뗀 주먹만 한 강아지를 안고 시골로 내려왔습니다. 나중에 ‘포졸’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포졸이는 몸집은 작았지만 영리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문 밖으로 나가면 참새보다 더 작은 들쥐가 놓여 있곤 한데, 이것은 포졸이가 포획해서 제 주인에게 바치는 선물입니다. 음흉한 사람들이 어떤 대가를 바라고 주고받는 뇌물과는 다른 정말 순수한 선물이지요.

 

   그 포졸이가 며칠 전에 새끼를 낳았습니다. 만삭으로 부풀어 오른 무거운 배를 땅에 끌릴 듯이 하고 돌아다니며 힘겨워하더니 새끼를 낳은 것입니다. 새끼를 낳던 날은, 낮부터 포졸이는 애처롭게 울어댔고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했습니다. 그만큼 힘들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몽매한 주인은 새기를 낳느라 애쓰는 생명에게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어 무력했습니다. 다만 바깥에 있던 포졸이의 집을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보일러실의 어두운 구석자리로 옮겨주었습니다.

 

   해지기 직전에 옻샘 약수터가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오후 산책을 끝내고 돌아옵니다. 앞집 태정이네 파밭엔 파들이 무성합니다. 그 무성한 파밭을 지나며 돌이켜보니 ㅏ밭에 파랗게 자라고 있는 파만큼 나는 희망을 키우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엔 죽은 사람을 기리는 기일(忌日)이 파밭의 파만큼이나 많습니다. 파밭을 지나 걸어오는 내가 살아 있다고, 나와 독대(獨對)를 해야겠다고, 해거름엔 금광호수 일대로 바런거리며 어둠이 내려옵니다.

 

   산책을 다녀와서 보일러실을 들여다보았더니, 그새 포졸이가 강아지 한 마리를 낳아놓고 혀로 핥고 있었습니다. 포졸이는 새벽녘까지 새끼를 다섯 마리나 더 낳았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저 혼자 탯줄을 끊고 태반과 탯줄을 깨끗이 먹어치워 새끼들의 보금자리는 보송보송했습니다. 참 신기한 노릇이지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짐승들은 혼자 탯줄을 끊고 산후 뒤처리를 말끔히 하며 새기를 잘 건사합니다. 눈도 뜨지 못한 강아지들이 젖꼭지를 물고 있는 것을 보니 알 수 없는 감동이 온몸을 타고 전류처럼 흘러갑니다.

 

   건강한 새기를 여섯 마리나 낳은 산모를 위해 미역국을 끓입니다. 한집에 사는 식구가 새기를 낳았으니 산 구완은 당연한 몫이겠지요. 한 솥 가득히 끓인 미역국 한 사발을 먹기 좋을 만큼 식혀서 밥을 말아 내주었더니 포졸이는 금세 그릇 바닥까지 깨끗하게 핥아먹습니다. 포졸이에게 미역국을 가져다주고 돌아서는데 새벽하늘에는 크고 둥근 금빛의 달이 높이 떠 있습니다.

 

   밤나무 숲에서는 벌써 깨어 낳는지 수꿩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여기저기 뜯기는 것 많은 관급공사(官給工事) 같은 이 삶, 족쇄 찬 발로 걸어가는 것 같은 팍팍한 이 삶도 가끔씩은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얼굴에는 미소가 그려집니다. 가슴팍에 두 손을 합장하여 멀리 사는 당신에게도 안부 인사를 보냅니다. 나와 한집에서 사는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대추나무, 석류나무, 앵두나무, 노각나무, 층층나무, 꽃사과나무, 벚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수수꽃다리나무, 매화나무들의 안부인사도 함께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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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혜안나 2022.02.18. 14:21

순리에 기대어 걷는다는 것도

하늘을 품는 것만큼이나 큰 선물이라 생각하지요

가슴이 텅 비워져야 안기는 것이니 말이지요

 

아주 오래 전, 어느 수도원서점에서 '텅 빔'이라는 책 제목을 만나

손안에 들던 그순간의 설렘이 문득 가슴으로 와닿아

그 시절 미소속에 머물어봅니다

그저, 그저 감사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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