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에 쓴 맹세는 부질없고
젊은 날의 순정 또한 믿을 수 없다.
체념과 미련이 한 몸인 것을
이별이 다가와야 사람들은 안다.


   설령 누군가 함께 산다 해도 우리는 매 순간 이별한다. 자신의 생각과 이별하고, 자신이 믿었던 가치와 이별하게 된다. 이별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별은 때로 새로운 만남과 연결되며, 그 새로운 만남이 삶의 에너지가 될 때도 있으니까.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새로운 만남과 연결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이별의 아픔이 두려워 지금의 관계에 안주할 때가 많다. 익히 알고 있는 기지(旣知)의 세계에 익숙하여 미지(未知)의 세계가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어떤 관계이건 기쁨보다 갈등이 더 커지면 헤어지는 게 좋다. 설령 그것이 아픔을 가져온다 해도 마음을 혼란하게 만드는 인연은 인연이 아니니 거리를 두는 것이 현명하다. 우리가 꿈꾸는 사랑은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세상엔 꿈같은 관계보다 이겨 나가야 할 관계가 더 많다.

   진정한 사랑이 아닐수록 인연이 끝날 때가 되면 이것저것 상대를 미워할 이유를 찾게 된다. 사랑에 가려 보이지 않던 미움의 이유가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고, 점점 커진 실망은 증오의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사랑이라 믿었던 것이 다 거짓이라는 것을 우리는 그렇게 상대에 대한 증오를 통해 증명해낸다.

   그러나 사랑이 시작될 때와 마찬가지로 그것도 다 마음의 장난이다. 마음이 하는 일에 속고 있다. 내 안에 있던 욕망이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어떤 대상을 찾고 있었을 뿐 변한 것은 상대가 아니라 사실은 나인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별은 우주에서도 드물게 거대한 학습이 펼쳐지는 공간이다. 커다란 학교인 이곳의 공부 또한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 간에 차이가 나며, 사랑과 이별이란 과목 또한 예외가 아니다. 자신의 진도나 학습 상태를 늘 점검하며, 배운 만큼 익히고 복습해야 변화하고 성숙할 수 있다.

   한 번의 생에서 공부가 다 끝나지 않는 경우, 우리는 다시 이 별로 돌아와야 할지도 모른다. 꽃 피고 새 울 땐 아름답지만, 고통이 닥치는 순간 지옥 같아지는 이 별에 다시 돌아오고 싶은가?

   우리가 공부해야 할 수업 중 특히 인간관계는 예습과 복습을 더 정성들여서 해야 하는 과목이다. 살아가면서 그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코뿔소의 뿔처럼 그렇게 혼자서 나아갈 순 없으니까.

   매 순간 이별하진 또 매순간 만나며 살아가는 우리는 ‘관계의 쳇바퀴’에 갇힌 다람쥐 같은 존재들이다. 아무리 멀리 가도 다시 보면 그 자리에 돌아와 있고, 버리고 또 버려도 같은 것을 쥐고 있는 삶의 쳇바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길들어 있던 세계와 매순간 이별해야 한다.

글출처 : 나의 치유는 너다(김재진, 쌤앤파커스)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