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샘터

메마른 삶에 한 주걱 맑은 물이 되기를
  • 돌아가기
  • 아래로
  • 위로
  • 목록
  • 댓글

천하에 물보다 더 여리고 약한 것이 없다 / 느림과 비움

오작교 183

0

0

   물은 부드럽고 약하지만 굳세고 강한 것을 이깁니다. 무위에 머물기 때문이지요. 무위하면 하지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이른바 무위란 사물에 앞서서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대저 무불위란 사물이 하는 바를 따른다는 뜻이지요. 노자는 천하를 취하려 할 때도 언제나 무위하므로 해야 한다고 일렀습니다. 물이 그러합니다. 그래서 물은 도와 가깝다고 한 것이겠지요.

   태풍이 지나갔습니다. 밤중에 밖에 나와 서 있으면 비 뿌리고 바람이 거세게 불어 팔에 소름이 오스스 돋지요. 밤나무숲이 실연한 남자처럼 서서 온몸으로 바람을 받고 있습니다. 밤나무의 약한 가지들이 부러지고 잎들은 양철 조각처럼 소리를 내고 몇몇은 땅에 떨어져 내립니다. 어둠 속에서 부는 바람은 공포를 느끼게 합니다.

   오늘은 비 그치고 별이 났지요. 며칠 새 쏟아진 비로 호수의 물이 불었지요. 계곡에서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 물소리가 폭포 소리 마냥 청량합니다. 돌확 가득 번진 수련 잎새는 싱싱한 녹색을 머금었지요. 풀밭에 작은 풀벌레들 가로세로 뛰고 비 잔뜩 머금은 공중에는 떼 지어 잠자리 납니다.

   비 개인 뒤에 마당을 서성이다가 주석수가 지은 『유몽속영(幽夢續影)』의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사랑해보아야 미워할 만한 것은 알고, 미워해 보아야 아낄만한 것을 안다."

   집 안 공기가 습합니다. 몸에 거미가 스멀스멀 기어가는 듯 습기가 느껴집니다. 집 안 어느 구석에 퀴퀴한 냄새도 떠돌지요. 먼저 마음이 가라앉고 그다음에 몸이 뒤따릅니다. 우울한 일이 딱히 없어도 마음이 무겁고 습해지는 건 부력 줄어든 일조량 탓일까요. 몸 무거우니 입맛도 잃지요. 끼니때가 되면 뭘 먹어야 입맛이 돌아올까 하고 망설이지요. 고민하다가 고작해야 점심참으로 텃밭에서 딴 풋고추와 애호박과 햇감자를 썰어 넣고 멸치 우려낸 물에 칼국수나 끓여 먹게 되지요.

   점심은 먹은 뒤에는 집 뒤의 옻 샘 약수터로 산책을 나갑니다. 먼저 얼음 녹은 물처럼 차가운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몸에 땀이 밸 정도로 가볍게 운동하지요. 집에 돌아와 차가운 물로 땀 밴 몸을 씻은 뒤 저녁 무렵까지 선풍기를 들고 대나무 돗자리에 앉아 책을 듭니다. 안젤로 부란두아르디의 「칸타 예이츠」를 들으며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을 일곱 번째 읽거나, 예전 에 읽었던 이청준의 소설은 다시 꺼내 읽기도 합니다.

   며칠 전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밖에서 무언가를 탁, 탁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나갔더니. 웬 낯선 남자가 마당 가를 서성이고 있었지요.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남자는 뱀 잡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호수 쪽에서 풀숲을 더듬어 오다 보니 우리 집 마당까지 올라온 모양이었지요. 남자는 작대기로 웃자란 풀숲을 다 탁 두드리며 지나갔습니다. 머잖아 뱀 보겠구나 했지요.

 

   오늘 아침에 서재에서 나와 마당을 건너가다가 돌확 근처에서 뭔가 시커멓게 생긴 것이 잽싸게 움직여 달아났습니다. 뱀이었지요! 저도 인기척에 어지간히 놀랜 듯합니다. 뱀은 마치 장애물을 넘어 도약하듯이 풀더미 위로 몸을 솟구쳐 달아났지요, 돌확에는 노랑어리연꽃 잎이 풀을 다 가릴 정도로 가득 번졌습니다. 잘 닦인 녹색 잎 위로 영롱한 물방울이 수정처럼 빛납니다. 노랑 연꽃은 피었다가 한나절이면 꽃대가 주저하지 않지요. 발밑으로 청개구리 한 마리가 풀쩍, 풀쩍 뛰어갑니다.

   저는 잠시 마당 가에 서서 하얀 개망초꽃이 군락을 이뤄 핀 텃밭을 바라봅니다. 개망초는 거의 내 키 높이로 웃자랐지요. 아마도 뱀은 저 개망초꽃 흐드러진 곳 어디쯤 기어가고 있을 테지요. 연못을 만들기 위해 파놓은 웅덩이에 물이 가득 괴었습니다. 며칠 전에 감자를 수확한 밭에 미처 캐내지 못한 감자알 몇 개가 숨어 있겠지요. 빨갛게 익어 가지마다 다닥다닥 매달려있던 앵두들은 시나브로 다 떨어졌겠지요. 매양 꽃만 아름다운 건 아니지요. 꽃보다 더 아름다운 열매도 있고, 꽃보다 빛나는 잎새도 있는 법이지요. 잘 영글어 앵두 붉은 것이나 둥근 금귤 노란 것, 바람에 너울너울 춤추는 짙푸르러진 풀과 나뭇잎은 꽃 못지않게 불만하지요

   시골에 사는 즐거움은 여럿 있습니다. 우선 눈의 즐거움이 가장 크지요. 나무들 잎눈에 새잎 돈을 때, 홍매화와 모란꽃 필 때, 몰에 수련 잎 번지고 흰 꽃 터뜨릴 때, 밤하늘 가득 떠 있는 별 바라볼 때, 여름밤 반딧불이가 꽁지에 초록 인광을 달고 떠다닐 때 눈이 즐겁습니다. 그다음엔 귀가 즐겁지요. 뱁새 지저귀는 노래 들을 때, 집 가까운 둔덕에서 뻐꾸기와 꾀꼬리 울 때, 펼친 우산만큼 넓은 토란 잎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 들을 때 귀가 즐겁습니다.

   청나라의 문인 장조도 귀의 즐거움을 만끽할 줄 아는 사람임에 틀림없지요. 『유몽영』에서 이렇게 적었지요. "물에서 나는 소리에 네 가지가 있으니. 폭포 떨어지는 소리, 시냇물 흘러가는 소리, 여울물 지는 소리, 붓도랑물 흐르는 소리가 그것이다. 바람이 내는 소리에 세 가지가 있는데, 솔바람 파도 소리, 가을 잎 지는 소리, 물결치는 소리가 그것이다. 비에서 나는 소리가 두 가지가 있으니, 오동잎과 연잎 위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처마를 타고 죽통 속으로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그것이다."

   능히 세상 사람이 바삐 여기는 바를 등한히 하는 사람이라야 바야흐로 능히 세상 사람이 등한히 하는 바에 바쁠 수가 있다고 했지요. 저는 시골에 와서 마음에 쥐고 있던 많은 욕심을 놓아버렸습니다(정말 그럴까요? 불가피하게 욕심을 키우기보다는 욕심을 버리는 쪽으로 가고 있으니 이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랬더니 마음이 유순해지고 몸은 갖가지 즐거움에 예민해졌지요. 어느 날 환풍기 속에서 새소리가 났습니다. 신기하여라. 박새는 하필이면 주방 천장에 매단 환풍 장치 속에 둥지를 틀었지요. 밖으로 뚫린 구멍으로 들어와 어둡고 아늑한 자리에 둥지를 튼 것인데, 그게 환풍기 자리였던 것이지요. 이윽고 박새 부부가 알을 낳고 부화한 새끼들이 그 둥지에서 어미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먹으며 자랐지요. 무릇 시골에 살려는 사람은 새끼들이 날갯짓을 익혀 이 둥지를 떠나기 전까지 이 무단 점거자들을 놀래지 않기 위해 환풍 장치를 들지 않는 불편쯤은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새 얘기를 하나 더 해야겠습니다. 내 평론집 출간 일 때문에 들른 서울의 한 출판사 사무실에서 겪은 기이한 일이지요. 편집자와 한방에서 얘기하고 있는데, 창문으로 참새 한 마리가 포르릉 날아 들어왔지요. 참새는 책상 위에 놓인 책꽂이 위에 앉았다 한참 있더니 다시 편집자의 어깨로 날아와 앉았지요. 어깨를 타고 내려와 손으로 왔지요. 참새는 사람에 대한 아무 두려움도 없는 것 같았지요. 오히려 손가락에 반지를 부리로 툭, 툭 건드렸지요. 이게. 뭐지? 손가락에 뭐 이런 걸 다 끼고 있어? 하는 투입니다.

   두 사람은 신기한 이 사태에 말없이 갑자기 날아든 작은 참새의 분주한 행태를 관찰했지요. 제가 손바닥을 펼치자 참새는 조르르 날아올라 손에 앉았지요. 제 손바닥을 콕, 콕 찍어보는 것입니다. 참새는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우리 주위에서 제 맘대로 돌아다녔지요. 참새는 참새대로 사무실에서 볼일을 보고, 우리는 우리대로 볼일을 보았지요. 아무튼 내가 그 출판사에서 일을 다 끝내고 나올 때까지 참새는 사무실에 있었습니다. 손을 벌리면 날아와 앉고 손바닥을 부리로 찍으며 재롱을 부렸지요.

   두 남자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세상에 둘도 없을 저 철없고 천진난만한 참새를 보며, 문득 노자는 무위를 행하고, 아무것도 일삼음이 없음을 일삼는다는 일절을 떠올렸지요. 참새의 행위에 어떤 심오한 뜻이 있지는 않겠지요. 모든 자연이 그렇듯 무위를 행한 것이지요. 유위를 행한다는 사람은 아무것도 일삼음이 없음을 일삼는 참새의 뜻 없고 거침없는 태도에 뭔가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었지요.

 

   저는 도무지 집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고 할 수 없는 어리석은 자에 속합니다. 어리석음을 겪고 나서야 어리석음을 인지하지요. 끼니를 굶어야만 배고픈 줄을 알고, 꽃이 진 뒤에야 피고 짐의 우수를 깨닫지요. 늘 뭔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곤핍감에 시달리는 제 어깨에 참새는 죽비를 내리칩니다. 눈이 번쩍 뜨이고 귀가 열립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고 했습니다. 작은 새는 배우지 않고도 하늘과 도를 본받아 그 행함에 거침이 없었지요. 어떻게 천하의 그러함을 알고 봄 모란꽃 피듯 가을 매 날 듯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 일삼음에 한 점의 일그러짐이 없을까요? 머잖아 가을 오겠습니다.

글출처 : 느림과 비움(장석주, 뿌리와이파리) 中에서……

공유스크랩
0
댓글 등록
취소 댓글 등록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삭제하시겠습니까?

목록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484
normal
오작교 25.02.20.09:46 15
483
normal
오작교 25.02.12.15:34 172
normal
오작교 25.02.07.20:20 183
481
normal
오작교 25.02.01.10:18 223
480
normal
오작교 25.02.01.10:12 234
479
normal
오작교 25.01.16.09:02 396
478
file
오작교 25.01.16.08:50 399
477
normal
오작교 25.01.11.18:27 631
476
normal
오작교 25.01.10.19:31 631
475
normal
오작교 25.01.10.19:16 630
474
file
오작교 25.01.03.10:00 1391
473
normal
오작교 24.12.29.07:17 822
472
normal
오작교 24.12.19.10:57 965
471
normal
오작교 24.12.05.10:14 1438
470
normal
오작교 24.12.05.10:06 1435
469
normal
오작교 24.11.29.11:17 1980
468
normal
오작교 24.11.26.20:28 1946
467
normal
오작교 24.11.26.20:19 2028
466
normal
오작교 24.11.26.20:05 1858
465
normal
오작교 24.11.21.09:23 2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