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큰 만남 / 사랑은 사랑으로 돌아옵니다
내 삶을 바꾼 큰 만남에 관해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은 받고 생각해보았습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만남은 과연 무엇일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단연 부처님과의 만남, 불교와의 만남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 치마꼬리를 잡고 따라갔던 한 사찰에서 처음 범종 소리를 들었던 것이 불교와의 첫 만남이었고, 진리로서의 불교가 내 마음에 들어앉은 첫 인연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억 속에 아련하기만 한 그 종소리의 흔적을 두고 삶의 만남이라고 할 수만은 없겠지요. 불교가 내 속에 스며들기 시작한 순간과 불교를 통해 내 삶이 화연히 바뀌기 시작한 순간 사이에는 적지 않은 시차가 있으니까요.
그다지 조숙한 편도 아니었지만 평범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던 청소년 시절, 인천 용화사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내 나이 열다섯. 돌이켜보면 막 인생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나이였습니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과 안개 같은 삶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잡을 설치던 시절이었지요.
누군가가 내게 묵언스님을 찾아가 보라고 해서 무작정 인천 가는 기차를 타고 거기까지 갔습니다. 용화사라는 절 이름도 처음 들었고, 묵언스님이라는 분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위치를 자세히 물은 뒤 기차를 탄 나는 교복 차림에 단발머리를 한 평범한 여중생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인천 가는 기차는 낡고 허름했을 뿐 아니라 산처럼 쌓인 까만 석탄 더미만 창밖으로 보이던 가난한 시절이었습니다.
기차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찾아간 용화사는 절이라기보다 가정집 같았습니다. 대문을 두드리자 할머니 한 분이 나와 문을 열어주셨지요. 누구 심부름으로 왔느냐고 물으시는 할머니에게 심부름이 아니라 묵언스님을 뵙고 싶어 찾아왔다고 하자, 할머니는 나를 한 번 훑어보신 뒤 큰방으로 안내해 주셨습니다.
할머니는 스님을 모셔 오겠다며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 하셨지만, 시간이 한참 흘러도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큰방에 덩그렇게 혼자 앉아 있자니 지루하기도 하고 좀 무섭기도 해서 바깥으로 나가려는데 스님 한 분이 들어오셨지요. 그분이 묵언스님이었습니다. 훗날 알게 되었지만, 그분이 바로 지금의 유명한 송담스님이신데. 1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을 묵언으로 정진하셨다 해서 그때는 묵언스님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수행력이 뛰어난 큰스님으로 추앙받는 분이지만, 그 당시엔 스님 계시는 용화사가 명성이 높아지기 전이고, 스님 또한 묵묵히 정진만 하시던 터라 뜻있는 이들만 스님은 찾던 때로 기억됩니다. 물론 나야 그런저런 내용조차 모르던 어린 학생일 뿐이었지만.
절을 드리고 나자 스님께서는 조용히 미소를 띠시며 내게 무슨 일로 찾아왔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스님의 질문에 저는 그냥 공부도 재미없고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고 답답해서 왔다고 대답했지요. 바보 같은 대답에 스님은 껄껄 웃으시다가 돌연 "답답하다? 누가 묶어놓았기에 답답하지?" 하고 물으셨습니다.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스님만 바라봤죠.
맑고 고요한 시선으로 쳐다보시던 스님은 곧 법문을 시작하셨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난 뒤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가습 속에서 시원함과 후련함이 번져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스님이 하신 법문이 <반야심경)>과 <금강경>의 말씀이라는 것을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아차렸습니다.
답답하다는 생각도, 불안하다는 생각도 원래는 없는 것인데 내가 있다고 마음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인연의 법칙에 의해 생겨난다는 말씀과 함께 스님께선 그날 나를 어린 학생이라 여기지 않고 무상 법문을 들려주셨지요.
내 인생의 큰 만남이 이루어진 순간이었습니다. 그것이 내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더구나 스님은 먹을 갈아 한지에 직접 단가를 써주시기까지 했습니다. 먼저 내 이름을 쓰신 뒤, 둥그렇게 일원상을 그리시더니 한문으로 화두를 써 내려가셨습니다.
"여기 한 물건이 있으니 이 물건은 생겨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이것이 무엇인고? 시심마(是甚麽), 이뭐꼬?"
스님이 주신 화두는 그것이었습니다. 화두를 쓴 종이를 접어 넣은 성주를 받아 든 나는 감격한 나머지 스님을 항해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그 스님과의 인연은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급. 스님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시겠지만 나는 출가를 했고 어디를 가든 화두가 든 봉투를 꼭 가지고 다녔지요.
동가식서가숙하던 세월이 20년쯤 지난 어느 날, 또다시 거처를 옮기다가 그만 화두 봉투를 잃어버렸습니다. 가지고 있던 짐을 뒤지고, 집 안을 산산이 찾아왔지만, 봉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큰 것 하나를 잃어버린 기분이었지요.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정작 화두는 챙기지 않고 화두가 적힌 종이만 챙기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련한 짓이었지요. 삶 속에서 늘 챙겨야 할 화두 대신 그때까지 봉투만 챙기고 있었으니까요. 그 순간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아니 얻은 것이 아니라 발견했습니다.
생겨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그것은 정작 내 속에 있었던 것, 원래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깨달음이란 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라는 말뜻을 그제야 알아차린 것입니다. 비로소 단발머리 시절에 받았던 화두에서 놓여난 나는 자유를 느꼈습니다. 알게 모르게 그동안 나를 묶어놓고 있던 많은 것들에서 벗어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인간이 한생을 살며 쥐게 되는 수많은 만남 가운데 그렇듯 큰 만남이 있습니다. 우리가 스승을 찾아 길 떠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내 삶의 큰 만남을 위해 나 또한 적지 않은 여행길에 오르곤 했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불성을 깨워주는 큰 만남을 위해 모든 것 다 벗어놓고 훌훌 떠나보십시오.
글 출처: 사랑은 사랑으로 돌아옵니다(정목스님, 감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