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비 내리는 게 좋아간다

    나는 비내리는 게 좋아간다 어쩌면, 티없이 맑은 하늘일지 혼백(魂魄)들 나 다니는 삼경(三更)일지 사슬로 이어진 얄궂은 인연들과   살아오면서 미사여구(美辭麗句)로 치장했던 푸르죽죽한 것들을 벗겨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사느라 울고 웃은 여운들이 혼재(混在)되어 있는 그러나 이제는 분류(分類)가 거의 다된 것들 주저(躊躇) 없이 버릴 수 있는 것들을 다 씻어가 줄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비내리는 게 좋아간다 그러나 한때는, 비오는게 싫었었다 두 발로 대문을 나서며 품은 사소한 것일지라도 비에 가려질까, 무너질까..... 기우(杞憂)에 잠 못 이룬 날들이 가만히 웃으며 다가올 것 같기 때문이다 아직도 기억해내지 못한 것들 아직도 더 낮추지 못한 것들을 일깨워 줄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 내리는 비 내 걸음 끝나는 날, 지우지 못한 업보(業報) 다 늘어놓은 위를 머리조아리는 무릎걸음 안보이게 종일 딱, 하루만 폭우(暴雨)로 내려지길 청하여도 될까..... 邨 夫 Ad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