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광수 시인의 짧은 시 모음 =
    
    ◆ 산에서 본 꽃
    
    
    산에 오르다
    꽃 한 송이를 보았네
    나를 보고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
    
    산에서 내려오다
    다시 그 꽃을 보았네
    하늘을 보고 피어있는 누님 닮은 꽃
    
    
    
    ◆ 봄볕
    
    
    꽃가루 날림에 방문을 닫았더니
    환한데도 더 환하게 한 줄 빛이 들어오네
    앉거라 권하지도 않았지만은
    동그마니 자리 잡음이 너무 익숙해
    손가락으로 살짝 밀쳐내 보니
    눈웃음 따뜻하게 손등을 쓰다듬네! 
    
    
    
    ◆ 가을햇살
    
    
    등 뒤에서 살짝 안는 이 누구 신가요?
    설레는 마음에 뒤돌아보니
    산모퉁이 돌아온 가을 햇살이
    아슴아슴 남아있는 그 사람 되어
    단풍 조막손 내밀며 걷자 합니다
    
    
    
    ◆ 홍시(紅枾) 두 알
    
    
    하얀 쟁반에 담아 내온 홍시 두 알.
    무슨 수줍음이 저리도 짙고 짙어서 
    보는 나로 하여금 이리도 미안케 하는지
    
    가슴을 열면서 가만히 속살을 보이는데
    마음이 얼마만큼 곱고 고우면 저리될까?
    권함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 낙엽 한 장
    
    
    나릿물 떠내려온 잎 하나 눈에 띄어
    살가운 마음으로 살며시 건졌더니
    멀리 본 늦가을 산이 손안에서 고와라.
    
    
    
    ◆ 홍류폭포
    
    
    수정 눈망울 살금 돌 틈에다 감추고
    잠깐 햇살에 또르르 한줌물 손에담고
    언제였나 오색 무지개가 꿈인듯하여
    바람도 피하는 간월산 늙은 억새사이로
    가을 지나간 하얀 계곡을 내려다봅니다.
    
    
    
    ◆ 가을에는
    
    
    가을에는 나이 듬이 곱고도 서러워
    초저녁 햇살을 등 뒤에 숨기고
    갈대 사이로 돌아보는
    지나온 먼 길
    놓아야 하는 아쉬운 가슴 
    그 빈자리마다
    추하지 않게 점을 찍으며
    나만 아는 단풍으로 꽃을 피운다 
    
    
    
    ◆ 비 오는 밤
    
    
    기다린 님의 발걸음 소리런가
    멀리도 아닌 곳에서 이리 오시는데
    밖은 더 캄캄하여 
    모습 모이지 않고
    불나간 방에 켜둔 촛불 하나만
    살랑살랑 고개를 내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