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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시인 김병연(金炳淵 1807~1863?), 그는 김삿갓이고 싶었겠는가

Ador 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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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랑시인 김삿갓 - 명국환

    죽장에 삿갓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뜬 고개넘어 가는객이 누구냐 열두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한잔에 시한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세상이 싫던가요 벼슬도 버리고 기다리는 사람없는 이거리 저마을로 손을젓는 집집마다 소문을 놓고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 바랑에 지치었나 사랑에 지치었나 개나리 봇짐지고 가는곳이 어데냐 팔도강산 타향살이 몇몇해던가 석양지는 산마루에 잠을자는 김삿갓

* 천재시인 김병연(金炳淵 1807~1863?), 그는 김삿갓이고 싶었겠는가

조선 순조 11년(1811년) 신미년에 홍경래(1780-1812)는, 서북인(西北人)을 관직에 등용하지 않는 조정의 정책에 대한 반감과, 탐관오리들의 행악에 분개가 폭발하여 평안도 용강에서 반란 을 일으켰다. 홍경래는 교묘한 수단으로 동지들을 규합하였고, 민심의 불평 불만을 잘 선동해서 조직한 그의 반란군은 순식간에 가산, 박천, 곽산, 태천, 정주 등지를 파죽지세로 휩쓸어 버리고 군사적 요새지인 선천으로 쳐들어갔다. 이 싸움에서 가산 군수 정시(鄭蓍)는 일개 문관의 신분이었지만 최후까지 싸워서 비장한 죽음 을 맞이하였다. 한편 김병연의 조부 김익순(金益淳)은 관직이 높은 선천 방어사였다. 그는 군비가 부족하고 대세는 이미 기울어져 있음을 낙심하다가, 날씨가 추워서 술을 마시고 취하여 자고 있던 중에 습격한 반란군에게 잡혀서 항복을 하게 된다. 김익순에게는 물론 그 가문에도 큰 치욕이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하지만 국법의 심판은 냉혹하여서, 이듬해 2월에 반란이 평정 되자 김익순은 3월 9일에 사형을 당하였다. 그 난리 때 형 병하(炳夏)는 여덟 살, 병연은 여섯 살, 아우 병호(炳湖)는 젖먹이였다. 마침 김익순이 데리고 있던 종복(從僕)에 김성수(金聖秀)라는 좋은 사람이 있었는데 황해도 곡산에 있는 자기 집으로 병하, 병연 형제를 피신시키고 글공부도 시켜 주었다. 그 뒤에 조정의 벌은 김익순 한 사람에게만 한하고, 두려워하던 멸족(滅族)에는 이르지 않고 폐족에 그쳤으므로 병하, 병연 형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김병연의 가족은 서울을 떠나 여주, 가평으로 이사하는 등 폐족의 고단한 삶을 살다가 부친이 화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홀어머니 함평 이씨가 형제를 데리고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 로 이주하였다. 이무렵, 조정으로부터 김익순 일가에 대한 역적이란 죄명을 사면 받고, 그 후손의 관직등용도 허용돠었지만, 스스로를 몰락한 양반의 후손 쯤으로 알고 살아온 김병연은, 갈고 딲아온 학문 의 뜻을 펼치고자 은인 자중하던차..... 김병연이 스무 살이 되던 1826년(순조 32년), 당시의 인재 등용문의 하나인 백일장에 나가게되었다. 강원도 영월읍내의 동헌 뜰에서 치러진 백일장 대회 시제(詩題)는, '논정가산 충절사 탄김익순 죄통우천' (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 - 정가산에 대한 충절사를 논하고, 적에게 항복한 김익순에 대한 죄를 탄하라)이었다. 시상을 가다듬어 정의감에 불타는 그의 젊은 피는, 충절의 죽음에 대한 동정과 찬양을 아끼지 않았고, 김익순의 불충의 죄에 대하여는 망군(忘君), 망친(忘親)의 벌로 만 번 죽어도 마땅하 다 고 추상같은 탄핵을 하였다. 김병연이 이 백일장에서 장원하여 집으로 돌아가서 어머니에게 장원을 하였음을 알리는 자리 에서, 어머니는 그 동안 숨겨왔던 집안의 내력을 듣게 되었다. "...우리 가문은 대대로 명문거족이었다. 너는 안동 김씨의 후손이다. 안동 김씨 중에서도 장동(壯洞)에 사는 사람들은 특히 세도가 당당했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그들을 장동 김씨라고 불렀는데 너는 바로 장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네가 오늘 만고의 역적으로 몰아 세워 욕을 퍼부은, 익자(益字) 순자(淳字)를 쓰셨던 선천 방어사는 네 할아버지시다. 너의 할아버지는 사형을 당하셨고 너희들에게 이런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느라고 제사 때 신주를 모시기는 커녕, 지방과 축문에 관직이 없었던 것처럼 처사(處士)로 써서 너희들을 속여 왔다..." 김병연은 너무나 기막힌 사실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반란군의 괴수 홍경래에게 비겁하게 항복한 김익순이 나의 할아버지라니..... 그는 고민 끝에, 자신이 글로써 만천하에 조부를 다시 죽인 천륜을 어긴 죄인이자, 불효손이라 고 스스로 단죄하고, 하늘을 머리에 이고는 살 수 없는 자신이라,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린 후, 삿갓을 쓰고 방랑의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뛰어난 학식임에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모든 인연에서 스스로 단절하여 전국을 떠도는 객으로, 세상을 한탄과 해학으로 쓸쓸한 운명을 살다간 그의 백일장 장원시문은 아래와 같다. * 詩題 - 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 (논정가산 충절사 탄김익순 죄통우천) 一爾世臣金益淳 鄭公不過卿大夫 일이세신김익순 정공불과경대부 將軍桃李隴西落 烈士功名圖末高 장군도리농서락 열사공명도말고 詩人到此亦慷慨 撫劍悲歌秋水溪 시인도차역강개 무검비가추수계 宣川自古大將邑 比諸嘉山先守義 선천자고대장읍 비저가산선수의 淸朝共作一王臣 死地寧爲二心子 청조공작일왕신 사지영위이심자 升平日月歲辛未 風雨西關何變有 승평일월세신미 풍우서관하변유 尊周孰非魯仲連 輔漢人多諸葛亮 존주숙비노중련 보한인다제갈량 同朝舊臣鄭忠臣 抵掌風塵立節死 동조구신정충신 저장풍진입절사 嘉陵老吏揚名旌 生色秋天白日下 가릉노리양명정 생색추천백일하 魂歸南畝伴岳飛 骨埋西山傍伯夷 혼귀남무반악비 골매서산방백이 西來消息慨然多 問是誰家食錄臣 서래소식개연다 문시수가식록신 家聲壯洞甲族金 名字長安行列淳 가성장동갑족김 명자장안항렬순 家門如許聖恩重 百萬兵前義不下 가문여허성은중 백만병전의불하 淸川江水洗兵波 鐵甕山樹掛弓枝 청천강수세병파 철옹산수괘궁지 吾王庭下進退膝 背向西城凶賊脆 오왕정하진퇴슬 배향서성흉적취 魂飛莫向九泉去 地下猶存先大王 혼비막향구천거 지하유존선대왕 忘君是日又忘親 一死猶輕萬死宜 망군시일우망친 일사유경만사의 春秋筆法爾知否 此事流傳東國史 춘추필법이지부 차사유전동국사 * 해역(解譯) 대대로 임금을 섬겨온 김익순은 듣거라. 정공(鄭公)은 경대부에 불과했으나 농서의 장군 이능처럼 항복하지 않아 충신열사들 가운데 공과 이름이 서열 중에 으뜸이로다. 시인도 이에 대하여 비분강개하노니 칼을 어루만지며 이 가을 날 강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노라. 선천은 예로부터 대장이 맡아보던 고을이라 가산 땅에 비하면 먼저 충의로써 지킬 땅이로되 청명한 조정에 모두 한 임금의 신하로서 죽을 때는 어찌 두 마음을 품는단 말인가 태평세월이던 신미년에 관서 지방에 비바람 몰아치니 이 무슨 변고인가. 주(周)나라를 받드는 데는 노중련 같은 충신이 없었고 한(漢)나라를 보좌하는 데는 제갈량 같은 자 많았노라. 우리 조정에도 또한 정충신(鄭忠臣)이 있어서 맨손으로 병란 막아 절개 지키고 죽었도다. 늙은 관리로서 구국의 기치를 든 가산 군수의 명성은 맑은 가을 하늘에 빛나는 태양 같았노라. 혼은 남쪽 밭이랑으로 돌아가 악비와 벗하고 뼈는 서산에 묻혔어도 백이의 곁이라 서쪽에서는 매우 슬픈 소식이 들려오니 묻노니 너는 누구의 녹을 먹는 신하이더냐? 가문은 으뜸가는 장동(壯洞) 김씨요 이름은 장안에서도 떨치는 순(淳)자 항렬이구나 너희 가문이 이처럼 성은을 두터이 입었으니 백만 대군 앞이라도 의를 저버려선 안되리라 청천강 맑은 물에 병마를 씻고 철옹산 나무로 만든 활을 메고서는 임금의 어전에 나아가고 물러날 때 무릎 꿇어야지 서쪽의 흉악한 도적에게 무릎 꿇었구나 너의 혼은 죽어서 저승에도 못 갈 것이니 지하에도 선왕들께서 계시기 때문이라 이제 임금의 은혜를 저버리고 육친을 버렸으니 한 번 죽음은 가볍고 만 번 죽어야 마땅하리. 춘추필법을 너는 아느냐? 너의 일은 역사에 기록하여 천추만대에 전하리라. * 읽는 편의를 위하여, 시문의 항렬을 임의로 나누었으니,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Ad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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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敏淑 2007.07.20. 10:46
이 노래를 아주 잘부르는
절친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오랫만에 이노래를 들으니
그 친구가 많이 보고 싶어집니다.

그리구
천재시인 김병연의 글
공부하느라 힘들었지만(ㅋㅋ~~~)
많은 지식을 알게 됐네요.
Ador 글쓴이 2007.07.21. 08:31
반갑습니다~ 학창시절에 받았던 숙제였답니다~
이 시문을 찾아서 해역하여 오라는~~~
252자로 구성되었지만
한자 2000자는 깨치게 될 것이라한 그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이 시문으로 빈 머릿 숙을 많이 채웠지만, 잊고 있다가
우연히 다른 곳에서 옮겨와 조금 살을 붙여 보았습니다~
도움되셨다니 반갑네요~
시원한 호숫가가 그립습니다.
건강 유의하시고요~~
cosmos 2007.07.21. 08:33
에고...
일케 무거운 글 옮겨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여~~ Ador님..

저도 태산언냐처럼
공부하느라 힘들었어여~ㅋㅋ...


Ador 글쓴이 2007.07.22. 00:33
그러셨어요~? ㅎㅎㅎ
한시를 스스로 풀지를 못하여
살짝, 컨닝도 하였음을 고백 안할수가 없군요~
반가웠습니다~
제인 2007.07.22. 04:06


한문만 보고 꼬리 말아쥐고
구석에서 눈만 감았다 떳다 하지요..ㅋㅋㅋ

Ador님
예전에 우리 조상들은 풍류를 알고
인생을 알았는데..
점점 내려오면서
왜 이리 여유도 없고
각박해져만 가는지....

우리는 그렇게 살지 말아요....
Ador 글쓴이 2007.07.22. 21:25
그러셨군요~ㅎㅎㅎ

유달리 한문에는 약한 친구도 있었지요~
근데, 수학은 단연~~ 톱!
아직까지도 알다가도 모를 일 중에 하나랍니다~

풍류를 즐기던 시대는
여유가 많았던 시절이기도 하지만,
손가락 몇개 꼽을 정도의 분야 외는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었던 시절이었으니.....

현대인에게는 꿈 같은 먼나라 애기~~~
허지만
우리 오작교만은 여유를 갖자구요~

제인님 말씀에 동감~~~
풍류를 알고 그리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ㅎㅎㅎㅎ
반가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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