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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의 해병(1961년) / 김기덕 감독, 신영균, 최무룡, 황해, 박노식, 독고성 등

오작교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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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Director) : 김기덕(Kim Ki-Deok)

출연 : 신영균(오덕수 소위),최무룡(우종국),황해(김훈구),박노식(장영선),후라이보이(마주한),독고성(정충길 하사관),김승호(오석만 중령),남양일(하영규 해병),박암(해병 여단장),윤일봉(중대장),남방운(작전참모),김지미(순이),최봉(덕한),황정순(훈구의 모),김명희(훈구의 매)

 

줄거리 : 

   어려서부터 형에 비해 차별을 받아왔다고 생각하는 오덕수 소위(신영균)는 아버지 오석만 중령(김승호)이 대대장으로 있는 부대에 소대장으로 부임한다. 강한 개성의 소유자인 해병대원들은 간혹 충돌하기도 하지만 오소위를 중심으로 전우애를 쌓아간다. 어느 날 소대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막내 하용규 해병(남양일)이 정찰 중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분노해 홀로 북한군 진영에 숨어 들어갔다 상처를 입고 탈출한 분대장(독고성)은 북한군이 총공격을 위해 방대한 탄약고를 증설 중임을 알리고 사망한다. 분대장의 진심을 깨달게 된 우정국(최무룡), 장영선(박노식), 김훈구(황해), 마주한(곽규석) 등 4명의 소대원들은 오소위와 함께 북한군의 탄약고를 폭파시키는 위험한 임무를 위해 자원한다. 출발에 앞서 오소위는 마침내 아버지와의 오해를 풀고 5명의 해병대원은 적진에 진입하여 임무를 완수하지만 우정국을 제외한 4명은 장렬히 목숨을 바친다. 함께 탈출했지만 보트 위에서 숨진 오소위의 시신을 안고 귀환한 우정국은 오중령에게 오소위가 탈취한 기밀문서와 유물을 전해준다.

 

 

영화보기 : https://youtu.be/gUbG3wQ9GtQ

 

 

시놉시스

 


   한국 전쟁영화의 시초는 김기덕 감독의 <오인의 해병>(1961)이다. B무비 혹은 장르영화의 전통이 빈약했던 당대에 이 영화가 얼마나 큰 대중적 쾌감을 줬냐면, 심지어 이 영화제목을 딴 날치기단까지 등장했다. 당시 모 신문 사회면에 따르면, 날치기와 들치기 소탕작전에 나선 치안당국이 한 달 동안 전국에서 215개 조직과 8,800여 명을 검거했는데 ‘오인의 해병’이라는 솜씨 좋은 날치기단도 있었던 것. 당시 <오인의 해병>이 김기덕 감독에게 대종상 신인상을 안겨줬을 뿐만 아니라, 흥행적으로도 얼마나 큰 인기를 얻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당시 군인 신분이었던 한우정 시나리오 작가는 <오인의 해병>의 군사행정 자문을 맡은 것이 계기가 되어 후에 작가로 데뷔한 뒤, 이만희 감독의 B급 걸작 <검은 머리>(1964)를 비롯해 <7인의 여포로>(1965), <군번 없는 용사>(1966) 등을 쓰며 그와 오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더불어 신영균엄앵란 주연, 이규웅 감독의 <오인의 독수리>(1963), 고은아, 신성일 주연, 이성구 감독의 <오인의 건달>(1966), 장동휘남궁원윤정희 주연, 강민호 감독의 <오인의 사형수>(1969) 외 김봉환 감독의 <오인의 왼손잡이>(1970), 고영남 감독의 <오인의 건달들>(1971) 같은 영화도 만들어졌다. 그야말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식으로, 일본에 <7인의 사무라이>(1954)가 있었다면 한국에는 조금 ‘쪽수’가 모자라긴 하지만 ‘오인’ 시리즈가 만원사례를 이뤘다. 
 

당시 범람하던 ‘5인’들
당시 범람하던 ‘5인’들


   첫 번째 해병, 어려서부터 형(최봉)에 비해 차별을 받아왔다고 생각하는 오덕수 소위(신영균)는 아버지 오석만 중령(김승호)이 대대장으로 있는 부대에 소대장으로 부임한다. 강한 개성을 지닌 우정국(최무룡), 장영선(박노식), 김홍구(황해), 마주한(곽규석) 등 나머지 해병대원들은 간혹 충돌하기도 하지만 오 소위를 중심으로 전우애를 쌓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 하용규 해병(남양일)이 정찰 중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분노해 홀로 북한군 진영에 숨어 들어갔다 탈출한 분대장(독고성)은 북한군이 총공격을 위해 방대한 탄약고를 증설 중임을 알리고 사망한다. 언제나 사사건건 그들을 괴롭히던 분대장이었지만, 그 진심을 알게 된 오 소위를 비롯한 5인의 해병들은 드디어 적진에 잠입하기로 한다. 
 

<오인의 해병>의 5인들
<오인의 해병>의 5인들


   당시 <오인의 해병>의 인기는 박노식과 곽규석이 책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사람은 영화 초반 ‘서울놈’(곽규석)과 ‘촌놈’(박노식)의 대결 구도를 만들며 화려한 코믹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전남 순천이 고향인 박노식은 자신의 구수한 사투리를 유감없이 구사했다. 말하자면 당시 배우로서 액션스타를 꿈꿨지만 멜로드라마 등 이런저런 캐릭터로 방황하던 박노식의 ‘포텐’이 터진 작품이 바로 <오인의 해병>이다. 그가 쓴 자서전 「뻥까오리 백작: 박노식 은막 43년의 고백」을 보면 “배우가 직접 목소리 연기까지 하지 않으면 절름발이 배우”라는 고집으로, 권영순 감독의 <나는 너를 싫어한다>(1957) 작업 당시 전라도 사투리로 더빙을 했는데 녹음기사에게 심하게 야단을 맞았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때만 해도 ‘영화에 사투리가 나오면 안 되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유명해지면 꼭 전라도 사투리를 쓰겠다”고 다짐한 그는 <오인의 해병>에서 스태프들도 모르는 전라도 사투리를 ‘남발’했고, 그것이 바로 흥행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됐다. 한국영화에 찰진 사투리가 등장한 B급 반란의 순간이었다. 이후 한국영화에서 사투리로 캐릭터의 맛을 살리는 일은 흔해졌다. <경상도 사나이>(1960)와 <풋내기 애인>(1964)의 이대엽은 박노식의 반대편에서 경상도 사투리로 인기를 끌었고, <울며 헤어진 부산항>(1963)에서 김지미의 경상도 사투리도 인상적이었다. <무정>(1962)에서는 최은희가 평안도 사투리로 애교를 펼쳤으며, 언제나 걸쭉한 충청도 사투리로 인기를 끌었던 도금봉은 세월이 흘러 박찬욱 감독의 <3인조>(1997)에도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전당포 노파로 등장했다. 
 

전라도 사투리 남발하시는 박노식 '그래서 말이여~'
전라도 사투리 남발하시는 박노식 '그래서 말이여~'


   ‘후라이보이’라는 애칭으로 불린 곽규석의 인기도 그 못지않았다. 당시 「동아일보」가 ‘곽규석론’이라는 기획기사로 다룬 내용을 보면, 그를 세련된 매너로 ‘프랑스 신사’라 불린 프랑스의 유명 가수 겸 배우 모리스 슈발리에와 비교하며 굉장히 지적인 코미디언으로 추켜세웠다. 실제로 공군예술원에 있었던 그는(‘플라이보이’가 바로 공군조종사를 가리키는 애칭이다) 제대 뒤 1957년 CBS 라디오에서 쇼프로 <후라이보이아워>를 맡으며 본격적인 코미디언 활동을 시작했는데, 영화배우로서도 정창화 감독의 <후라이보이 박사소동>(1959)으로 데뷔했을 만큼 ‘후라이보이’라는 이름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국내 최초의 예능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동양방송의 <쇼쇼쇼>를 10년 넘게 진행하며 ‘사회자’의 원조가 됐으며, ‘막동이’라는 애칭으로 불린 구봉서와 함께 당대 TV코미디 시대를 주름잡았다. 몇 년 뒤 제작된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4)에 구봉서가 출연해 비슷한 역할을 했던 것도 그 영향이라 할 것이다. 
 

입담 자랑하시는 후라이보이 곽규석
입담 자랑하시는 후라이보이 곽규석


   그럼에도 역시 <오인의 해병>이 주는 주된 재미는 장르적 상식에서 벗어나는 극적 전개 때문이다. 정통 전쟁영화라고 하기에는 색다른 모험적 시도를 엿볼 수 있는 것. 먼저 5인의 해병에 대한 각각의 플래시백을 길게 마련했다.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입을 위한 장치라고는 하나 그들이 고향에 놔두고 온 여자친구(최무룡 에피소드), 입대 전까지 일삼던 ‘양아치’ 행적(황해 에피소드) 등을 굳이 일일이 보여주며 그들의 현재적 희생정신을 부각시킨다. 두 번째는 줄스 다신의 <리피피>(1955)나 장 피에르 멜빌의 <형사>(1972)를 연상시키는, 이른바 ‘B급 프렌치 누아르스러운’ 기나긴 무언의 작전수행 장면이다. 러닝타임이 1시간 30분여 정도 진행된 상황에서 5인의 특수 작전팀이 북한군의 탄약고를 폭파하기 위해 임무수행에 나설 때에야 비로소 침묵의 클라이맥스가 시작된다. 적을 관찰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던 그들이, 야심한 시각에 보트를 타고 헤엄을 치며 몰래 적진에 침투하는 과정을 무척 세밀하고 긴장감 넘치게 묘사한다. 
 

(좌)순이와 작별하는 정국 / (우)'전 틀렸어요, 애비 없는 후레자식인걸요.'(홍구) 바로 날아오는 어미의 따귀손
(좌)순이와 작별하는 정국 /
(우)'전 틀렸어요, 애비 없는 후레자식인걸요.'(홍구) 바로 날아오는 어미의 따귀손


   하지만 그때도 흥행과 비평의 괴리는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조선일보」는 “마지막에 차이코프스키의 제5교향곡 제2악장을 되풀이 사용한 것은 감상과잉”이라 지적하고 있고, 「경향신문」은 “(힘들게 침투하지 말고) 제트기를 출격시켰더라면 귀중한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인데, 상황설명이 없어 의아스럽긴 하다”며 무술영화를 두고 ‘총으로 쏘면 되는데, 왜 손으로 싸우냐’고 지적하는 식의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그처럼 <오인의 해병>은 전쟁영화의 ‘원조’라고 하기에는 무척 다채로운 시도로 가득 차 있는데, (김기덕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올드팬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전쟁 ‘미드’이자,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아버지뻘쯤 된다고 할 수 있는 <컴뱃>(Combat)의 영향이기도 하다. 원조 전쟁영화의 매력이 궁금하다면 <오인의 해병>을 비롯해 <맨발의 청춘>(1964), <남과 북>(1965), <말띠 신부>(1966) 등 김기덕 감독의 주요 작품 4편을 수록한 ‘김기덕 컬렉션’(지난 10월11일 출시)에 관심을...

영상자료원에서 출시한 ‘김기덕 컬렉션’ DVD 세트


신영균
최무룡
황해
곽규석
박노식

감독: 김기덕
각색: 유한철
촬영: 이성춘
개봉극장 국제극장
관람인원 50,000(서울)명

 

5인의 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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