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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1977년) / 김수용 감독, 윤정의, 신성일, 주중녀

오작교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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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Director) : 김수용(Kim Soo-yong)

출연 : 윤정희,신성일,주증녀,최회영,최길호,양일민,이일웅,이자영,주현,김홍지

 

줄거리 :

   같은 은행에 근무하는 미스리와 박선생은 결혼식을 연기한 채 주위의 눈을 피해 동거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 남녀이다. 현주는 남자의 비굴하리만큼 합리적인 사고방식에 짜증이 나서 거리를 배회하다가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모든 것을 빼앗긴다. 마침내 결혼식을 올리기위해 남편과 같이 고향으로 가는 기차를 탄 그녀는 졸고있는 남편의 곁에서 탈출해버린다.

 

 

영화보기 : https://youtu.be/DnrgRbIL6bY

 

 

시놉시스

 

야행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난 김수용 감독의 영화를 비교적 많이 본 축에 속했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변두리 삼류극장에서 몰래 보았는데 그때 본 상당수의 에로틱한 한국 영화가 그의 작품이었다. 그 시절 본 영화의 제목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화려한 외출> <야행> <웃음소리> 등을 포함해 고등학생 시절 본 <물보라> <만추> <도시로 간 처녀> <저녁에 우는 새> 등에 이르기까지 1970년대 중후반과 80년대 초반의 영화들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김수용의 영화는 다른 대다수 한국 영화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도회적인 세련됨이 묻어나는 영화라고 할까, 동시에 어른들만 아는 세상의 불편함도 보여주는 것이 있었다. 좀 더 철이 들어 본 <도시로 간 처녀>와 같은 영화는 버스 안내양이 상영 반대 데모를 해서 사회적으로 화제가 됐던 영화인데 검열에서 많이 잘려나갔어도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훗날 대학에 들어와 그의 영화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가 <영상예술>이라는 영화진흥공사에서 발간한 무크지에 비운의 <야행>에 대해 쓴 글을 읽고 나서였다.

 

   <야행>은 1973년에 제작됐으나 검열에 묶여 창고에 들어갔다가 1977년에 개봉된 작품이다. 김수용은 그 영화에 대해 개봉 당시 <영상시대>의 합평란에서 평자들이 가혹한 평을 한 것을 두고, 특히 검열 전의 버전에 비해 검열된 버전이 차라리 나은 구석이 있다고 한 것을 두고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반박했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에 씌어진 글이지만 이 글에서 나는 김수용이라는 감독의 논리적 이성, 그의 영화를 세련되게 해준 그 창작자의 이성을 봤다. 그게 다소 모범생 기질의 영화처럼 보이는 그의 작품세계의 한계를 가리킬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故 하길종 감독이 야바위판이라고 평가했던 당시의 한국 영화계에서는 돋보이는 지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 그의 지성과 창작적 의지가 조화를 이룬 작품이 바로 <야행>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방황은 끝났다

   김수용 자신이 현대적 감각으로 한 여자의 방황을 추적하고 모든 여자의 운명은 동일하다는 명제를 담고 싶었다고 말하는 <야행>은 당시의 사회 윤리에 비춰보면 매우 파격적인 여성의 일탈 심리를 추적하고 있다. <야행>의 주인공은 은행에 근무하는 미모의 노처녀 현주이며 그는 월남전에서 전사한, 여고 시절의 선생이었던 육군 소위와 연애한 추억을 갖고 있다. 나날이 이어지는 메마른 생활을 견디면서 현주는 첫 애인이 묻혀 있는 국립묘지가 멀리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서 살면서 늘 여고 시절의 첫사랑을 추억한다. 현주의 생활은 매우 규칙적이다. 낮에는 은행원으로 일하고 일을 끝내고 나면 버스를 타고 돌아온다. 국립묘지 앞에 내려 늘 만나는 목석 같은 경비원의 곁눈질을 받으며 아파트에 들어가 저녁밥을 짓고 나면 비밀리에 동거 중인 남자 박이 술에 취해 들어오는 식이다. 

   현주는 어느 순간부터 이런 삶에 의식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한다. 집에서는 남자의 성적 도구이고 밖에서는 돈 버는 도구인 자신에 대해 혐오를 느끼며 동시에 단조로운 노동을 술로 달래고 모든 여자를 성욕의 대상으로만 대하는 남자들의 세계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휴가를 받은 현주는 고향에 내려가 여고 시절을 회상하며 마을의 돈 많은 젊은 사장을 유혹해 몸을 준다. 휴가 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서울에 돌아온 현주는 밤늦게 어두운 뒷골목길을 방황하며 남자들에게 몸을 내맡긴다. 달라진 자신을 향해 결혼하자고 조르는 박과 함께 박의 부모에게 혼인 승낙을 받으러 열차에 몸을 실은 현주는 박이 잠든 틈에 서울로 되돌아온다. 뒤늦게 달려온 박에게 현주는 나의 방황은 끝났다는 내용의 편지를 건넨다. 그러고는 다시 예전의 자기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부유하는 인간을 둘러보다

   현주는 과거의 추억에 현재의 삶을 결박한 인물이다. 현주의 현재의 삶은, 남자와 사회로부터 도구화될 것을 강요받는 그런 삶이다. 현주는 방황하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밟는 타락의 길에 매우 적극적으로 몸을 내맡기는 쪽을 택한다. 한국 영화에서 이만큼 공격적으로 여성의 적극적인 반사회적 일탈 심리를 다루고자 하는 시도는 드물었을 것이다. 현주의 삶은 이미 사회에서 타자화돼 있지만 그가 타자화된 자신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사회에 동화시키기로 작정했을 때 놀랍게도 사회는 그 자신만큼이나 타자화돼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날마다 정해진 일과를 마치고 술과 여자에 대한 욕정으로 탈출구를 찾는 남자들의 삶은 본질적으로 타자화된 현주 자신의 삶과 다를 게 없다. 현주가 육교 위를 서성거리며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볼 때 그의 눈에 비치는 풍경과 사람들은 모두 대지 위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인간들과 신기루처럼 흩어져 있는 추한 사물뿐이다. 

   김수용은 이 타자화된 자아와 현실의 초상 이면에 희미하게 정치적 함축을 깔아놓는다. 아주 명쾌한 것은 아니지만, 여고 시절에 사랑했던 남자는 월남전에 참전했다 사망했으며 그의 무덤이 있는 국립묘지 근처에서 현주는 오늘의 삶을 산다. 현주가 국립 묘지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 내려 흘러내리는 스타킹을 추켜올리면 목석 같은 경비병은 아주 어색하고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그의 노출된 신체 일부를 훔쳐본다.

 

   균일하게 하나의 삶, 오로지 생산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요구했던 근대화 시기를 배경으로 이 영화는 욕망이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통제되고 분출되는 일그러진 모습을 여주인공 현주의 일상과 의식을 통해 파고든다. 실험영화풍의 거친 편집과 화면 각도로 혼란스럽게 꾸며놓고는 있지만 그것이 당대의 드러나지 않은 비윤리적 일탈의 기운과 조응하는 측면이 있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의 결말은 예상했던 대로 비관적인 분위기로 끝난다. 현주가 방황과 일탈을 통해 얻은 결론은 다시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현재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가 정착할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야행>은 1970년대에 만들어진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어둡고 혼란스러운 영화로 기록될 것이다. 그건 당시 사회의 표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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