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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충만

오작교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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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텅 빈 충만

    오늘 오후 큰절에 우편물을 챙기러 내려갔다가 황선 스님이 거처하는 다향산방(茶香山房)에 들렀었다. 내가 이 방에 가끔 들르는 것은, 방 주인의 깔끔하고 정갈한 성품과 아무 장식도 없는 빈 벽과 텅 빈 방이 좋아서이다.

    이 방에는 어떤 방에나 걸려 있음직한 달력도 없고 휴지통도 없으며, 책상도 없이 한 장의 방석이 화로 곁에 놓여 있을 뿐이다. 방 한쪽 구석에는 항시 화병에 한두 송이의 꽃이 조촐하게 꽂혀 있고, 꽃이 없을 때는 까치밥 같은 빨간 나무 열매가 까맣게 칠한 받침대 위에 놓여 있곤 했었다.

    물론 방 이름이 다향산방이므로 차가 있고 차도구가 있게 마련이지만, 그것들 또한 눈에 띄지 않는 벽장 속에 갈무리 되어 있다.

    이 방 주인이 하는 일은 관음(觀音殿)에서 하루 네 차례씩 올리는 사중(寺中)기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아주 힘든 소임이다. 이런 힘든 소임을 1천일 동안 한 차례 무난히 마쳤고, 작년부터 두 번째 다시 천일기도에 들어갔다. 기도 중에는 산문 밖 출입을 일절 금하는 질서를 스스로 굳게 지키고 있다.

    송광사에서 5, 6년에 걸쳐 도량을 일신하는 중창불사를 별다른 어려움과 장애 없이 원만히 진행하게 된 것도, 그 이면에는 이 방 주인과 같은 청정한 스님의 기도의 공이 크게 뒷받침되었으리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그런데 오늘 이 방에 이변이 생겼다. 방안에 화로도 꽃병도 출입문 위에 걸려 있던 이 방의 편액도 보이지 않았다. 빈 방에 덩그러니 방석 한 장과 조그마한 탁상시계가 한쪽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웬일인가 싶어 방 주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더니. 새로운 각오로 정진하고 싶은 그런 심경임을 말 없는 가운데서도 능히 읽을 수 있었다.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는 속담이 있지만, 중의 사정은 중이 훤히 안다. 너절한 데서 훨훨 벗어나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그 마음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다.

    속을 모르는 남들은 갑작스런 변화를 보고 이 무슨 변덕인가 할지 모르지만, 본인으로서는 안일한 일상과 타성의 늪에서 뛰쳐나와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런 그의 소망은, 부모 형제를 떨쳐버리고 집을 나올 때의 그 출가정신에 이어진다. 출가란 살던 집을 등지고 나온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성에 차지 않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남이요, 거듭거듭 떨치고 일어남이다.

    그런 출가정신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칼을 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칼날이 무디어지면 칼로서의 기능은 끝난다. 칼이 칼일 수 있는 것은 그 날이 퍼렇게 서 있을 때 한해서이다. 누구를 상하게 하는 칼날이 아니라, 버릇과 타성과 번뇌를 가차 없이 절단하는 반야검(般若劍), 즉 지혜의 칼날이다.

    서슬 푸른 그 칼날을 지니지 않으면, 타인은 그만두고라도 자기 자신도 구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다향산방의 주인은 나보다는 너그러운 편이다. 나 같으면 편액을 걸어두었던 그 못까지도 배버리고 그 자국마저 종이로 바르고 나서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언젠가 마음이 변해서 다시 그 자리에 편액을 거는 일이 있더라도, 한번 마음이 내켰을 때는 철저하게 치우고 없애야 한다.

    그때 그 심경으로 치우고 없애는 그 일이 바로 그날의 삶이다. 작심삼일(作心三日), 이런 결심이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날 그때의 그 결단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 이런 비장한 결단 없이는 일상적인 타성과 잘못 길들여진 수렁에서 헤어날 기약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누가 내 삶을 만들어줄 것인가. 오로지 내가 내 인생을 한층한층 쌓아갈 뿐이다.

    선종사(禪宗史)를 보면 방거사(龐居士)라는 특이한 선자(禪者)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초에 걸쳐 살다 간 재가신자(在家信者)인데, 마조(馬祖: 중국의 위대한 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어록(語錄)이 전해질 만큼 뛰어난 삶을 살았다.

    그는 원래 엄청난 재산을 지닌 소문난 부호였다. 그런데 어떤 충격을 받고 그랬는지는 전해지지 않으나, 어느 날 자신의 전 재산을 배에 싣고 바다에 나가 미련 없이 버린다. 어떤 문헌에는 바다가 아니고 동정호(洞庭湖)로 기록되어 있다. 그가 전 재산을 바다에 버리기 전에 사람들에게 나누어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자신에게 ‘원수’가 된 재산을 남에게 떠넘길 수 없다는 생각에서 결심을 단행한다.

    살던 저택을 버리고 조그만 오막살이로 옮겨 앉는다. 대조리를 만들어 장에 내다 팔아서 생계를 이으면서 딸과 함께 평생 동안 수도생활을 한다.

    있던 재산 다 버리고 궁상맞게 대조리를 만들어 생계를 꾸려가는 그의 행동을, 세상에서는 미쳐도 보통 미친 것이 아니라고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그때부터 그의 인생이 진자로 전개된다. 삶의 가치 척도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이요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어록에는 이런 게송(詩)이 실려 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지만
나는 순간의 고요를 즐긴다.
돈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고요 속에 본래의 내 모습 드러난다. 

또 다름과 같이 읊기도 했다.

탐욕이 없는 것이 진정한 보시요
어리석음 없는 것이 진정한 좌선
성내지 않음이 진정한 지계요
잡념 없음이 진정한 구도다.

악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인연 따라 거리낌 없이 사니
모두가 함께 반야선(般若船)을 탄다.

며칠 전 여수 오동도로 동백꽃을 보러 갔다가 현정이네 집에 들렀었다. 거실에 있는 오디오 장치를 볼 때마다 나는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 오디오는 당초 현정이네 아버지가 나를 위해 우리 방에 설치해 준 것인데 한 일 년쯤 듣다가 예의 그 ‘변덕’이 일어나 되돌려준 것이다. 인편에 들려오기를, 처음 이 오디오를 울 방에 설치해 주고 나서는 그렇게 흐뭇해하고 좋아했는데, 되돌아오자 몹시 서운해 하더라는 것이다.

    나는 이 오디오 말고도 산에 살면서 두 차례나 치워 없앤 적이 있다. 음악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 더미가, 소유의 더미가 실어서였다. 치워버릴 때는 애써 모았던 음반까지도 깡그리 없애버린다.

    일단 없애버려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맨 먼저 찾아오는 사람한테(물론 그가 낯선 사람이 아닐 경우) 그날로 가져가라고 큰절 일꾼을 시켜 비워서 내려 보낸다. 그가 음악을 이해하건 안하건 그건 내게 상관이 없다. 그가 가져가겠다고 하면 주어버리는 것으로써 내 일은 끝난다.

    한동안 음악을 듣지 않으면 내 감성에 물기가 없고 녹이 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때부터 하나 또 들여놔볼까 하는 생각이 일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밖에 나가 알아본다. 될 수 있으면 면적을 작게 차지하면서도 산방의 분수에 넘치지 않은 것으로 고른다. 다시 필요해서 들여놓을 때라도 그전에 주어버린 것에 대해서는 전혀 후회 하지 않는다. 그때는 그렇게 홀가분한 것으로써 내 삶의 내용을 삼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손수 사들인 것은 선뜻 남에게 주어버릴 수 있지만, 큰 맘 먹고 선물해준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되돌린 것이다. 그리고 그 오디오를 설치할 때 나는 1년만 듣고 보내겠다고 미리 이야기해 두었었다.

    이제 내 귀는 대숲을 스쳐오는 바람소리 속에서, 맑게 흐르는 산골의 시냇물에서, 혹은 숲에서 우짖는 새소리에서, 비발디나 바흐의 가락보다 더 그윽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빈 방에 홀로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이 넉넉하고 충만하다.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가득 찼을 때보다도 더 충만한 것이다.

<89 . 3>

글출처 : 텅 빈 충만(법정스님 : 샘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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