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오두막에서
도서명 | 오두막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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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에는 일이 있어 세 차례나 남쪽을 다녀왔다. 봄은 남쪽에서 꽃으로 피어난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매화가 그 좋은 향기를 나누어주더니 산수유와 진달래와 유채꽃이 눈부시게 봄기운을 내뿜고, 뒤이어 살구꽃과 복사꽃, 벚꽃이 흐드러지게 봄을 잔치하고 있다.
메마른 가지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다니, 그 꽃에서 고운 빛깔ㄹ이 생겨나고 은은한 향기가 들려오다니,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신비롭기만 하다. 살아 있는 생명의 신비는 그대로가 우주의 조화다. 이 우주의 조화에는 가난도 부도 상관이 없다. 모든 것이 그 때를 알아, 있을 자리에 있을 뿐이다.
꽃은 무심히 피고 소리 없이 진다. 이웃을 시새우거나 괴롭히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꽃에 비하면 그 삶의 모습이 너무 시끄럽고 거칠고 영악스럽다. 꽃이 사람들 눈에 띄는 곳에서 피어나는 것은, 묵묵히 피고 지는 우주의 신비와 그 조화를 보고 배우라는 뜻일 수도 있다.
사람도 그 삶이 순수하고 진실하다면 한 송이 꽃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겠다고, 한 스님이 살다 간 빈 오두막을 보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 절에서 십 분쯤 숲길을 따라 올라간 곳에 자리 잡은 오두막은 벼랑 아래 돌과 흙과 나무로 지어졌다. 마당에 들어서면 앞이 툭 트여 멀리 바다가 내다보이는 그런 곳이다. 빈집인데도 뜰은 말끔히 비로 쓸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집 구조는 수행자가 단촐하게 살기에 알맞도록 간소하고 질박하다. 높지 않은 마루에 올라서면 방 두 개가 장지문으로 이어져 있는데, 한 칸은 선방으로 썼음인지 빈방에 달랑 방석 한 장뿐, 불단으로 쓰기 위해 네모로 벽을 파 놓았는데, 불상은 없고 방석만 좌대 위에 도도록하게 올려져 있었다. 그 빈 자리가 그 방에서 눈길을 끌었다.
장지문을 통해 들어선 작은 방은 유리 대신 투명한 비닐로 창을 바르고 안으로 창호지를 드리워 놓았다. 드리워진 창호지를 걷어 올리면 방 안에 앉아 차를 들면서 멀리 바다를 내다볼 수 있게 하였다. 한쪽에 조촐한 다기(茶器)가 다포에 덮여 있었다. 그 창으로 달빛도 들어오고 봄바다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도 내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방 안은 더 소개할 거리가 없을 만큼 텅 비어있었다.
추녀 밑에는 다음에 와서 살 사람을 위해 장작과 삭정이를 넉넉하게 준비해 두었다. 가지런하고 반듯하게 쌓아 올린 장작더미를 보면 그 일을 할 때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 훤히 짐작할 수 있다.
절에서 오두막으로 올라가는 경사진 길에도 군데군데 통나무로 층계를 만들어 놓아 그 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미끄러지지 않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방 안은 말끔히 도배를 해 놓았다.
그 스님은 지난겨울 한 철(석 달)을 이 오두막에서 지내다 갔는데, 그 자취를 보니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청장한 승가의 규범이 그곳에서 행해진 것을 보는 마음도 맑고 청정해졌다. 한 마음이 청정하면 여러 사람의 마음에도 그 청정의 메아리가 울리게 마련이다.
뒤에 올 사람을 위한 이와 같은 배려는 예전부터 전해 온 전통적인 승가의 말없는 규범인데, 요즘에는 절에서도 마을 집에서도 이런 아름다운 규범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오두막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맑은 가난 속에서 길러진 따뜻한 그 마음씨다. 자기 한 몸만을 위하지 않고 뒤에 와서 살 사람을 배려한 그 마음씨는, 우리에게 보여준 말없는 그의 가르침이다. 오두막을 내려오면서 말없는 그의 가르침이 이 오두막에서만이라도 두고두고 이어지기를 염원했다.
간소하고 질박한 삶의 모습에서 우리는 절제된 아름다움을 숲향기처럼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모자람이 아니라 충만 임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거룩한 가난의 성자, 프란체스코는 수도자의 집과 오두막이 그들의 신분에 어울리도록 보다 작고 간소하게 그리고 편리하게 지어지기를 항상 염원하면서 그런 집에서 머물기를 좋아하였다. 마지막 임종에 이르렀을 때에도 가난과 겸손을 보다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수도자의 집과 오두막은 꼭 나무와 흙으로만 짓도록 당부하였다. 그러면서 이런 집을 개인의 소유로 삼지 말고 그 속에서 순례자나 나그네처럼 살기를 원했다.
절제된 아름다움인 이와 같은 맑은 가난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일시적인 생활방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맑은 가난은 우리가 두고두고 배우면서 익혀 가야 할 항구적이고 지속저긴 청정한 생활규범이 되어야 한다.
절제된 아름다움은 우리를 사람답게 만든다. 불필요한 것을 다 덜어내고 나서 최소한의 꼭 있어야 될 것만으로 이루어진 본질적인 단순 간소한 삶은 아름답다. 그것은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 모습이기도 하다.
글출처 : 오두막 편지(法頂 스님, 이레) 中에서......
메마른 가지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다니, 그 꽃에서 고운 빛깔ㄹ이 생겨나고 은은한 향기가 들려오다니,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신비롭기만 하다. 살아 있는 생명의 신비는 그대로가 우주의 조화다. 이 우주의 조화에는 가난도 부도 상관이 없다. 모든 것이 그 때를 알아, 있을 자리에 있을 뿐이다.
꽃은 무심히 피고 소리 없이 진다. 이웃을 시새우거나 괴롭히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꽃에 비하면 그 삶의 모습이 너무 시끄럽고 거칠고 영악스럽다. 꽃이 사람들 눈에 띄는 곳에서 피어나는 것은, 묵묵히 피고 지는 우주의 신비와 그 조화를 보고 배우라는 뜻일 수도 있다.
사람도 그 삶이 순수하고 진실하다면 한 송이 꽃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겠다고, 한 스님이 살다 간 빈 오두막을 보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 절에서 십 분쯤 숲길을 따라 올라간 곳에 자리 잡은 오두막은 벼랑 아래 돌과 흙과 나무로 지어졌다. 마당에 들어서면 앞이 툭 트여 멀리 바다가 내다보이는 그런 곳이다. 빈집인데도 뜰은 말끔히 비로 쓸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집 구조는 수행자가 단촐하게 살기에 알맞도록 간소하고 질박하다. 높지 않은 마루에 올라서면 방 두 개가 장지문으로 이어져 있는데, 한 칸은 선방으로 썼음인지 빈방에 달랑 방석 한 장뿐, 불단으로 쓰기 위해 네모로 벽을 파 놓았는데, 불상은 없고 방석만 좌대 위에 도도록하게 올려져 있었다. 그 빈 자리가 그 방에서 눈길을 끌었다.
장지문을 통해 들어선 작은 방은 유리 대신 투명한 비닐로 창을 바르고 안으로 창호지를 드리워 놓았다. 드리워진 창호지를 걷어 올리면 방 안에 앉아 차를 들면서 멀리 바다를 내다볼 수 있게 하였다. 한쪽에 조촐한 다기(茶器)가 다포에 덮여 있었다. 그 창으로 달빛도 들어오고 봄바다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도 내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방 안은 더 소개할 거리가 없을 만큼 텅 비어있었다.
추녀 밑에는 다음에 와서 살 사람을 위해 장작과 삭정이를 넉넉하게 준비해 두었다. 가지런하고 반듯하게 쌓아 올린 장작더미를 보면 그 일을 할 때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 훤히 짐작할 수 있다.
절에서 오두막으로 올라가는 경사진 길에도 군데군데 통나무로 층계를 만들어 놓아 그 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미끄러지지 않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방 안은 말끔히 도배를 해 놓았다.
그 스님은 지난겨울 한 철(석 달)을 이 오두막에서 지내다 갔는데, 그 자취를 보니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청장한 승가의 규범이 그곳에서 행해진 것을 보는 마음도 맑고 청정해졌다. 한 마음이 청정하면 여러 사람의 마음에도 그 청정의 메아리가 울리게 마련이다.
뒤에 올 사람을 위한 이와 같은 배려는 예전부터 전해 온 전통적인 승가의 말없는 규범인데, 요즘에는 절에서도 마을 집에서도 이런 아름다운 규범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오두막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맑은 가난 속에서 길러진 따뜻한 그 마음씨다. 자기 한 몸만을 위하지 않고 뒤에 와서 살 사람을 배려한 그 마음씨는, 우리에게 보여준 말없는 그의 가르침이다. 오두막을 내려오면서 말없는 그의 가르침이 이 오두막에서만이라도 두고두고 이어지기를 염원했다.
간소하고 질박한 삶의 모습에서 우리는 절제된 아름다움을 숲향기처럼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모자람이 아니라 충만 임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거룩한 가난의 성자, 프란체스코는 수도자의 집과 오두막이 그들의 신분에 어울리도록 보다 작고 간소하게 그리고 편리하게 지어지기를 항상 염원하면서 그런 집에서 머물기를 좋아하였다. 마지막 임종에 이르렀을 때에도 가난과 겸손을 보다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수도자의 집과 오두막은 꼭 나무와 흙으로만 짓도록 당부하였다. 그러면서 이런 집을 개인의 소유로 삼지 말고 그 속에서 순례자나 나그네처럼 살기를 원했다.
절제된 아름다움인 이와 같은 맑은 가난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일시적인 생활방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맑은 가난은 우리가 두고두고 배우면서 익혀 가야 할 항구적이고 지속저긴 청정한 생활규범이 되어야 한다.
절제된 아름다움은 우리를 사람답게 만든다. 불필요한 것을 다 덜어내고 나서 최소한의 꼭 있어야 될 것만으로 이루어진 본질적인 단순 간소한 삶은 아름답다. 그것은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 모습이기도 하다.
글출처 : 오두막 편지(法頂 스님, 이레)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