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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이나 미국 등지에서 장례식도 유쾌하게 보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장례식을 축제라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만, 이별을 슬퍼하며 목 놓아 울기보다 고인을 위해 펑키 음악이나 재즈 춤, 자녀들의 시 낭송이나 장기자랑까지 상주와 조문객들이 그가 살았을 때 가장 좋아했던 형식으로 장례식을 치른다는 것은 의식이 높아지지 않고선 힘든 일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세상 떠난 뒤 남아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주면 좋을 것 같으신지요?

       어느 날 우리 절에 다니시는 한 할머니가 음악이 담긴 CD 하나를 들고 오셔서,

       “스님 나 떠나고 49재 때 스님께서 목도 아프실 테니 못 알아듣는 염불 많이 하지 마시고,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주십시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죽음을 초연하게 준비하고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좀 멋있지 않으신가요?

       불가에선 선사들이 육신의 허물을 벗기 전에 제자들에게 “나 오늘 떠날란다” 하시고는 바로 앉은 채 좌탈입망(坐脫立亡)하시거나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면서 물질계(物質界)를 떠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제자들이

       “스님, 며칠 뒤에 큰 법회가 있는 날이니, 그 법회를 좀 봐주시고 떠나시지요”

       이렇게 부탁을 드리면 “그러지 뭐” 하시며 며칠 더 사바세계에 머물다 법문하시던 자리에서 내려오자마자 입적하시는 스님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오고 가는 기간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고, 세상에 다시 오기도 하고 다시 오지 않기도 하면서 생사여탈을 자유자재로 하시는 선사들은 그 모든 일들이 번뇌에서 벗어나면 가능한 일이라고 하지요.

       일본 메이지 시대에 하라단신이라는 유명한 선승은 74살에 세상을 떠날 그날을 미리 알아차린 뒤, 임종하기 20분 전에 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쓴 것으로 유명합니다.

       “친구여, 내 육신이 곧 임종을 맞을 것이니, 그 사실을 알리는 바이네.”

       이렇게 딱 한 줄의 편지를 띄우고 세상을 떠났지요. 그 편지가 도착할 즈음 선사는 이미 대자유의 경지에 들어섰으니 뒤늦게 편지를 받은 친구로서는 텅 빈 그림자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어제의 싱싱하고 신선하던 꽃이
    병 들고 시드는 것을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왜 그런 태연한 태도로 질병과 죽음을 
    인정하지 못할까요? 
    

       태어난 것의 변화와 해체, 죽음은 모든 것들이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들입니다. 불교에서는 죽음을 육체와 마음이 분리되는 것이라고 말하지요.

       따라서 죽음이 무엇이 끝났다든지, 막이 내렸다든지, 이렇게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변화하는 한 형태일 뿐입니다.

       우리가 늙어가는 것, 병드는 것, 죽음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는 건, 이런 진리에 대해 부정하는 무지 때문입니다.

    글 출처 :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정목스님, 공감)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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