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미황사/이가림


내리쳐도 내리쳐도
한사코 솟구쳐나오는 머리통을
그 어떤 도끼로도 박살낼 수가 없었나보다
짙푸른 구곡(九曲) 병풍으로 둘러선
산등성이마다
잘생긴 달마들 기웃기웃 서서
동백꽃들 벙근 젖가슴을 보느라
회동그란 눈에
불이 붙어 있었네

영문 모르고
여름 한문 외우기 공부에 붙들려온
땅강아지 같은 아이들
돌담 너머 뙤약볕에 익어가는 까마중에만
한눈 팔려
생각 사(思)자에 마음(心)이
하나같이 떨어져나가고 없었네

허허, 달마산이 바로 절간이거늘
미련한 중생들은 무엇하러 빈 법당에서 빌고 있는가,
한마디 내뱉고 싶어 죽겠는 건달 나그네
일찌감치 절마당에서 빠져나와
풀숲을 휘젓는데
암여치 한 마리 숫여치를 엎고 나는
그 숨가쁜 활공(滑空)의 순간의 사랑
대낮 무지개를 그리고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