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엄마에게서 태어난 것만으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동물적인 나이가 있을 뿐 인간으로서의 정신연령은 부재다. 반드시 어떤 만남에 의해서만 인간은 성장하고 또 형성된다. 그것이 사람이든 책이든 혹은 사상이든 간에 만남에 의해서 거듭거듭 형성되어 간다.

   만난다는 것은 곧 개안(開眼)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세계가 새롭게 열리고 생명의 줄기가 파랗게 용솟음친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비로소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험한 눈길을 헤치고 스승을 찾아간 사나이가 있었다. 스승을 만나기 위해 밤새 내려 쌓이는 차가운 눈 속에 묻히면서도 물러가지 않은 꿋꿋한 사내. 그는 다음날 스승 앞에 자기 팔을 끊어 신(信)을 보인다. 법을 위해 신명(身命)을 버린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젊은 신광(神光)은 달마대사(達磨大師)를 만났다. 그는 일단 자기를 내던짐으로써 거듭 태어나게 되었다. 만남에는 그러한 자기 방기의 아픔을 치러야 한다.

   산문(散文)스러운 시정의 거리에는 저마다 누구를 만나러 감인지 오늘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생명의 환희와 감사의 염이 따르지 않는 것은 만남이 아니라 마주치는 것이요 사교일 따름이다. 만나는 데는 구도적인 엄숙한 자세가 있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런 문제를 지니고 찾아 헤맬 때만 만남은 이루어진다. 나 하나를 어쩌지 못해 몇 밤이고 뜬눈으로 밝히는 그러한 사람만이 만날 수 있다.

   만난 사람은 그때부터 혼자가 아니다. 그는 단수의 고독에서 벗어나 복수의 환희에 설레면서 맑게 맑게 그리고 깊게 깊게 승화한다.

   사람은 혼자 힘으로 인간이 될 수는 없다. 만남에 의해서만 인간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 봄에 우리는 무엇인가 만나야겠다.

   새로운 눈을 떠야 한다.

1967. 3. 19.
글출처 : 영혼의 母音(법정스님, 샘터)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