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샘터

메마른 삶에 한 주걱 맑은 물이 되기를
  • 돌아가기
  • 아래로
  • 위로
  • 목록
  • 댓글

꼬리표를 떼어낼 때, 진정한 그를 만날 수 있다 / 나의 치유는 너다

오작교 50

0

나는 다름 아닌   
내가 하는 생각이다.   
내가 겪는 현실은   
내가 하는 생각들에 지배된다.   

 

   이름 없는 사람도 있을까?
   이름 없는 들꽃이란 말도 있지만 이름 있는 식물학자를 만나면 들꽃은 금방 이름을 되찾거나 새 이름을 얻게 된다. 중남미의 시인 옥타비오 파스는 ‘인간이 미지의 실재와 부딪쳤을 때 제일 먼저 하는 것이 그것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서 그는 ‘이름 붙여지지 않은 것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라고 첨언했다. 

 

   존재에 의미를 붙이고, 사물의 이름을 짓는 시인인 옥타비오 파스로서는 당연한 말이다. 

 

   이름 붙이기에 길들어 있는 우리는 이름도 없이 놓여 있는 사물을 보고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이름을 붙여야 마음이 놓이고, 이름이 있어야 완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고, 모든 것을 말로 바꾸어놓는 일은 세상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모든 것에 의미를 찾거나 부여하고, 모든 것에 판단과 분별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복잡한 일인지.

 

   가슴으로 쓰지 않고 머리로 쓴 시를 사람들이 알 수 없어 하듯, 생각이 많은 사람은 그 많은 생각만큼 복잡한 세상을 살아야 한다. 언어를 통해 진실을 드러내는 시가 상징과 은유를 사용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시나 그림 같은 예술 작품은 머리로 이해하기에 앞서 먼저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수준의 언어라 해도 대상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모습을 왜곡시킬 수 있다. 누가 꽃에게 꽃이라는 이름을 붙여달라 했던가? 언제부터 그게 꽃이었으며, 언제부터 하늘이었고, 언제부터 강이며 바다였던가?

 

   들꽃은 들꽃이라 이름 붙이기 이전에 그냥 그것이었을 것이다. 산 또한 그대로 그것이며, 물도 그대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물은 물이고 산은 다만 산이었을 것이다. 사물에 붙여놓은 이름을 떼버릴 수만 있다면 우리는 편견 없이 사물의 보낼 모습과 만나게 될지 모른다. 나무가 원하는지, 꽃이 원하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붙여놓은 그 이름들이 때로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

 

   ‘모든 배움은 사물의 진정한 이름을 배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라고 했던 옥타비오 파스의 말은 언어를 다루는 시인으로서는 타당하지만, 철학적 차원에선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름 붙여지지 않은 것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라고 덧붙였던 그의 말과 달리 오히려 이름을 붙임으로써 우리는 사물의 본질에 대해 더 모르게 된 건지도 모른다. 

 

   인간이 마음 내키는 대로 붙여놓은 이름은 일종의 꼬리표가 되어 대상을 규명하고 제약한다.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리며 우리는 차가운 사람, 따뜻한 사람, 똑똑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 유능한 사람, 무능한 사람……으로 분류해 꼬리표를 붙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꼬리표가 정말 그 사람일까?

 

   내게 따뜻하게 느껴졌던 사람이 다른 이에겐 차가운 사람으로, 다른 사람에게 똑똑한 사람으로 보였던 사람이 내겐 어리석은 이로 보이는 일을 우리는 무수히 겪어왔다. 각자가 붙여놓은 꼬리표대로 대상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붙여놓은 그 꼬리표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그것이 그 사람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단지 내 편견이 붙여놓은 꼬리표를 그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런 편견 없이 내 안에 대상을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라고 표현한다. 대상으로부터 꼬리표를 떼어내고, 있는 그대로 그것을 바라볼 때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밉게만 보이던 그 사람이 사실은 내게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름 없는 들꽃의 이름을 찾아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그 이름이 들꽃이 원하는 이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하는 일마다 신경을 건드리며 미운 것만 골라 하는 그 사람에게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면이 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해두자. 마주치는 대상마다 꼬리표를 다는 일은 쉽다. 그러나 편견 없이 내 안에 대상을 받아들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꼬여 있는 인간관계는 대부분 내가 그에게, 그리고 그가 내게 붙여놓은 꼬리표 때문에 빚어진 경우가 많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면 먼저 그 사람에게 붙여놓은 꼬리표부터 떼어내자. 편견 없이 내 안에 누군가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밝은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글 출처: 나의 치유는 너다(김재진, 쌤앤파거스)

공유스크랩
0
댓글 등록
취소 댓글 등록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삭제하시겠습니까?

목록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normal
오작교 25.01.11.18:27 50
476
normal
오작교 25.01.10.19:31 93
475
normal
오작교 25.01.10.19:16 91
474
file
오작교 25.01.03.10:00 153
473
normal
오작교 24.12.29.07:17 234
472
normal
오작교 24.12.19.10:57 344
471
normal
오작교 24.12.05.10:14 651
470
normal
오작교 24.12.05.10:06 602
469
normal
오작교 24.11.29.11:17 1143
468
normal
오작교 24.11.26.20:28 1103
467
normal
오작교 24.11.26.20:19 1199
466
normal
오작교 24.11.26.20:05 1072
465
normal
오작교 24.11.21.09:23 1388
464
normal
오작교 24.11.19.11:25 1358
463
normal
오작교 24.11.19.11:02 1339
462
normal
오작교 24.11.05.13:31 1784
461
normal
오작교 24.10.30.14:52 2001
460
normal
오작교 24.10.30.14:20 2052
459
normal
오작교 24.10.30.14:13 2044
458
normal
오작교 24.10.22.09:15 2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