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두자 / 나를 격려하는 하루
녹말가루를 물에 풀었다가 한동안 놓아두면, 가루는 모두 밑바닥에 가라앉고 다시 말은 물이 위로 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끔 너무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시간이 지난 녹말 물처럼 온갖 상념이 다 가라앉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한 교육자는 이야기합니다. 학생들이 반드시 경험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한가한 시간을 견디는 힘'이라고.
한가한 시간, 가만히 있어 보는 시간을 경험하는 것이 성장기에 꼭 필요하다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부모들은 아이들을 한 시간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공부해라, 학원가라, 책 읽어라, 운동해라, 피아노 쳐라...
한순간도 가만히 있을 여유가 없는 아이들은 책상 앞에 앉아서 사시나무처럼 다리를 떨거나 컴퓨터 게임기의 버튼을 미친 듯이 눌러대야 마음이 오히려 안정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가장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내가, 아이들아, 세상이 나를 좀 가만히 내버려뒀으면 좋겠어요."
고요한 호수처럼 쉴 시간이 필요하지만 세상은 무거운 짐을 진 가장들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회사에 가면 정신없이 일해야 하고, 차와 사람들이 홍수를 이루는 출퇴근길을 헤치고 다녀야 하고, 집에 돌아오면 '왜 당신은 말이 없냐.'고 싫은 소리를 하는 아내에게 시달려야 하고, 아이들은 아빠랑 무언가 하고 싶다 요구하고....
주부들은 주부들대로 정말 딱 하루만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 봤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누구나 소설<좀머 씨 이야기> 속의 좀머 씨처럼 '나를 좀 가만히 내버려둬!' 하고 외치고 싶은 순간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 ❤️
상처에도 그렇고, 삶에도 그렇고,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에게도 그렇고, 우리의 소중한 자녀들에게도 그렇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그렇고, 나 스스로에게도 그렇습니다. 모두에게는 가만히 내버려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빈집처럼 아물기를 기다리는 상처처럼, 녹말 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시간처럼,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이른 새벽처럼....
글 출처: 나를 격려하는 하루(김미라, 나무생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