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가기
  • 아래로
  • 위로
  • 목록
  • 댓글

현대시100년, [영상기획(75)] 성북동 비둘기-김광섭

개울 506

3

성북동 비둘기-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1968년
****************************************


  • [詩 감상: 정끝별 시인]
  • 김광섭(1905~1977) 시인의 호는 이산(怡山), '기쁜 산'이다.
    그는 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창씨개명을 반대한 애국교육자, 광복 후 중앙문화협회를 창립한 우익 문단의 건설자,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을 지낸 정치인, 언론사 편집국장을 지낸 언론인으로 현대사 100년을 정말 '산'처럼 살았다.
    실제로도 그는 늘 산을 향해 있었다.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뎄다가는/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 놓고 먼 산속으로 간다"(〈산〉),
    "목마른 아스팔트를 옆으로 빠져서/ 나는 계절이 풀리는 산으로 간다"(〈산바람처럼〉).

  • '남포 깐다' '남포 튼다'는 말이 있었다. 남포란 다이너마이트를 이르는 말이다.
    이 개발 저 개발로 너도나도 산업화의 역군이었던 60~70년대 내내 대한민국 전역에
    이 산 저 산을 깨는 남포 소리 울려 퍼졌었다.
    산을 깎아 돌을 채취하고 도로를 만들고 빌딩을 올리곤 했다.
    뻥 뻥 남포를 까면 산에 살던 뭇 짐승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고 강에 살던 뭇 물고기들은 기절을 하기도 했다.
     뻥 뻥 남포 까는 소리에 밤 보따리를 싸들고 서울로, 서울로 몰려든 사람들이 산동네, 달동네로 몰리던 시절이었다.
    이 시의 창작 배경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돌 깨는 소리가 채석장에서 울리면 놀라서 날아오르는 새들, 그러나 저것들이 우리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 줄 것인가.
    돌 깨는 산에서는 다이너마이트가 터지고 집들은 모두 시멘트로 지어서 마음 놓고 내릴 장소도 없는 저것들이란 데 생각이 머물렀어요." 고혈압으로 쓰러져 투병하던 중 성북동 집 마당에 앉아 하늘을 돌아나가는 비둘기떼를 보고 착상했다고 한다.

  • 성북동 산과 산동네가 개발되면서 산비둘기는 둥지를 빼앗겼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인간들이 산을 깨는 것과 비둘기들 가슴에 금이 가는 것을 대비시키고 있다.
    이제 산비둘기들은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그렇게 쫓긴 산비둘기들이 거리로, 광장으로, 고가 밑으로, 옥상으로,
    창턱으로 흰 똥을 찍찍 내갈기며 뒤뚱뒤뚱 걸어다니고 있다.
    산동네, 달동네 사람들도 그렇게 내쫓기곤 했다.
    재개발과 산업화와 도시화와 문명화의 이면이었다.
    유심초가 부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노래로 더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저녁에〉)라는 시를 읊조려 보는 아침이다.
     

공유
3
오작교 2008.10.23. 22:28
개울님.
역시 영상시의 대가다운 솜씨임을 느낍니다.
이렇게 멋진 작품을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울 2008.10.24. 09:32
엊그제(22일), 도솔님의 방문으로 같이 술 한 잔하며 담소 중,
오작교님에 대한 여러가지 얘기를 듣게 되었답니다.
전 부터 오작교님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
솔직히
제 괴팍한 성격에 개인 홈 방문시,
<회원가입>란에 주민번호 쓰고 기타 다른 기재사항을 올리라 하면
게시물도 올리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곤 하였는데...
****
남원에 계신다니 더욱 반갑습니다.
사실 저도, 동부 노암동이 고향이랍니다.
그리고 남원의<성 한약방>의 원장과 같은 동창이구요...
앞으로 자주 들리겠습니다.
설마, 같은 동향인 인 "개울"을 내 쫒진 않으시겠죠?ㅎㅎㅎ
고향에 내려가면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제인 2008.10.26. 09:21


개울님 영상에 빠져서
마치 성북동에 내가 서 있어
비둘기를 쳐다 보는듯 빠져듭니다..
멋진 영상 감사해요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취소 댓글 등록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삭제하시겠습니까?

목록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삭제

"현대시100년, [영상기획(75)] ..."

이 게시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이 게시판 에디터 사용설명서 오작교 12.06.19.11:12 50718
공지 카페 등에서 퍼온글의 이미지 등을 끊김이 없이 올리는 방법 2 오작교 10.07.18.20:19 68984
공지 이 공간은 손님의 공간입니다. WebMaster 10.03.22.23:17 75857
5359
normal
고등어 08.10.26.23:55 481
5358
normal
雲谷 08.10.24.11:02 467
5357
normal
개울 08.10.24.09:35 472
5356
normal
고등어 08.10.24.08:45 504
normal
개울 08.10.23.13:48 506
5354
normal
세븐 08.10.23.12:31 413
5353
normal
雲谷 08.10.23.00:36 449
5352
normal
고암 08.10.22.08:56 470
5351
normal
장호걸 08.10.21.21:22 424
5350
normal
수미산 08.10.20.22:05 472
5349
normal
雲谷 08.10.20.06:11 412
5348
normal
고등어 08.10.19.08:16 480
5347
normal
바위와구름 08.10.18.15:21 471
5346
normal
雲谷 08.10.17.15:07 492
5345
normal
장호걸 08.10.16.17:11 463
5344
normal
고암 08.10.15.09:36 480
5343
normal
세븐 08.10.13.13:23 481
5342
normal
장호걸 08.10.13.07:19 425
5341
normal
雲谷 08.10.12.22:07 457
5340
normal
바위와구름 08.10.12.16:10 4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