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사랑한 억새꽃

가을볕은
은빛 머리 찰랑이는 억새를 사랑했더래.

따스한 미소로 손 내미는 가을햇살을 마다하고
억새꽃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사랑했더래.

고개 돌리면 바로 거기 사랑이 있는데
언제 올지…어디서 불어올지도 모르는 바람을 기다리며
애타게 발돋움하느라 억새는 목이 긴 소녀가 되었더래.


억새를 사랑한 가을볕과 바람을 사랑한 억새꽃….
사랑은 그런 거래. 마음의 방향이
늘 같은 방향이지는 않은 것…그래서 아픈 거래.



금빛 가을햇살은 억새를 사랑하여 은물결지고
은빛 머리 풀어헤친 억새꽃은 바람에게 마음을 주며 술렁대는…
가을 사랑은 그런 거래. 바람이 부는 대로 흩날리는 거래.


바람을 찾아 매정하게 돌아서 버린
억새의 뒷모습만 쫓아다니는
가을볕의 기인 한숨 소리가 들리지 않니?



바람을 사랑했으나 바람의 등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억새꽃의 눈물방울이
바람결 따라 함께 흩어지는 소리도 들려오잖아.


억새의 은빛 머리 빗어 넘기며
단 한 순간도 머무르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것이
바람의 사랑이고

바람을 끌어안지 못해 애타는 억새꽃이
바람결 따라 이리저리 물결치는 것은 억새꽃의 사랑이고,

억새의 은빛 물결 뒤쫓아 함께 찰랑거리는 것이
또한 가을볕의 사랑인 거래.


해질녘 억새밭에 호올로 서 보렴.

 

억새의 마음을 돌이켜 세우지 못하여
눈 시리게 부서지는
햇살의 아픔이 보이지 않니?


쓸쓸히 저물어가는 가을볕 아래
억새들의 은빛 아우성도 들려올 거야.

억새꽃의 아픈 사랑을 등에 지고 길을 떠나는
바람의 외로움도 보일 거고,

다정하게 얼굴을 어루만지는 가을볕보다
어디로 불어갈지 모르는 바람을 사랑한

억새꽃의 한숨으로
속절없이 저물어가는
가을 저녁도 보일 거야.


바람을 끌어안고
바람과 함께 머무르고 싶지만


사랑이 머무르지 않는 것임을
억새꽃은 이미 알고 있지.


사랑은 바람 같은 것…
그래서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바람을 사랑한 억새꽃은 알고 있는 거야.

(억새와 달뿌리풀과 갈대 전설)

다정한 친구 사이인 억새와 달뿌리풀과 갈대가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서 길을 떠났습니다.

긴 팔로 춤을 추며 가다 보니
어느덧 산마루까지 올라가게 되었지요.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억새와 달뿌리풀은 줄기에 드문드문 나 있는
기다란 잎들이
바람에 휘날려서 견디기가 몹시 힘들었지만
길다란 잎이 뿌리 쪽에 나 있는 억새는 견딜만했지요.

"와, 시원하고 경치도 좋네.
사방이 한 눈에 보이는 여기가 참 좋아. 난 여기서 살래."
억새의 말에 갈대와 달뿌리풀은
난 추워서 산 위는 싫어. 더 낮은 곳으로 갈래."
하고 억새와 헤어져 산 아래로 내려갔지요.

한참을 내려가다가 개울을 만났어요.
마침 둥실 떠오른 달이 물에 비치는 모습에 반한
달뿌리풀이 말했습니다.

"난 여기가 좋아.
여기서 달그림자를 따라서 뿌리를 뻗어갈 수도 있겠고..
여기서 살자."
달뿌리풀은 땅 위로 뿌리를 뻗었어어요.

갈대가 개울가를 둘러보니
둘이서 살기에는 좁았습니다.

식구들도 더 늘어나면 더욱 안 되겠단 생각이 들어서
달뿌리풀과 작별하고
더 아래쪽을 향하여 며칠을 걸어 갔는데
앞이 바다로 막혔어요.

갈대는 더 이상 갈 수가 없어서
바다가 보이는 강가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답니다.

구름이 지나다 풀잎위에 눞더니
바람이 지나다 구름들을 흩어 놓아
너를 만들어 내었나보다

구름인듯 바람인듯
갸녀린 허리를 흔들며
올 겨울의 찬서리를 저편에 숨겨놓고

지나는 바람의 속삭임을
노래하는 너와 함께
삶의 무게를 언덕위에 벗어놓고

나도 너처럼 바람의 노래를 불러 본다
해저믈도록 생각해도
알수없을 노래들을

갈대

갈대의 꽃모양

억새의 꽃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