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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비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다 / 詩: 이정하 誦: 정경애 & 남경주

오작교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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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비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다.

                                          詩: 이정하 誦: 정경애 & 남경주

 

햇볕은 싫습니다.
그대가 오는 길목을 오래 바라볼 수 없으므로.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비에 젖을수록 오히려 생기 넘치는 은사시나무,
그 은사시나무의 푸르름으로 그대의 가슴에
한 점 나뭇잎으로 찍혀 있고 싶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대.
비 오는 날이라도 상관없어요.
아무런 연락 없이 갑자기 오실 땐
햇볕 좋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 제격이지요.

 

그대의 젖은 어깨, 그대의 지친 마음을
기대게 해 주는 은사시나무, 비 오는 간이역.
그리고 젖은 기적 소리.
스쳐 지나가는 급행열차는 싫습니다.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지나가 버려
차창 너머 그대와 닮은 사람 하나
찾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비에 젖으면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그대처럼 더디게 오는 완행열차,
그 열차를 기다리는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정하(1962.~, 대구 출생)

 

시인은 사랑에 대한 감정을 비교적 솔직하고 쉬운 언어로 표현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는 시집이 1995년 발간되어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도 있었습니다.

 

시인의 대표작으로는 “사랑의 이율배반”, “사랑하는 이유” “낮은 곳으로”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사랑”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 “한 사람을 사랑했네” “간격” “종이배” “숲” “바람 속을 걷는 법” “기다리는 이유” “세상의 수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 “별” “꽃잎의 사랑” “그 저녁 바다” “눈이 멀었다” “황혼의 나라” “삶의 오솔길을 걸으며” 등이 있습니다.

 

위 시는 시인의 시집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는 제목의 시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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