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 매화피다
도서명 | 텅 빈 충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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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그림에는 한겨울 눈 속으로 매화를 찾아 나서는 풍경들이 더러 있다. 17세기의 뛰어난 화가 현제 심사정의 ‘파교심매도’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눈이 쌓여 있는 산천 어딘가에 매화가 피어 있더라는 소식이라도 전해들은 듯, 차양이 달린 모자와 두툼한 겉옷을 걸치고 나귀 등에 앉아 바야흐로 다리를 건너려고 하는 그런 풍경이다. 그 뒤에는 바싹 동자가 따르고 있는데, 돗자리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준비한 듯 식지 않게 도자기로 싼 것을 긴 막대길 꿰어 메고 간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 그림을 처음 대했을 때는 그저 무심히 스치고 말았었다. 그러다가 박물관을 지금의 자리로 옮긴 후 유심히 보고서는, 우리 옛 선인들의 운치와 멋을 지닌 삶의 뒤뜰이 엿보여 내 발걸음을 오래 멈추게 했다.
오늘처럼 바쁘고 시끄럽고 정신없이 휘말려 살아가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이런 그림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의 터전에 한 가닥 맑은 바람을 일으킨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게 해준다.
이 그림의 화제(畵題)인 파교삼매의 파교(灞橋)는 중국 장안 동쪽에 있는 파수 위에 걸린 다리인데, 옛날 사람들이 이별할 때 이 다리에 이르러 버들가지를 꺾어 아쉬운 별리의 정을 나누었다는 고사가 있다.
15세기의 선비 화가로 시(詩)·서(書)·화(畫)에 통달한 영천자 신잠의 그림에도 눈 속의 한매(寒梅)를 찾아가는 탐매도(探梅圖)가 있다. 역시 나귀를 타고 다리 끝에 피어 있는 매화를 찾아 가는 그림이다. 장축(長軸)으로 된 이 그림에는 또 더벅머리를 한 사내가 동저고릿바람으로 눈 속의 매화를 찾아가는 모습이 조금은 춥게 보인다.
눈 속에 꽃을 찾아가는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꽃다운 것인가. 꽃을 가꿀 만한 뜰을 갖지 못한 현대의 도시인들은, 때로는 꽃시장에라도 가서 싱그럽게 피어나는 꽃을 볼 일이다. 맑고 향기롭게 피어 있는 꽃의 아름다움을 즐길 뿐 아니라, 자신의 삶에도 이런 맑음과 향기와 운치가 있는지를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육신의 건강을 우해서는 민감하게 신경을 쓴다. 무엇이 몸에 좋다네 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걸 구해다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난 육신에 대해서는 자나 깨나 마음을 쓰면서, 바로 자신의 영혼의 투명도나 정신 상태에 대해서는 거의 무신경한 형편이다.
사람이란 육신으로만 이루어진 것일까? 그것은 짐승의 고깃덩이나 다를 게 없다. 그 안에 영혼이 깃들어 있어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하면서 끝없이 삶을 개선해 나아가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람은 천층만층이다. 생활환경에 따라 삶의 양상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람이 지향하고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처럼 산업화되고 도시화되면서 인간의 영역이 말할 수 없이 닳아져 가는 세상에서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져야 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삶의 가장 은밀하고 향기롭고 신비로운 내면의 뜰 같은 것. 한 송이 꽃이나 차를 통해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삶의 의미와 기쁨을 누리면서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이란 결코 큰 데 있지 않다. 사소하고 미미한 것들 속에 행복은 보석처럼 박혀 있다. 또한 그 아름다움이 먼 데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일상 속에 함께 있으면서도 그걸 찾아낼 줄을, 볼 줄을 모를 뿐이다. 현대인의 정서가 날이 갈수록 삭막해지고 황량해지는 것은 단지 우리들의 외부 환경에만 그 원인이 있지 않다. 아름다움을 찾고 가꾸려는 우리들의 눈과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눈과 생각이 무엇엔가 혹해서 흐려 있기 때문에 바로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10년 남짓 뜰에서 마주 대하던 매화가 지난 여름에 시들어버렸다. 해마다 3월 초순께 꽃을 피우고 오뉴월이면 열매가 맺혀 매실차를 담그고 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봄의 꽃철에도 환하게 꽃을 피웠는데 열매가 맺히면서 나무가 마르기 시작했다. 그전 같으면 하루가 다르게 열매가 토실토실 여물어 가는 것을 눈으로 지켜볼 수 있었는데, 그 열매가 자구만 졸아드는 걸 보고 매화나무에 이상이 생긴 것을 비로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꽃을 반겨하고 열매를 거둘 줄은 알면서도 나무의 생태에 대해서 무지한 나로서는 시들어가는 나무에 대해서 속수무책이었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마른 가지를 한두 가지씩 잘라 내다가 마침내 줄기까지 베어내고 말았다. 그 빈자리가 몹시 서운했다.
그 매화나무는 이 암자를 지은 대목(大木)의 아들이 산 너머에서 몸소 져다가 심어주었다. 자기 아버지가 집을 지었으니 자기는 나무라도 한 그루 심고 싶다는 뜻에서였다. 용채라는 그 청년의 고마운 뜻을 꽃이 필 때마다 기리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산 너머 그 동네가 댐이 생기는 바람에 수몰이 되어 지금은 어디 가서 무얼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알 길이 없다.
같은 조계산이면서도 양지바른 선암사 쪽에서는 매화가 일직 핀다. 송광사에는 아직 꽃이 필 생각도 하지 않는데 산 너머에 가보면 꽃이 활짝 피어 있는 걸 보고 기온의 차를 실감하게 된다.
30대 후반 서울 변두리의 절에서 기거할 때, 어느 해 초봄 한 달 가까이 나는 혼자서 영남과 호남의 산사를 순례한 적이 있다. 주로 도보로 다니던 때라 연일 계속되는 나그넷길에 어지간히 지쳐 있었다. 하동 쌍계사에서 구례구까지 왔다가 기차로 학구에 내려 마침 선암사로 들어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듬성듬성 안자 있던 사람들도 도중에 다 내리고 절 동구에 가까워지자 승객이라고는 달랑 나 하나뿐이었다.
그때 마침 차 안에서는 남도의 육자배기 가락이 흘러 나왔다. 으슬으슬 추운 초봄 토우가 엷게 산촌을 스치던 날, 한에 서린 그 육자배기 가락이 그 산천의 빛깔과 분위기에 어찌나 어울리던지 차가 종점에 이르렀어도 나는 내릴 줄을 몰랐다. 노래란 그 흙 속에서 그 바람 속에서 태어난 것이기에, 도한 그런 분위기에서 들어야 제격이겠구나 싶었다.
선암사 경내에 들어서자 양지바른 돌담 아래 여기저기 매화가 허옇게 피어 있었다. 은은한 꽃향기며 낡아서 반쯤 허물어진 돌담과 그 곁에 흐르는 홈대물이, 살결이 거칠거칠 트는 이른 봄날과 얼마나 잘 어리는지 나는 배고픈 줄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양지쪽에 앉아서 한참을 보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꿈같은 정경이다.
그대 생각에, 이다음 어디 가서 조촐히 살게 되면 반드시 뜰에 매화나무를 몇 그루 심으리라고 속으로 다졌었다.
언젠가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에서 후봉 조희룡의 매화서옥도(梅畵書屋圖)를 보았을 때, 만발한 매화로 온통 둘러싸인 그 조그만 서옥(書屋) 속에 사는 주인은 참으로 행복하겠구나 싶어 한없이 부러워했었다. 비록 보잘것없는 집일지라도 그 둘레의 화묵으로 인해서 얼마나 기품을 풍겨주는지, 우리는 이 그림을 통해서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지난 세모(歲暮), 지영이네 아버지가 꽃망울이 잔뜩 부풀어 오른 매화 분을 하나 보내왔었다. 높아 한 자 남짓밖에 안 되는 나무인데 온몸에 꽃망울을 달고 있었다. 마루에 놓아두고 이따금 햇볕을 쪼이고 물을 주었더니, 엊그제부터 마침내 꽃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밖에는 눈발이 흩날리는데 은은한 향기와 함께 꽃을 피우는 매화 분이 참으로 기특하고 고맙다. 내 안에서도 저토록 맑은 향기와 기품 있는 꽃을 피울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어 있을까? 자못 두렵다.
우리 옛 시조에 이런 글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 그림을 처음 대했을 때는 그저 무심히 스치고 말았었다. 그러다가 박물관을 지금의 자리로 옮긴 후 유심히 보고서는, 우리 옛 선인들의 운치와 멋을 지닌 삶의 뒤뜰이 엿보여 내 발걸음을 오래 멈추게 했다.
오늘처럼 바쁘고 시끄럽고 정신없이 휘말려 살아가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이런 그림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의 터전에 한 가닥 맑은 바람을 일으킨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게 해준다.
이 그림의 화제(畵題)인 파교삼매의 파교(灞橋)는 중국 장안 동쪽에 있는 파수 위에 걸린 다리인데, 옛날 사람들이 이별할 때 이 다리에 이르러 버들가지를 꺾어 아쉬운 별리의 정을 나누었다는 고사가 있다.
15세기의 선비 화가로 시(詩)·서(書)·화(畫)에 통달한 영천자 신잠의 그림에도 눈 속의 한매(寒梅)를 찾아가는 탐매도(探梅圖)가 있다. 역시 나귀를 타고 다리 끝에 피어 있는 매화를 찾아 가는 그림이다. 장축(長軸)으로 된 이 그림에는 또 더벅머리를 한 사내가 동저고릿바람으로 눈 속의 매화를 찾아가는 모습이 조금은 춥게 보인다.
눈 속에 꽃을 찾아가는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꽃다운 것인가. 꽃을 가꿀 만한 뜰을 갖지 못한 현대의 도시인들은, 때로는 꽃시장에라도 가서 싱그럽게 피어나는 꽃을 볼 일이다. 맑고 향기롭게 피어 있는 꽃의 아름다움을 즐길 뿐 아니라, 자신의 삶에도 이런 맑음과 향기와 운치가 있는지를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육신의 건강을 우해서는 민감하게 신경을 쓴다. 무엇이 몸에 좋다네 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걸 구해다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난 육신에 대해서는 자나 깨나 마음을 쓰면서, 바로 자신의 영혼의 투명도나 정신 상태에 대해서는 거의 무신경한 형편이다.
사람이란 육신으로만 이루어진 것일까? 그것은 짐승의 고깃덩이나 다를 게 없다. 그 안에 영혼이 깃들어 있어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하면서 끝없이 삶을 개선해 나아가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람은 천층만층이다. 생활환경에 따라 삶의 양상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람이 지향하고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처럼 산업화되고 도시화되면서 인간의 영역이 말할 수 없이 닳아져 가는 세상에서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져야 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삶의 가장 은밀하고 향기롭고 신비로운 내면의 뜰 같은 것. 한 송이 꽃이나 차를 통해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삶의 의미와 기쁨을 누리면서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이란 결코 큰 데 있지 않다. 사소하고 미미한 것들 속에 행복은 보석처럼 박혀 있다. 또한 그 아름다움이 먼 데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일상 속에 함께 있으면서도 그걸 찾아낼 줄을, 볼 줄을 모를 뿐이다. 현대인의 정서가 날이 갈수록 삭막해지고 황량해지는 것은 단지 우리들의 외부 환경에만 그 원인이 있지 않다. 아름다움을 찾고 가꾸려는 우리들의 눈과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눈과 생각이 무엇엔가 혹해서 흐려 있기 때문에 바로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10년 남짓 뜰에서 마주 대하던 매화가 지난 여름에 시들어버렸다. 해마다 3월 초순께 꽃을 피우고 오뉴월이면 열매가 맺혀 매실차를 담그고 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봄의 꽃철에도 환하게 꽃을 피웠는데 열매가 맺히면서 나무가 마르기 시작했다. 그전 같으면 하루가 다르게 열매가 토실토실 여물어 가는 것을 눈으로 지켜볼 수 있었는데, 그 열매가 자구만 졸아드는 걸 보고 매화나무에 이상이 생긴 것을 비로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꽃을 반겨하고 열매를 거둘 줄은 알면서도 나무의 생태에 대해서 무지한 나로서는 시들어가는 나무에 대해서 속수무책이었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마른 가지를 한두 가지씩 잘라 내다가 마침내 줄기까지 베어내고 말았다. 그 빈자리가 몹시 서운했다.
그 매화나무는 이 암자를 지은 대목(大木)의 아들이 산 너머에서 몸소 져다가 심어주었다. 자기 아버지가 집을 지었으니 자기는 나무라도 한 그루 심고 싶다는 뜻에서였다. 용채라는 그 청년의 고마운 뜻을 꽃이 필 때마다 기리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산 너머 그 동네가 댐이 생기는 바람에 수몰이 되어 지금은 어디 가서 무얼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알 길이 없다.
같은 조계산이면서도 양지바른 선암사 쪽에서는 매화가 일직 핀다. 송광사에는 아직 꽃이 필 생각도 하지 않는데 산 너머에 가보면 꽃이 활짝 피어 있는 걸 보고 기온의 차를 실감하게 된다.
30대 후반 서울 변두리의 절에서 기거할 때, 어느 해 초봄 한 달 가까이 나는 혼자서 영남과 호남의 산사를 순례한 적이 있다. 주로 도보로 다니던 때라 연일 계속되는 나그넷길에 어지간히 지쳐 있었다. 하동 쌍계사에서 구례구까지 왔다가 기차로 학구에 내려 마침 선암사로 들어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듬성듬성 안자 있던 사람들도 도중에 다 내리고 절 동구에 가까워지자 승객이라고는 달랑 나 하나뿐이었다.
그때 마침 차 안에서는 남도의 육자배기 가락이 흘러 나왔다. 으슬으슬 추운 초봄 토우가 엷게 산촌을 스치던 날, 한에 서린 그 육자배기 가락이 그 산천의 빛깔과 분위기에 어찌나 어울리던지 차가 종점에 이르렀어도 나는 내릴 줄을 몰랐다. 노래란 그 흙 속에서 그 바람 속에서 태어난 것이기에, 도한 그런 분위기에서 들어야 제격이겠구나 싶었다.
선암사 경내에 들어서자 양지바른 돌담 아래 여기저기 매화가 허옇게 피어 있었다. 은은한 꽃향기며 낡아서 반쯤 허물어진 돌담과 그 곁에 흐르는 홈대물이, 살결이 거칠거칠 트는 이른 봄날과 얼마나 잘 어리는지 나는 배고픈 줄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양지쪽에 앉아서 한참을 보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꿈같은 정경이다.
그대 생각에, 이다음 어디 가서 조촐히 살게 되면 반드시 뜰에 매화나무를 몇 그루 심으리라고 속으로 다졌었다.
언젠가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에서 후봉 조희룡의 매화서옥도(梅畵書屋圖)를 보았을 때, 만발한 매화로 온통 둘러싸인 그 조그만 서옥(書屋) 속에 사는 주인은 참으로 행복하겠구나 싶어 한없이 부러워했었다. 비록 보잘것없는 집일지라도 그 둘레의 화묵으로 인해서 얼마나 기품을 풍겨주는지, 우리는 이 그림을 통해서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지난 세모(歲暮), 지영이네 아버지가 꽃망울이 잔뜩 부풀어 오른 매화 분을 하나 보내왔었다. 높아 한 자 남짓밖에 안 되는 나무인데 온몸에 꽃망울을 달고 있었다. 마루에 놓아두고 이따금 햇볕을 쪼이고 물을 주었더니, 엊그제부터 마침내 꽃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밖에는 눈발이 흩날리는데 은은한 향기와 함께 꽃을 피우는 매화 분이 참으로 기특하고 고맙다. 내 안에서도 저토록 맑은 향기와 기품 있는 꽃을 피울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어 있을까? 자못 두렵다.
우리 옛 시조에 이런 글이 있다.
매화 한 가지에 새달이 돋아오니 달에게 묻는 말이 매화의 흉을 네 아느냐 차라리 내가 네 몸 되면 가지가지 돋으리라매화 가지마다 달이 돋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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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출처 : 텅 빈 충만(법정스님 : 샘터)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