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에서 '법을 몰랐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요즘 들어 변호사나 법무사 등 법률 전문가의 도움 없이 '나 홀로 소송'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법률정보가 갈수록 공개되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법률용어와 재판절차를 스스로 터득해가면서 자신의 권리를 찾는 사람들을 보면, 한 마디로 대단하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는 법.

 

   단순히 비용을 아낀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준비나 법률지식도 없이 무작정 덤볐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절차를 잘 몰라서 불필요하게 재판을 오래 끌게 되거나, 이길 수 있는 소송도 패소하여 손해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는 적절한 법률적 대응을 하지 못해 형사처벌을 받는 사람도 보게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재판을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다.

 

 

'억지소송'에 대응하지 않다가 패소판결 받기도

 

  사례 1

 

중소기업에 물건을 납품하는 甲은 졸지에 생돈 2,000만 원을 물어주게 생겼다. 거래처 중 한 곳인 乙 회사 쪽에서 소송을 걸어왔는데, 그대로 방치한 탓이다. 소장의 요지는 “甲이 제공한 물건에 하자가 생겨서 乙 회사가 손해를 입었으므로 2,000만 원을 배상하라”라는 것이었다. 乙 회사의 주장은 억지였다. 이를 잘 알고 있는 甲은 법원에서 잘 알아서 판단해 주겠거니 생각하고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달 후 법원은 乙 회사의 손을 들어주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어떻게 된 일일까? 뒤늦게 법률사무소를 찾은 甲은 자신을 원망했다. 민사소송법에는 소장을 받은 피고가 30일 이내에 답변서를 내지 않으면 원고의 주상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고 변론 없이 바로 판결을 내릴 수 있다고 되어 있다(민사소송법 제256조 1항, 제257조 1항 참조). 甲은 그제야 자신이 ‘무변론판결’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甲은 부랴부랴 변호사를 선임하여 항소장을 제출했다.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뒤집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진작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만일 甲이 법원에 답변서 한 장만 제대로 써냈더라면? 결과는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민사재판에서 침묵은 금이 아니다.

 

 

무신경 때문에 교도소에 간 丙

 

  사례 2

 

  홈쇼핑을 운영하는 丙은 사업 자금을 빌렸다가 제때 갚지 않아서 채권자들에게 사기죄로 고소당했다. 1심 법원은 丙이 애초부터 돈을 갚을 의사가 없었고, 능력이 되면서도 고의로 돈을 갚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법정구속을 하지 않았다.

 

  항소심에서 丙이 피해자와 합의를 해서 선처를 받으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상소장을 내고 한 달 후 법원은 丙에게 항소기각 결정문을 보내왔다. 丙이 법원의 소송 접수 통지를 받고도 항소이유서를 제때(법으로 정한 20일 이내) 써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丙은 재판 한 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교도소를 가게 됐다.

 

 

   문제는 甲, 丙의 경우처럼 법정에서 충분히 다퉈볼 만한 사안인데도 ‘잘 되겠지’ 하고 크게 신경을 쓰지 않다가 자신의 권리를 찾자 못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라는 데 있다. 형사사건에서 약식명령을 받은 다음에 정식재판을 청구하지 않아 전과자가 되는 사람, 상소·이의신청 기간을 넘기는 바람에 자신의 권리를 잃게 되는 사람, 법원의 보정 명령을 받고 방치했다가 소송이 각하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당사자는 억울하기 짝이 없겠지만, 양쪽이 치열하게 싸우는 법정에서 “법을 몰랐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3년 만에 의료소송 일부 승소. 몸도 마음도 지쳐

 

   이와는 달리 丁과 같이 재판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안타까운 사람들도 더러 있다.

 

 

  사례 3

 

  丁은 감격적인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소소을 시작한 지 3년 만이다. 丁은 E 병원의 오진으로 병세가 악화됐고, 후유증까지 생겼다. 丁은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후 E 병원 쪽에 항의햇다. 그러나 병원이 책일을 인정하지 않자 결국 소송을 걸었다.

 

  이때부터 丁은 혼자서 자신의 진료기록을 검토하고 의학서적과 법률서적을 찾아가면서 공부를 했다. 

 

  대법원까지 간 후에야 丁은 비로소 일부 승소판결을 얻을 수 있었다. 丁은 병원의 책임을 밝혀냈지만, 한편으로 기쁨 못지않게 허탈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재판을 끝낸 丁의 몸과 마음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송사 3년 동안 직장과 가정생활에 끼친 지장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판결로 받게 된 손해배상 금액도 丁이 받은 상처와 그동안의 노력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었다. 재판부는 병원 측의 책임을 일부만 인정했다. 丁의 입증이 부족했다고 본 것이다. 이쯤 되면 재판에서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다. 

 

   가끔 언론에서는 나 홀로 소송에서 어렵사리 승소한 당사자를 인간 승리로 추켜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몸과 마음의 고통이 고스란히 남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丁이 의료분쟁에 해박한 변호사나 법무사의 도움을 얻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병원 측의 책임을 입증하는 데도 훨씬 수월했을 테고 지금보다 마음의 부담도 덜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