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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노릇하면서 빛만 많이 졌다

오작교 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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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일기일회(一期一會) 법정스님 법문집
음력 7월 15일 백중날이자 양력으로는 8월 15일 광복절인 이날, 새벽부터 이슬비가 뿌리고 아트막한 산들에는 연무가 어렸다. 법회가 시작될 즈음에는 비가 그치고 날이 무더워졌다. 법당 양옆에는 한여름 더위를 조소하듯 주황색 능소화가 만발했다. 법문 시작 전 스님이 청중을 향해 “지난 여름 잘 지내셨습니까?” 하고 묻자 청중은 모두 “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스님은 웃으면서 “대답은 ‘네’이지만 힘들었죠? 저도 지난 여름 아주 힘겹게 지냈습니다.” 하고 말했다. 갑자기 육체에 찾아온 큰 병으로 스님에게는 지난겨울부터 여름까지 무척 고된 시간이었다.


    오늘이 여름안거를 마치는 해제일입니다. 90일 전 결제일에 제가 이 자리에서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아마 더위에 다들 잊었을 것입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 는 생활 규범으로 널리 알려진 백장 선사의 법문을 소개했었습니다.

    “어떤 것이 기특한 일입니까?”

    한 수행자의 물음에 백장 스님은 말합니다.

    “홀로 우뚝 대웅봉에 앉는다.“

    대웅산은 백장 스님이 머물던 산 이름입니다. 안거 중에 저마다 자기 삶의 현장에서, 자기 존재 안에 홀로 우뚝 앉아 있었다면 지난 여름이 결코 헛된 여름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 어떤 것이 과연 기특한 일인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삶에서 무엇이 가장 기특한,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신비한 일인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이 기특한 일입니다. 모든 것은 삶에서 시작되고 삶을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에 행복도 불행도, 기쁨도 슬픔도 따릅니다. 우리가 살아 있지 않다면 모든 것이 무(無)입니다. 더위든 추위든, 행복이든 불행이든, 걱정이든 근심이든 모든 것이 우리 자신과는 무관계한 말입니다.

    그렇지만 몸만 살아 숨 쉬는 것을 살아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생물학적인 존재일 뿐입니다. 살아 있어도 이미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죽은 채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든, 욕망에 따르지 말고 자기 자신답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십시오.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이상적인 국가는 아닙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그 어떤 곳도, 돈이 많든 무기가 많든 이상적인 삶을 이루는 터전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들 무엇엔가 쫓기면서 불안하게 살아갑니다.

    자신이 무엇을 우해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저마다 가치판단이 분명해야 됩니다. 반드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각자의 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서로 다르기에 무엇을 위해 사는가도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치판다의 기준은 확고해야 합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행복을 추구합니다. 불행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지금 우리들 자신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가? 각자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지금 나는 행복한가?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는 그다지 많은 물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분수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허욕을 부리기 때문에 결국은 불행해집니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욕망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 욕망이 때로는 사람을 더 나은 길로 밀어 올리는 추진력이 될 수 있습니다. 의욕이 없으면 나아감과 나아짐이 없습니다. 삶에 탄력을 주기 위해서라도 적당한 욕망이나 욕구는 필요합니다. 지금 지구인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도 바로 이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모두가 미국처럼, 서구인들처럼 잘살려고 하기 때문에 이 지구가 견뎌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과도한 소비의 경제 형태로는 지구가 몇 개 있어도 모자랄 형편입니다. 아무리 많은 물건을 가지고 편리하게 살아갈지라도 삶의 근본 터전인 이 지구가 망가지면 더는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전 지구적인 환경 재앙은 인간의 탐욕이 불러일으킨 결과입니다. 인류가 정상적인 삶을 누린다면 이 무서운 기후변화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생각할수록 두려운 일입니다. 당장 내일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경제가 발전하면 우선은 좋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한정된 지구 자원이 고갈되고 생태계가 파괴되는 반대급부를 치러야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강원도가 고랭지입니다. 해발 800미터인데, 올 여름 들어서 폭염주의보가 몇 차례 내렸습니다. 그 고산지대에 일찍이 없었던 일입니다. 열대야 대문에 밤에 그 산중에서 잠을 설치기까지 했습니다. 전에 없던 현상입니다. 고랭지가 그 정도이면, 고랭지 아닌 곳은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이 모두가 우리들 자신이 일으킨 변화입니다.

    행복의 비결은 적은 것을 가지고도 만족할 줄 아는 데 있습니다. 자기가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를 정확히 알고 그것에 맞게 채워야지, 욕망이 지나치면 넘칩니다. 넘치면 자기 것이 아닙니다. 넘친다는 것은 남의 몫을 내가 가로채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기 몫으로 만족하지 않고 남의 몫까지 내가 가로챘기 때문에 넘치는 것입니다. 이 논리를 알아야 합니다.

    소위 경제발전을 위해 석유나 석탄 등 화석연로를 너무 많이 쓰는 바람에 지구가 이렇듯 온실처럼 변해 버렸습니다. 거기에는 저 자신부터 책임이 있습니다. 저 역시 온실가스를 만드는 60억 분의 1입니다.

    나라마다 기후변화를 두려워하고 그 원인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경제 살리기만 외쳐도 한 나라의 정치 지도자로 뽑아 주는 그런 세태 아닙니까? 누군들 경제를 살리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경제는 여러 가지 목합적인 현상이 얽히고설킨 상관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구호만 가지고 경제를 살리고 죽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 헛된 구호에 더 이상 속지 마십시오.

    한정된 지구 자원을 가지고 인간들이 끝없는 욕심을 부리면 결국 지구에 파국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이든 사회든 분수 밖의 욕망은 불행을 자초합니다. 적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삶의 지혜를 터득해야 합니다.

    오늘이 승가에서는 여름안거 해제일인데, 일명 ‘자자일(自恣日)’이라고 합니다. ‘자자’란, 안거가 끝나는 날 대중들이 안거 중에 지은 자신의 허물을 서로 고백하고 참회하면서 용서를 비는 일입니다. 부처님 당시부터 전해 내려오는 행사입니다. 해젯날 부처님 스스로 먼저 자기 고백을 했습니다. 누가 잘못을 저질러도 안거 중에는 전혀 탓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정진에 방해되기 때문입니다. 안거를 마치는 날, 자신이 지은 허물을 대중 앞에 고백하고, 지적할 사항이 있으면 지적해 달라고 말합니다. 승가의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오늘이 자자일이기 때문에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니 ‘중노릇이란 다른 게 아니라 마치 장애물 경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출가 후 50여 년 동안 장애물경주를 아슬아슬하게 용케도 해 왔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절에 들어와 살면서 이것저것 시주(施主 - 자비심으로 조건 없이 절이나 승려에게 물건을 베풀어 주는 일, 도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의 물건을 너무 많이 축내며 시은(施恩- 시주의 은혜)을 무겁게 졌습니다. 이것은 솔직한 저의 고백입니다. 50년을 밥이며 집이며 옷이며 공짜로 얻어 쓰고, 심지어 자동차까지 타고 다니면서 많은 빚을 졌습니다. 오늘 아침 부처님 앞에 차를 올리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니 참으로 많은 시은을 지며 살아왔습니다. 제가 고생한 것보다는 거저 얻은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매사에 좀 더 너그럽지 못하고 옹졸하게 처신한 점을 뒤늦게 후회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한 일에 비해서 받은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내가 중노릇하면서 빚만 많이 졌다.’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해제일이고 또 제가 중이 된 날입니다. 1956년 7월 보름 하안거 해제일에 미래사(경남 통영시 산양읍 미륵산에 있는 절)에서 사미계를 받고 중이 되었습니다. 저 자신의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니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시은을 너무 많이 지면서 살아왔구나. 내가 세상을 위해서 한 일보다는 받은 것이 더 만구나.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 이것을 기억하고 은혜 갚는 일에 좀 더 노력해야 되겠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자일이고 해서 이렇게 대중 앞에 고백을 합니다.

    남은 여름 건강히 지내십시오.
 
2008. 8. 15. 여름안거 해제
글출처 : 一期一會(법정스님 법문집)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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