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가기
  • 아래로
  • 위로
  • 목록
  • 댓글

잔인 무도해진 우리 인생

오작교 109

0
    며칠 전, 대학의 강단에 재직 중인 한 친지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내가 조계산으로 들어온 후로는 서로가 덤덤히 지냈는데, 17, 8년 만에 듣는 소식이었다. 그분은 이전이나 다를 없이 그 대학에 재직하고 있었다.

   사연은, 강아지 때부터 7년 동안 집안의 한 식구처럼 살아온 개가, 어느 날 도살꾼들에게 붙잡혀가 도살당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너무나 마음이 아파 쩔쩔매다가 산에 있는 나를 생각해 내고 쓴 글이었다. 나무라지 말고 읽어 달라는 사연은 다음과 같았다.

   < 집을 찾아 나섰던 개를 길에서 훔쳐 잡은, 그래서 뜻하지 않게 비명에 간 그 녀석의 말로가 너무 애처롭습니다.

   저는 그동안 가톨릭에 귀의했습니다만, 평소의 생각은 불교 생명관이 훨씬 종교적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일을 당하자 마음은, 어디 고명하신 스님께 달려가 궁금한 것을 묻고 싶었습니다. 윤회니, 개의 혼백 문제니, 왜 개가 그처럼 인간을 따르는지, 그 개는 어디에 환생해 있을까. 또 그 개의 숙명이 비명에 가도록 마련되어 있었던가. 그리고 그런 축생에게도 업이란 개념이 해당하는지, 비명에 간 그 개의 혼백을 달래는 방도는 없는지…. 등을 여쭙고 싶었습니다.>

   나무라지 말고 답장해 달라고 편지는 끝을 맺고 있다.

   나는 이 편지를 읽고 나자 문득, 몇 해 전 오대산 지장암에서 실제로 있었던 '다람쥐를 위한 49재'의 일이 떠올랐다.

   산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가을이 되면 다람쥐들은 겨울철 양식을 준비하느라고 아주 분주하게 내닫는다. 참나무에 오르내리면서 도토리를 턱이 불룩하도록 입안에 가득 물고 열심히 나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혹은 밤나무에서 알밤을 물고 땅속의 글로 들어가는 모습이 자주 눈에 핀다.

   그 절에 살던 한 비구니가 다람쥐의 이런 추수하는 광경을 지켜보다가 그 굴을 파보았다. 그 땅굴에서 도토리와 알밤이 소두 한 말 남짓 저장된 것을 발견 하고, 이게 원 떡이냐 싶어 도토리묵을 해석을 요량으로 죄다 꺼내었다.

   그다음 날 아침 섬돌 위에 벗어놓은 신발을 신으려고 했을 때 섬뜩한 광경을 보고 그 스님은 큰 충격을 받았다. 겨울 양식을 모조리 빼앗긴 다람쥐는 새끼를 데리고 나와 그 비구니의 고무신짝을 물고 죽어 있었다. 이런 다람쥐를 어찌 미물이라고 지나쳐 버릴 수 있겠는가.

   그 비구니는 뒤늦게 자신의 허물을 크게 자책하였다. 자신의 고무신짝을 물고 자결한 그 다람쥐 가족들을 위해 이레마다 재를 지내어 49재까지 지내주었다고 한다.

   자신의 몸을 보신하기 위해 개를 때려잡아 먹는 일이 아직도 우리 둘레에는 여름철마다 버젓이 성행하고 있다. 리 둘레에는 여름철마다 버젓이 성행하고 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개를 그냥 죽이지 않고 목에다 밧줄을 걸어 나무에 매달아 놓고 몽둥이로 폐 죽인다는 것이다. 그래야 개고기가 맛이 있다고 하니, 이러고도 우리가 이성과 양심을 지닌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말 못하는 짐승을 거저 잡아먹는 것도 끔찍한 일인데, 자기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 산 채 매달아 놓고 몽둥이로 때려서 잡아먹는다니 얼마나 잔인무도한 짓인가. 개들한테는 미안한 표현이지만, 거죽은 인간의 탈을 썼으면서도 하는 짓은 개만도 못한 인종 말자들이 아닐 수 없다.

   인과(因果)가 있고 윤회가 있다면, 짐승한테 몹쓸 짓을 한 인종들은 이다음 몸소 그런 짐승의 몸을 받아 자신들이 행한 잔악한 행위만큼 스스로 받게 된다는 그런 인과의 가능성도 한번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한국 가톨릭 신부들이 걸핏하면 개고기 파티를 하는 걸 보고, 외국인 사제들은 깜짝 놀란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

   낙태까지도 반대하고 있는 가톨릭의 입장에서 반성해 볼 일이 아닌가 싶다.

   요근래에 들어 한국인의 인성이 얼마나 잔인해지고 있는지, 같은 한국인의 처지에서 섬뜩해질 때가 있다. 얼마 전 보도를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소를 잡을 때도 일부 못된 소백정들은 소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소의 다리를 분질러 차로 질질 풀고 다니다가 물을 먹게 하여 잡는다니, 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도한 짓인가. 이런 짓으로 해서 번 돈으로 과연 잘살 수 있겠는가. 동방예의지국의 자손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잔인무도한 인종이 되고 말았는지, 같은 허울을 쓰고 있는 인간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의 업(행위)에 따라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저마다 다를 뿐, 생명의 뿌리는 똑같다. 모든 생물은 생명의 한 뿌리에서 나누어진 가지들. 짐승이건 사람이건 하나뿐인 목숨의 소중함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사람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정당화되는 일도, 생명의 바탕에서 보면 정당화될 수가 없다.

   영화 <베어>에서 아기곰과 어미 곰이 나누는 행위를 보면서 생명의 근원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생명이 고귀함은 거기 따뜻하고 부드러운 자비(사랑)가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이 되느냐 비인간이 되느냐는 이웃(같은 생물)에 대한 자비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것이다.
<90. 9>

글출처 : 버리고 떠나기(法頂 스님, 샘터) 中에서......
공유
0
댓글 등록
취소 댓글 등록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삭제하시겠습니까?

목록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법정스님의 의자 1 오작교 22.08.06.11:59 11986
normal
오작교 25.08.18.11:56 109
301
normal
오작교 25.06.11.10:23 335
300
normal
오작교 25.04.01.09:36 698
299
normal
오작교 25.02.28.10:09 898
298
normal
오작교 25.01.16.10:15 1049
297
normal
오작교 25.01.16.09:34 1057
296
normal
오작교 24.11.20.15:59 1222
295
normal
오작교 24.08.23.10:35 1503
294
normal
오작교 24.07.03.13:00 2041
293
normal
오작교 24.06.05.13:56 2151
292
normal
오작교 24.02.26.11:16 2309
291
normal
오작교 23.12.15.10:56 2206
290
normal
오작교 23.07.15.15:03 2382
289
normal
오작교 23.07.15.14:07 2320
288
normal
오작교 23.06.28.09:33 2383
287
normal
오작교 23.06.28.09:14 2435
286
normal
오작교 23.04.27.15:33 2275
285
normal
오작교 23.03.21.08:36 2247
284
normal
오작교 23.03.21.08:10 2292
283
normal
오작교 23.01.25.09:23 2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