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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계에서 배운다

오작교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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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계는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되어 간다. 골짜기를 흐르는 시냇물은 어제의 그 물이 아니고, 나뭇가지에서 돋아난 잎도 작년에 달려 있던 그 잎이 아니다. 철 따라 찾아온 새들도 소리는 비슷하지만 지난해 찾아와 깃을 치던 그 새들만은 아니다. 이처럼 자연계는 늘 새롭게 신진대사를 이루면서 그 생명력을 이어간다.

   만약 고정된 채 새로운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죽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의 몸도 거죽은 늘 그 사람 같지만 미세한 조직인 세포는 끊임없이 생주이멸(生住異滅) 하면서 그 생명력을 지속한다. 어디 육신만이겠는가. 의식의 흐름도 어떤 틀에만 갇혀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이루고자 한다.

   무상(無常)하다는 말의 본뜻은, 이처럼 항상 변해 가는 우주의 실상을 두고 한 말이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은 그 변화 중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철 따라 옷을 갈아입듯이, 개인의 삶도 때로는 새로운 변모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늘 제자리걸음만 되풀이한다면 그의 삶은 새로운 창조를 가져올 수 없다. 그 개인의 정체된 삶뿐 아니라 그와 관계된 세계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관념적인 이론은 접어두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기로 한다. 그것도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려고 한다.

   이 산중에 들어와 어울려 살면서 나는 분에 넘친 몇 가지 소임(직책)을 한 몸에 겸직해 왔다. 수련원장직과 보조 사상연구 원장의 자리 가 그것이다. 생래적으로 나서기를 싫어하는 성미지만, 일을 위해 누군가 해야 할 일로 생각되어 둘레의 뜻을 받아들여 한시적으로 그 일에 임해 왔었다. 그러면서도 한 사람이 두 가지 일을 겸한다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고 스스로 생각해 왔었다. 기회가 오면 그 짐을 나누어 가져야겠다고 별러왔었다.

   올여름 결제일에 답안을 내려 산중임회(총림 임원회의)에 수련 원장직을 내놓았다. 이 글을 읽는 일반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솔직한 내 뜻을 밝히려고 한다. 첫째, 상설수련의 기구가 아닌 현재의 수련기구에서 '원장'의 자리는 불필요하다. 여름 한철 치르는 수련회를 가지고 거기 원장의 직책을 둘 필요는 없다. 상설 수련장이 있어 연중무휴로 수련이 계속되면 그런 직책도 필요하겠지만, 현재 같은 경우는 한낱 '얼굴마담'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송광사 수련회는 자타가 공인하다시피 이제는 그 자리가 잡혀 있어, 누가 주관하더라도 큰 차질 없이 수행되리라 믿는다.

   셋째, 기회 있을 때마다 수련원을 지을 거라고 수련생들에게 말을 해왔는데, 현재의 모든 여건과 나 자신의 능력으로는 그런 일을 할 수 없음을 이 기회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하게 된 점 사과드리고 싶다.

   넷째, 내 자신 20년 가까이 수련회 일에 관계해 오면서 그때마다 절실히 느낀 점은, 더 효율적인 수련을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의 개발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신한 두뇌들이 이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커가는 후배들의 육성을 위해서도 '노병들'은 서서히 물러나야 한다.

   다섯째, 화두선(話頭禪)만을 수도의 지상과제로 삼고 있는 전통 사찰에서, 초기 불교와 현재의 상좌부(上座部)불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관법(觀法)에 대한 오해와 이에 따른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이는 독립된 수련장이 아니고 전통 사찰에서 부설기관으로 있는 한 치러야 할 과제다. 지도노선의 혼선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불교 전체에 대한 균형 있는 이해와 '자신 있는 선 체험자'가 직접 수련의 지도에 나서는 것이 이상적인 배려일 것이다.

   자연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베풀면서 깨우쳐주는 위대한 교사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들의 분수와 역량과 진퇴를 그때그때 암시해 주는 고마운 교사다. 이런 교사를 가까이서 모시고 살면 사람 이 덜 찌들게 될 것이다.
<90.6>

글출처 : 버리고 떠나기(法頂 스님, 샘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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