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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戒)의 공덕

오작교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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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봄철이면 이름있는 큰 사찰마다 여러 가지 불사(佛事)가 행해지고 있다. 절에 따라 불사의 명목은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은 보살계 살림(수계의식)이다. 연년이 변함없는 똑같은 되풀이를 보면서 언제까지고 이래도 되는지, 이런 행사가 진정한 불교의 행사인지 스스로 묻고 싶어진다.

   며칠 전 고속버스 안에서 우연히 만난 한 노보살님은 올봄에도 거르지 않고 세 군데 절에 가서 똑같은 보살계를 받았노라고 하면서, '보살계를 많이 받으면 죽어서 좋은 데 간다면서요?'라고 물어 왔다. 그 자리에서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그때의 그 물음이 이따금 내 의식 속에서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범망경(梵網經)> 보살계 서문에도 나오듯이, '계(戒)를 지니면 어두운 곳에서 등불을 만난 것과 같고, 가난한 사람이 재물을 얻은 것과 같으며, 병자가 쾌차한 것과 같고, 갇혔던 사람이 풀려나온 것과 같으며, 타향으로 헤매던 나그네가 고향집으로 돌아온 것과 같다'고 하였다.

   부처님이 열반에 든 후에는 누구를 의지해 스승 삼아야 하느냐는 제자의 물음에 부처님 자신도'계로써 스승 삼으라'고 하였다.

   계는 어떻게 살겠다는 다짐이요 맹세다. 그것은 온갖 모순과 갈등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들 삶의 질서요 청정한 생활 규범이다. 청정한 생활 규범을 지니고 사는 것과 아무 규범도 없이 무질서하게 되는 대로 사는 것과는, 삶의 태도와 그 질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리가 계를 받는 것은, 받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지 않고 지키는 데에 뜻이 있다. 흔히 들기 좋은 말로, 앉아서 받고 일어서서 파할 지라도 공덕이 된다는 소리를 서슴없이 하고 있다. 물론 한번 결심한 다짐이요 맹세이기 때문에 마음에 심어진 그 씨앗은 항상 자기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또한 언젠가 그 씨앗은 움이 트고 꽃이 페어 보리(폼옷)의 열매를 맺게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삶에 투철한 반성도 없이 한해에 몇 차례씩 의례적으로 해마다 똑같은 되풀이를 한다면, 모처럼 마음속에 새긴 그 다짐과 맹세도 소홀해지고 무의미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습관성 의약품과 같아서 원인 치료가 될 수 없다.

   계를 받으면 그 공덕으로 해서 죽어서 좋은 데 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계를 받는 것은 죽은 뒤를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들 삶을 그 청정한 규범으로써 개선하는 데에 근원적인 의미가 있어야 한다. 종교를 위해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사람이 만들어놓은 것이 종교 아닌가. 자비로 충만한 보살이 되기 위해 보살계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받았다면, 이들은 보살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보다 삶의 자세와 그 바탕이 몇 곱으로 향상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흔히 보면, 보살계를 무수히 받고 수십 년 절에 다니는 사람들일수록, 보살계가 무엇인지 불교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보다 훨씬 편협하고 옹졸하고 너그럽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법 당에서는 지금 한참 법문을 하고 있는데 법문을 들지 않고 미리 잠자리를 차지하여 버티고 눕는다든지, 공양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도 공양간에 찾아가 음식은 챙기는 일을 불사 때마다 자주 목격한다.

   이런 경우 설사 골백번 보살계를 받은들 무슨 공덕이 되겠는가. 보살계를 받았으면 집 안에서건 집 밖에서건 보살계 제자답게 자비스럽고 너그럽게 처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보살'답지 못한 행동양식들 때문에 정작 불사에 참례하고 싶은 양식 있는 신도들이 불사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법사들은 일반 신자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어려운 법문을 할 게 아니라 불자들의 일상적인 마음가짐과 행동양식부터 가르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불사를 주관하는 주최 측에도 문제는 적지 않다. 불사에 몇사람 동참했느냐에만 관심을 두지 말고, 어떻게 하면 보다 불교다운 행사가 될 것인지, 어떤 프로그램으로써 신도들의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이끈 것인지 미리부터 연구하고 반성하고 새롭게 추진해야 한다.

   공덕이 한량없다는 그 보살계를 대개의 스님은 일생에 한 번밖에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신도들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계는 똑같은 계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받는 데에 뜻이 있지 않고, 몸에 그림자 따르듯 일상생활에 지니고 행하는 데에 그 의미가 있음을 거듭 상기할 일이다.
<90. 5>

글출처 : 버리고 떠나기(法頂 스님, 샘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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