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고 - 피고인 - 피의자

 ■ 기소유예 - 선고유예 - 집행유예

 ■ 항소 - 상소 - 상고 - 항고

 ■ 고발 - 고소 - 기소 - 제소

 

   언뜻 보면 모두 아는 낱말 같다. 그런데 막상 구별해서 설명하려면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선택형 문제로 접근해보자. 다음 사례를 보고 괄호 안에서 알맞은 말을 골라보자.

 

   A씨와 B씨는 직장 선후배 사이인데 항상 티격태격하면서 지냈다. 평소 선배 A 씨에게 불만이 많았던 B씨는 술에 취해 막말을 했다. “야, 네가, 그리 잘났어? 나이도 어린 게 선배면 다야?” B씨는 급기야 A씨의 멱살을 잡아 흔들고, 주먹까지 날렸다. 참다못한 A씨도 B씨를 밀치는 등 드잡이를 벌였다. 일이 커지자 경찰까지 출동하게 됐다. 

 

   경찰서에서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을 상해죄로 (고소, 고발, 제소)했다. 사간을 담당한 형사는 두 사람을 (피의자, 피고인) 신분으로 조사한 뒤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A씨에 대해서는 B씨의 폭행을 방어한 측면이 강하고, 멱살만 잡았던 점을 감안하여 (기소유예, 선고유예)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B씨는 먼저 폭력을 행사하고 싸움을 유도하는 등 죄가 인전된다며 검사가 법원에 (기소, 제소) 했다. B씨는 (피고인, 피고)이(가) 되어형사법정에 섰다. B씨는 “술김에 실수했따”며 선처를 호소했으나 1심 법원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기소유예, 선고유예) 2년을 선고했다. B씨는 “판결에 승복 못 한다”며 2심 법원에 (항소, 항고, 상고)했다. 

 

 

피해자가 “처벌해달라”고 하면 ‘고소’, 제삼자가 하면 ‘고발’

 

   형사사건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말이 고소와 고발이다. 두 용어는 수사기관에 죄를 지은 사람을 처벌해달라는 의사표시라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고소가 형사사건의 피해자(또는 법정대리인)가 직접 하는 것이라면, 고발은 제삼자가 하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에는 “범죄로 인한 피해자는 고소할 수 있다”(제223조), “누구든지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할 수 있다”(제234조)라고 되어 있다. 참고로, 수사기관이 아니니 법원 등 다른 기관에 제출한 ‘진정’이나 단순한 범죄 ‘신고’는 고소나 고발로 볼 수 없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어느 유명 여배우는 자신과 관련한 악성 소문을 퍼뜨린 네티즌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어느 대기업이 비자금을 조성하고 관련 기관에 로비자금을 사용한 의혹이 있다며 기업 총수를 업무상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참고로 비밀침해죄, 모욕죄 등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데 이런 범죄를 ‘친고죄’라고 한다.

 

수사기관의 ‘피의자’가 법원으로 오면 ‘피고인’

 

   2016년 한 방송인이 경찰서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하루 전날 밤 빗길에서 교통사고를 냈다. 그런데 그는 당시 음주운전을 했다는 의혹과 사고 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다는 의심을 받고 경찰의 출석요구를 받은 것이다. 이렇게 수사기관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는 사람이 바로 피의자이다. 

 

   ‘피의자’가 경찰, 검찰 등에서 혐의가 인정되어 재판에 넘겨지면 신분은 ‘피고인’으로 바뀐다. 수사기관의 사건을 법원으로 넘기는 것을 기소(공소제기)라고 하는데, 기소 여부가 피의자와 피고인을 정하는 기준이 된다. 기소권은 검사만이 가진 막강한 권한이다(기소와 달리 제소는 국가가 아닌 개인이 법원에 민사소송, 행정소송 등을 제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리하자면 수사 단계에 있으면 피의자, 법원으로 넘어오면 피고인이 된다. 형사 피고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는 무죄 추정의 원칙과 묵비권이다. 이것은 헌법에도 나와 있다. “형사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헌법 제27조 제4항)되며, “모든 국민은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제12조 제2항). 피의자 혹은 피고인이 반드시 범죄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또 한 가지 기억하자. 형사사건의 ‘피고인’과 ‘피고’는 엄연히 다른 뜻으로 쓰인다. 개인 간의 민사사건에서 소송을 당한 사람이 ‘피고’이다. 민사사건은 원고의 청구가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하는 것으로, 자신의 뜻과는 관계없이 상대방(원고)이 소송을 걸어오면 ‘피고’가 된다. 그러니까 ‘피고’는 죄를 지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때로는 국가가 피고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군사정권 시대 구속영장도 없이 수사기관에 불법 구금을 당한 시민이 ‘대한민국’을 피고로 삼은 민사소송에서 승소해 국가로부터 손해배상금을 받기도 했다. 

 

기소유예는 검사가, 선고유예·집행유예는 판사가

 

   법에는 범죄자의 처벌을 유보하는 여러 가지 제도가 있다. 범행동기나 범죄 후 정황, 피해자의 의사 등을 기준으로 볼 때 굳이 처벌할 필요가 없다면 선처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대표적인 것이 기소유예, 선고유예, 집행유예이다.

 

   먼저 기소유예는 검찰의 권한이다. 피의자의 범죄사실은 인정되나 사건이 가볍거나 우발적으로 죄를 저지른 경우 굳이 재판까지 갈 필요가 없다고 보고, 기소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난한 엄마가 배고픈 아들에게 먹이려고 빵 1개를 가게에서 훔쳤다고 가정하자. 그전까지 아무런 전과가 없었다면, 검사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반면, 선고유예와 집행유예는 판사가 판결 선고와 동시에 내린다. 선고유예는 경미한 범인에게 일정 기간 동안 형의 선고를 미루고 유예 기간(2년)이 지나면 형이 없던 것(면소)으로 보는 제도이다. 선고유예는 1년 이하 징역이나 벌금형을 선고하면서, ‘개전의 정이 현저할 때(뉘우치는 빛이 뚜렷할 때)’ 가능하다. 

 

   대법원은 개전의 정이 현저한 때를 “형을 선고하지 않더라도 피고인이 다시 범행을 저지르지 않으리라는 사정이 현저하게 기대되는 경우를 가리킨다”(2001도 6138 판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는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징역·금고를 선고하면서 일정 기간(최단 1년~최장 5년간) 형의 집행을 미루는 것이다. 예컨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이라면 1년간 교도소 생활을 해야 하지만 3년간 아무 탈 없이 지내면 징역살이를 한 것으로 본다는 뜻이다. 한편, 2018년 1월부터는 벌금형에도 집행유예가 도입되었다.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할 경우 정상참작 사유가 있을 때 판사는 징역형과 마찬가지로 집행을 유예할 수 있다.

 

   집행유예 기간을 무사히 넘기면 감옥살이하거나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징역형을 집행한 지 3년 이내에 저지를 죄는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다. 또한 집행유예 기간 중 다른 사건으로 징역형이 확정되면 집행유예는 효력을 잃게 되어 애초에 선고한 형량이 살아난다. 집행유예 조건으로 판사가 부과한 보호관찰, 사회봉사 명령 등을 위반해도 집행유예가 취소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기소유예, 선고유예, 집행유예를 내릴 때 기준이 되는 것은 형법 제51조(양형의 조건)이다. 형법 제51조는 형을 정할 때 

     - 범인의 나이, 성행, 지능과 환경

     - 피해자에 대한 관계

     -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 범행 후의 정황을 참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소유예 처분은 검사의 처분으로 재판하지 않으므로 전과가 되지 않는다. 이와 달리 선고유예와 집행유예는 엄연한 유죄판결이라는 점에서 기소유예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1심 판결에 불만 → 2심은 '항소' → 3심은 ' 상고'

 

   우리나라는 3심제를 두고 있다. 재판에 물만이 있으면 2심, 3심 등 상급법원에 다시 재판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이것을 통틀어 상소라고 한다. 상소에는 1심 판결에 불복하여 2심 법원에 하는 항소와 대법원에 하는 상고가 있다. 

 

   상소를 제기하는 기간은 민사사건과 형사사건이 차이가 있다. 형사사건은 법정에서 판결을 선고한 날을 기준으로 1주일 이내에 법원에 상소장(항소장, 상고장)을 제출해야 한다. 민사사건은 판결문을 직접 받은 날로부터 2주 이내에 법원에 제출하면 된다. 

 

   한편, 항고는 판결이 아닌 법원의 결정, 명령에 대해 불복하는 방법이다. 항고는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하여 피해자가 검찰에 불복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형사사건에서는 상소권 보장을 위해 상급심에서 원심보다 더 중한 형을 선고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이른바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이다. 예컨대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상소를 한 피고인에게 항소심은 무죄를 선고하지 않는 이상,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만을 선고할 수 있다. 다만 이 원칙은 피고인이 상소하거나 피고인을 위해 상소한 사건에만 해당되고, 검사 상소 사건에선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형사소송법 개정(2017년 12월)으로 벌금형 약식명령에 정식재판을 청구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약식명령보다 정식재판 벌금 액수가 많을 수도 있다.

 

   일반인이 복잡한 법률용어를 다 알 필요도 없거니와, 굳이 외울 이유도 없다. 하지만 기본적인 용어를 이해하면 훗날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때로는 법을 아는 것도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