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날 그리워했으리라
글/장 호걸

많은 날 그리워했으리라.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살아가는데 작은 활력소 같았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도 하고
물론 생각나는 그 사람도 한 남자의 부인이 되어 있겠지
나도 한 여인의 남편이 되어 가정이라는 동산을 가꾸며 살고 있다.
그리움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친구의 사촌 여동생이었는데, 오빠 하면서 잘 따라 주었고
그냥 여동생으로 그 이상은 생각지 않았다.

친구가 군에 가던 날,
친구 집에서 송별을 하던 와중에
그 여동생과 여동생 친구들이 몇 명 같이 와서 놀게 되었다.
좌중에서 그녀만이 돋보였다.
내 눈에만 그런지 모르지만 그녀에게 아카시아 향이 났다.
친구는 넌지시 그녀가 여고를 졸업하고
k 전문대 간호과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친구 녀석이 군 훈련소에서 편질 보내왔다,
힘들다는 둥 횡설수설에 자기 여동생과 잘 해보란다.
형님 소리를 듣고 싶다나,
하여간 그 계기로 우린 자주 만나게 되었다.
한 살 아래인 그녀는 늘 오빠라고 불렀다.
오빠가 뭐야, 좀 진전된 호칭이 없을까? 자기라든가 뭐~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나도 군 입영통지를 받고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녀는, 입대 안 하면 안 되느냐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떨어져 지낸다는 건 상상도 않했단다,
남자는 군에 갔다 와야 진정한 남자 아닐까,
30개월만 기다려
진정한 남자가 되어서 돌아올게,

친구는 제대하고 회사에 취직을 했단다.
한번인가 두 번인가 면회를 왔다,
편지는 주고받았지만 그녀의 소식이 궁금했다.
그녀는 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졸업하고 강원도 어느 병원에 간호사가 되었다는 말 뿐,
그 이후 소식이 끊겼다.
친구도 직장생활에 쫒기다 보니, 서로 안부만 알 뿐,
세월이 흘러 나도 제대를 하게 되었다.
제대를 하고 오던 날 부터 어머니에게 시달리게 되었다.
맏이인 나는 어머니 성화에
어찌할 수없이 이웃집아주머니 여동생과 선을 보게 되었다.
지금 내 아내다.

나도 나이를 먹고 있는가,
문득, 텅 비어 있는듯한 가슴으로,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여운 같은 것이 찾아오더라,
비몽사몽 간에 그녀의 이름이 떠올랐다.
어찌한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리웠다, 보고 싶었다
세월만큼 변했을까?
아직도 그때 만남의 얼굴일까?

부부라는 것이 참으로 이상 하더군 그냥 미워지다가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어지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나 아침을 챙기는 아내의 모습이
참으로 오늘따라 고맙더라, 해서 넌지시 여보 고마워!
했더니, 이 양반이 뭐 잘못 먹었느냐 는 거야,
흐흐, 평소에 그런 말을 자주 했더라면 점수라도 받을 텐데,
오늘은 영락없이 좀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아이들도 소리없이 웃는다.
나도 우스웠다.

이것저것 챙겨 주는 아내여, 아침에 한 말 진심이 이였어,
그녀도 이렇게 살아가겠지,

친구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모든 식구가
대구로 이사하여 식당을 한다는 소문이고,
그러다 보니 그녀의 소식도 끊겨 알 수는 없지만
내게는 세월을 먹지 않은 그녀로 남아
만약, 언젠가 마주칠 땐, 나는 그녀를 금방 알아볼 수 있을꺼야
내 가슴속에 그대로 있는 그녀,

가슴이 뛴다, 아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