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밤에
글/장 호걸

누구나 겪어 보는 일일 것이다. 옛추억이란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싫지 않고 즐겁다.
남이 말하는 추억담도 내 것 인양 언제나 옛노래 듣듯이 좋다
모든 것이 그립게 느껴지는 눈 오는 밤에
이름들을 하나하나 눈 위에다 써보기도 한다.
또 해마다 겪는 아픔이 있다. 달랑 한 장남은 달력을 보며
그래도 새로운 다짐이나 새로운 미래를 꿈꾸기도 하는데
한 해를 보낸다는 것이 추억을 담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더 보듬고 오순도순 사는 것인지 모른다

하늘의 잿빛 구름, 금방이라도 눈이 올 것 같다
유년시절에 눈 오는 밤이면 할머니 무릎을 베고 옛날이야기에
잠이 들곤 했는데, 그때가 참 그립다.
설거지를 하고 있던 아내가 나를 휠 끈 보더니
"여보, 뭐해요.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하며 까르르 웃는다
아내는 며칠 남지 않은 한 해를 보내며 아무렇지 않은가보다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눈이 내리고 있다.
매년 보아온 눈이지만 오늘 밤에는 다 모여든다.

한 장 남은 달력도 며칠 후면 새 달력으로 바뀌어 있겠지
'뭔가 잃어버린 듯도 하고, 가슴을 뭔가가 짓누르고 있다"
라고 말하니까
아내의 일장 연설이 시작된다.
당신은 그게 병이야, 현실이 어떻고 지난 것은 지난 것이지
지난 것에 억 메어 살지 말라는 둥, 호, 그럴 줄 알았지

아들 녀석이 학원에 갔다가 왔다
아들보고 이렇게 눈 오는 밤에는 고구마나 밤을 화롯불에
구워 먹어야 제격이지만 그럴 수는 없고 우리
치킨이나 시켜 먹을까 하니 좋단다.
전화 수화기를 막 들려는 순간 아내가 수화기를 뺏으며
기름기 많은 치킨은 무슨, 하더니
고구마를 쪄 주겠단다.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아내가 내 모든 일에 참견이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아들이 왈,
"엄마, 아빠,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오려고 막차를 타려는데
엄마랑 한 교회에 다니시는 모 할머니가 빈 상자를 손수레에
가득 싣고 끌고 가지 뭐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할머니께 인사는 드렸니"
"손수레를 할머니 댁 까지 끌어다 주고 오지 그랬니"
아들은 엄마가 그렇게 다그치지 않아도 할머니 댁까지
끌러다 주고 온 눈치다.
과연 내 아들이다 하는 뿌듯함이 아들 어깨를 툭 치며
"잘했어" 하니까 씩 웃곤 자기 방으로 갔다.

아내보고 "역시 믿는 사람의 아들이 다르긴 다르네! " 하며
아내를 치켜세우니까 아내는 또 교회 이야기뿐이다.
요번 주일은 한해의 마지막 주일이고 가는 해 오는 해
어쩌고 하며 꼭 교회에 함께 가잔다.
"아이들하고 다녀오세요, 집사님" 하며
밖으로 나왔다.
교회 가자는 이야기밖에 못 하나보다 아내는,
이런 날 팔짱을 끼고 눈길을 걸으며 연애시절로 돌아가 보고
뭐, 이런 맛도 있어야 하는데 하며 밖으로 나오긴 나왔는데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아내의 말이 뒤따르고 있다.
"여보 우리 천국에 가서도 꼭 부부로 살아요"
흐흐, 나는 싫은데 말이다.
그러면서도 아내 손에 이끌려 교회에 따라가곤 했던 내가
우습기도 하여 눈 내리는 밤에 씩 웃었다.
눈(雪)도 웃었다,

이렇듯 내 작은 행복들이 추억으로 남아 있겠지,
눈 오는 밤은 그래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