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얼마전 결혼 10주년 기념 여행을 다녀온 기록입니다. 편하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게시판 성격과 맞지 않다면 적당한 곳으로 관리자께서 옮겨 주셔도 무방합니다.
 
 
 
“2박 3일중에 하루는 나를 위해서 낚시를 해도 되잖아, 결혼 10주년 기념일이 당신만을 위한 것도 아니잖아”
“남자가 여자만 챙겨주는 시대는 지났다고, 남자도 여자가 챙겨주는 기념일을 지내고 싶다 이거야”
“그래도 가족끼리 가는 여행인데 당신 낚시 간 동안 애들하고 나는 어쩌라고”
 
 
결혼 10주년 기념여행을 가기로 해놓고 어디로 갈지 상의하다가 또 충돌이 났다.
나는 낙안읍성과 보성차밭을 갔다가 거제로 가서 [외도]를 구경하고 마지막 날엔 통영에 들려 나는 낚시를 하고, 애들과 집사람은 케이블카를 타는 일정으로 가자고 했다.
이에 반해 집사람은 낙안읍성과 보성차밭, 해남과 목포를 들려 올라오는 일정으로 여행을 하자고 했다.
 
 
오름 감성돔이 막 올라오고 있고, 조금 지나면 산란철이 되기 때문에 지금 아니면 언제 감성돔을 잡아볼까 생각하며, 여행 마지막 날 오전 카고던 찌낚시던 해야겠다고 작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거제와 통영쪽으로 가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통영쪽 인낚 조황속보에 올라오는 대형 감성돔은 나의 눈을 확 뒤집어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때문에 일정 잡는데 밀리면 안 된다 싶어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듣고 있던 아들 녀석인 혁호가
“그냥 엄마 말대로 해” 라고 말한다.
혁호의 말에 딸인 지호도
“그래 맞아” 라며 맞장구를 친다.
“이 녀석들이 니들은 왜 엄마 편만 드냐, 아빠가 낚시 좀 하겠다는데”
두 녀석 모두 엄마 말을 들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지들한테 놀아주지도 않고 매일 공부만 시키고 혼내키기만 한다면서도 이럴때는 철저히 엄마 편이다.
아마도 나는 지들한테 혼내는 것도 없고 매일 장난만 치는데 반해 엄마는 매일 공부하며 혼내키니까 이럴 때 엄마편을 들어 점수를 따놓으려고 그런 것 같았다.
“그럼 가지말자, 돈도 많이 들고 낚시도 못하는데 뭐하러 내가 몇 시간씩 운전하면서 다니냐”
라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자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어제 여행일정도 잡지 못하고 하루 낚시하는 것도 이해 못해주는 애들과 집사람이 서운하여 말없이 아침을 먹고 출근을 했다.
 
 
회사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방파제에다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자며 볼락 낚시를 하면 집사람도 반대하지 않을 테고 애들도 아빠와 낚시를 하며 하룻밤 텐트 생활 하는 것도 즐거운 추억이 될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럼 혼자 낚시 가지 않을테니 텐트 가져가서 방파제에다 텐트치고 생활하자”
낮에는 관광하고 밤에는 텐트치고 방파제에서 볼락을 잡을 생각에 퇴근 후 저녁을 먹으며 말을 꺼냈다.
“비용도 절감되고 서로 좋지 않겠어?”
“그래 그럼, 대신 당신이 양보했으니 나중에 혼자 가서 하루든 이틀이든 낚시하고 와”
다음 야영낚시 허락까지 받아서 가게된 결혼 10주년 기념 여행길은 발걸음도 가벼웠다.
5월 2일 새벽 4시경 우리는 2박 3일의 결혼 10주년 기념 여행을 출발했다.
새벽같이 출발하는 이유는 출발하는 날 온전히 하루를 즐기기 위해서다. 아침 먹고 9시에 출발하게 되면 이동하는 거리와 시간 때문에 하루의 반 이상을 까먹기 때문이다.
곤히 잠자고 있는 애들을 안고 내려와 차에 눕히고 출발했다.
 
 
아침을 도로변 정자 비슷한 곳에서 대강 때우고, 낙안읍성에 도착한 것은 오전 개장시간 전이었다. 낙안읍성은 여수에 살며 혁호가 2살 때 와 봤던 곳이다. 지호는 엄마 뱃속에서 몇 개월 지나 배가 불룩할 때 였다. 예전모습 그대로인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성곽에 올라 읍성 안을 내려다보며 옛날 혁호를 안고 사진찍었던 장소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그때는 지호를 뱃속에 넣고, 혁호를 안고 있었으나 지금은 초등학교 2,3 학년이 되었으니 세월이 많이 흐른게 실감이 났다.
 
 
보성다원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입장료도 없었고, 입구의 주차장도 없어 낙엽송 길 옆 공터에 주차를 해놓았었는데 지금은 주차장 규모도 그렇거니와 관광객도 엄청 많았다. 혁호가 이빨이 막 나오던 시절 낙엽송 길에 앉아 나무막대기 하나 들고 이리저리 휘두르며 옷이 흥건이 젖도록 침을 흘리던 그 길을 따라 들어가니 입장료 받는 곳이 나왔다.
 
 
기념품 파는 곳을 지나 차밭을 올라가니 차밭만은 예전 그대로 였다. 산의 반은 녹차 밭으로 이뤄져 있다. 지호를 임신해 있어서 불룩한 배로 뒤뚱뒤뚱 오르던 엄마보다 녹차 밭의 중간 휴식지점을 이제는 애들이 더 빨리 오른다.
 

여수로 낚시 갔다 돌아올 때 형제들과 항상 들리던 순천의 태화정 생선구이 집을 이제는 식구가 들려 점심을 맛나게 먹는다. 반주로 소주 한 병을 둘이 나눠 먹는데 아이스크림보다 더 달콤하다.
 
 
남해고속도로를 달려 통영톨게이트를 지나 거제로 달리기 시작했다.
텐트치고 야영하며 볼락 낚시할 곳을 인낚의 예스아이엠(이하 엠)님께 여쭤보니 칠천도나 가조도를 추천해 주었으나 다음날 외도를 구경하려면 너무 먼 거리였다. 때문에 포세이돈 낚시점이 있는 구조라 방파제에 가기로 했다.
 
 
포세이돈 낚시점에 도착하니 사모님이 오랜만이라고 반가워하신다. 여차저차 해서 물도 떠가고 야영하는데 신세 좀 지겠다고 했다. 고기를 못 잡으면 미안해 하며 냉동실에 있는 생선을 집에 가져가서 먹으라고 챙겨주시는 사모님이, 얼마 전 교통사고로 휴우증이 있다고 했는데 그 때문인지 살이 많이 빠져 보이신다. 사장님 오시면 저녁에 삼겹살 구워 소주 한 잔 하시게 방파제로 오시라 해놓고 낚시점을 나섰다.
 
 
마음 같아서는 낚싯배를 타고 갯바위로 날르고 싶어도 발걸음은 구조라 방파제로 향했다. 방파제에는 낚시꾼들이 벵에돔 낚시를 하고 있었다. 텐트를 치고, 이것저것 정리를 해놓은 후 혁호와 낚시를 해보았다. 저도 해본다고 낚싯대를 달라고 하는 녀석에게 루어 낚싯대를 주니 제법 캐스팅을 하는데 눈 먼 고기도 안 잡혀줄 것 같았다.
 
 
어둑어둑 해질 무렵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점심에 못 먹은 소주가 술술 잘도 넘어간다. 조금 있으니 엠님이 도착하셨다. 차를 가져오셔서 술도 한 잔 못하고 이런 저런 얘기하다가 볼락 낚시에 임했다. 알달딸하니 고기가 물어주면 좋고 안 물어줘도 그만이었다.
방파제가 석축으로 되어있어 낚시하기도 편하고, 몰이 많이 자라있기에 볼락이 제법 나올 것도 같은데 쉽사리 얼굴을 보여주진 않았다.
 
 
외도에는 3번을 왔었다. 한번은 잘 아는 형님이 당시 공안사범으로 수배중 이어서 신혼여행길에 안내를 맡아서였고, 두 번째는 2003년 겨울 가족여행 차 왔었는데 필름카메라가 잘못되어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였다.
 
 
아침 첫배를 타고 갔다 와야 여유 있게 나머지 일정을 소화 할 것이라 생각하여 서둘렀으나 두 번째 배를 타야 했다. 해금강을 들려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고 외도에 내려 애들과 천천히 사진도 찍고 구경했는데도 시간이 남았다. 1시간 30분의 관람시간이 그리 짧은 것은 아니었다.
 
 
구조라 포구에 도착하여 인사라도 하고 가려 포세이돈 낚시점에 들렸더니 점심으로 짜장면을 시켜 주신다. 또한 어린이날 선물이라며 애들과 함께 선상낚시 다녀오라고 사장님의 등을 떠밀어 주셔서 얼떨결에 바다로 나가게 되었다.
 
 
자세채비에 지호가 먼저 도다리를 한 마리 잡았다. 조금 있으니 혁호가
“아빠 왔어”
라며 채비를 감는데 빈 바늘이다.
“고기가 줄을 당겨도 조금 있다가 챔질 하고 올려 챔질이 빠르니 고기가 바늘에 걸리지 않는 거야”
 
 
라고 말했더니 조금 있다가 곧바로 보리멸을 한 마리 한다. 혁호가 보리멸 5마리 내가 3마리 지호가 도다리 한 마리 보리멸 한 마리 엄마가 보리멸 2마리.......
 
 
당진에서 거제도로 놀러온 가족이 생겼다. 함께 동행해야 하는데 야영은 무리였다. 통영에 숙소를 알아보려 은하수 낚시에 전화를 해보니, 방이 두개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뿐이 없다고 했다. 어쩌나 하고 있는데 다른 민박집을 주선해 주신다.
다음날 알게 되었는데, 연휴를 끼고 통영에 관광객이 이만명이 몰려 숙소잡기가 하늘의 별따기 었다고 했다.
 
 
통영 중앙시장에 들려 우리가 잡은 보리멸과 도다리를 합쳐 전복, 참돔, 갑오징어를 준비하여 맛나게 먹고 있는데 은하수 낚시 사장님이 우럭회와 바다장어를 구워 먹을 수 있게 장만해 오셨다.
“여보 낚시 간다고 너무 뭐라 하지마?”
“이렇게 놀러 와서 점심도 얻어먹고 배낚시도 하게해주고, 회에 구이에 나 없으면 어디 가서 이렇게 다닐 수 있어?”
“숙소도 전화 한통화로 해결되고 말이야.......”
자연스럽게 내 어깨가 올라갔다.
 
 
다음날 아침을 일찍 먹었어도 9시 30분이나 되어서야 민박집을 나설 수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려고 서둘렀으나 이미 먼저 오신 분들의 줄이 몇 백 미터는 되었다. 표를 끊고 두 시간이 지나서야 탈 수 있었다.
통영 케이블카는 국내 최장 길이에 멀리 욕지도, 거칠리도 등등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오고 통영시내를 발아래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애들도 신났고, 어른들도 어질어질하지만 손오공이 권두운 타는 기분이 이런것일까를 생각하며 정상에 도착했다.
 
 
원래는 케이블카를 탄 후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진안의 마이산을 들려보려 했으나 케이블카 타는 대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포기해야 했다.
또다시 중앙시장에 들려 여행의 뒷풀이를 하기위한 참돔을 몇 마리 샀다.
 
 
집사람이 동네 에어로빅 학원에 함께 다니는 동생들과의 술자리에서 결혼기념일 여행 다녀 온 후 우리집에서 모이기로 했다고 했다. 술자리의 호기에서 말은 했는데 마음이 바뀌어 그냥 넘어 가려고 전화를 했더니
“언니 야채하고 술하고 준비 다 해놨어”
라고 하는 말에 얘기도 해보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참돔은 역시 껍질을 익힌 숙회로 먹어야 제맛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에 도착하면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고 껍질을 벗겨 포를 떠왔는데 살이 무른게 늘 먹던 그 맛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물고기 모양의 도자기 접시에 참돔을 깔아보았다.
 
 
우리 부부의 결혼 10주년 기념 여행은 이것으로 마감했다. 10년간 큰 의견충돌이나 불만 없이 나와 애들 뒷바라지에 열심히 해준 집사람에게 감사하고 앞으로 20년 기념여행에는 텐트가 아닌 호텔에서 근사하게 보내게 해줄 것을 약속하며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