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은 연휴도 짧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달력을 보니 내년 추석도 마찬가지이다.
개인회사가 아니다 보니 휴일을 더 주는 것도 없고,
더 쉬려면 자기 휴가를 내고 쉬어야 하는데 비축해 놓은 휴가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처가의 옥상에서 바라본 야경]
 
명절휴일에 관해서는 법으로 정해 최소 4일은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명절에 대한 최소 휴일보장은, 광복절을 없애고 건국절을 만들려는 소모적 행동보다 훨씬 생산적일 것이리라. 
OECD 국가 중에 노동시간이 최대인 점을 고려하면 추석과 설에 하루씩 이틀을 더 쉬게 한다고 해서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예전엔 쉬었던 국군의 날, 한글날, 식목일을 없앴으니 그에 대한 보상차원에서라도······.
 
                                      [처가의 옥상에서 바라본 야경]
 
본가가 인천이고, 처가가 서울이라 차가 밀릴 일도 없어 토요일 아침을 일찍 먹고 인천으로 향했다.
집사람이 음식장만 하는 동안 강화에 계시는 올해 나이 백세이신 할머니를 모시러 다녀오고,
애들과 함께 배드민턴과 자전거도 타고 놀았다.
 
                                      [처가의 옥상에서 바라본 야경]
 
집사람은 음식 장만하는 것은 힘들지 않는데, 차례지내고 친정 가는 일이 더 피곤하다고 한다.
눈치가 보이기 때문인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제수씨는 처가가 삼천포라서 명절 때 아예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는데 반해,
집사람의 집은 서울이라 한 시간이면 갈 거리이기 때문이다.
 
                                                   [양송이 버섯]
 
어머니와 제수씨, 형수님들은 빨리 가라고 밀어내는 데도 뒤통수가 간지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인천에서 서울 가는 것이, 당진에서 인천 가는 것보다 더 밀린다.
지나오면서 보니 리빙스타님이 살고 계시는 아파트가 보이는데, 통화가 된다고 해서 들렸다 가기도 그렇고,
애꿋은 전화기만 꺼냈다 넣었다 하였다.
 
                                             [등심과 안창살, 각종 전]
 
정육점을 하시는 처가에서의 저녁은 등심이다. 장인께서는 오랜동안 정육점을 하셨기 때문에 고기에 관한한 전문가이시며,
집사람은 어렸을 적 먹을 것이 없으면 고기를 먹었다고 했다.
오늘의 고기는 소 한 마리 잡으면 한 접시뿐이 안 나온다는 특수부위와 등심이다. 특수부위는 뭐라고 하셨는데 이름은 생각이 안 난다.
 
                               [소 한마리에 한 접시만 나온다는 특수부위]
 
장인과 집사람 나와 셋이서 소주 6병을 비웠다.
처가에 첫 인사를 갔을 때, 그러니까 10년전 팔팔할 때 예비사위 왔다고 술을 마셨었는데 내가 장인께 졌었으니,
장인의 약주실력(?)은 보통이 아니다. 술을 한 방울도 못하시는 장모께서는 항상 우리의 술자리를 못마땅해 하신다.
평소에도 말씀이 많으신 장인께서는 약주가 들어가면 더욱 말씀이 많아지시고, 사위 앞에서 실수 할까봐 더욱 그러하신다.
 

                                         [고기를 다 먹은 후의 비빔밥]
 
술자리가 적당히 무르익어 갈 즈음 장인께서 나를 보며
“여보게, 옛날 경화가 간장게장을 준 적이 있는데 그거 아직도 먹고 있네”
장인께선 나를 정서방이라고 부를 때도 있지만 이렇게 술 한 잔 하는 자리에서는 여보게로 호칭하시며,
집사람에게도 평소엔 에미라고 하시다가 이름을 부르곤 하신다.
 
                                       [처가의 옥상에서 바라본 야경]
 
“아빠 그게 언제 인데 아직도 먹고 있어? 2년은 됐을 텐데”
“먹는다 먹는다 하다가 못 먹고 있었는데 나중에 꺼내보니 살도 무르고, 게살이 녹았지 뭐니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깝고 고기 가는 데에다 마늘, 매운 고추, 고춧가루를 같이 갈아서 보관하고 있다”
“어휴 그거 때문에 내가 가게에 냄새나서 죽는 줄 알았다. 게장이 오래되어 냄새도 냄샌데, 거기다 마늘, 매운 고추까지 같이 갈아 버렸으니 기계에도 냄새가 배이고 아주 고생했다”
 
                                          [장모님의 파무침, 맛 짱]
 
장인께선 활발한 동네 활동과 좋게 말하면 언변, 다른 말로 하면 말씀이 많아서 술친구들이 많이 계신다.
때문에 항상 가게에는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소주 한 잔씩 나누시는 손님 아닌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장모님은 어질러진 정육점의  청소를 도맡아 하시는데 썩는 간장게장 냄새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나 보다.
 
                                      [처가의 옥상에서 바라본 야경]
 
“엄마는 내가 뭘 숨겨놓으면 귀신같이 찾아내는데, 이번에는 못 찾는 곳에 짱 박아 놨다.”
장인어른은 장모님이 못 찾는 곳을 발견했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듯 말씀하신다.
“아빠 버려, 내가 새로 해 줄께”
“그러게요 아까워도 버리세요.”
장모님, 집사람, 나 이렇게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어 버릴 것을 권유했다.
 
                                  [처가의 옥상에서 바라본 남산타워 야경]
 
“어허 모르는 소리 하지 말어 그게 냄새는 나도 라면 끓이거나 찌게 끓일 때 한 숟가락씩 넣으면 얼마나 맛이 좋은데,
내가 발명 했어, 엄마가 못 찾게 해서 다 먹어야지”
“어휴 그 냄새만 생각하면 지금도 속이 울렁울렁하네, 제발 버려요”
“안돼 마저 다 먹어야 해”
“그래요, 그럼 한번 보여줘 봐요”
장인어른은 그것이 마치 커다란 양념의 발견인양 자랑스러운 듯 진지했지만 나와 집사람은 장인 장모님의 대화가 너무 웃겨, 키득키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나 냄새가 나는지, 어떤 형태인지 궁금하기도 하여 보여 달라고 했으나 사정없이 거절 하신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안돼, 옛날 다이너마이트 발명자인 노벨이 폭발실험을 할 때 왜 혼자 했는지 알어?
죽어도 혼자 죽어야 했기 때문이야 탈이 나도 나 혼자만 나야 되니까 다른 사람은 줄 수가 없어”
 
                                               [한가위 보름 달]
 
이런 저런 대화속의 술자리가 끝날즈음 추석의 보름달은 휘엉청 떠올랐다.
장모님의 술자리 종용에 못 이겨 아쉽지만 자리를 접어야 했다. 카메라를 들고 주변 야경도 찍어보고,
보름달에 소원도 빌 겸 옥상으로 올라갔다.
 
                                  [처가의 옥상에서 바라본 남산타워 야경]
 
몇 년 전만 해도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남산타워가 제대로 보였는데, 새로 생긴 건물이 조망을 침해 했다.
그래도 건물사이로 보이는 남산타워가 보기 좋다.
짧은 추석연휴는 이렇게 저물어 간다.
희끗희끗한 구름사이로 보름달을 보며 우리집안의 건강과, 무사안녕, 오짜 조사 등극을 함께 빌었다.
 
                              [처가의 옥상에서 바라본 이슬람사원 야경]
 
다음날 집으로 내려오기전, 장인께 사진 찍을 요량으로 게장갈아놓은 것을 보여 달라고 하니 장모님께 알려 줄까 봐서인지,
보여주기가 민망해서인지 절대 안 된다고 하신다. 


                                      [처가의 옥상에서 바라본 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