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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굶을 정도는 아니에요 / 아버지의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오작교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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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나이인 남편이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실직 당했다. 아내는 주위에서 말하는 ‘삼팔선’이니 ‘오륙도’니 명예퇴직과 관련된 말들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남편의 실직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다가오자 충격을 받았다.

   

   팔팔한 나이에 직장을 그만둔 남편은 기가 죽어 휴대전화가 와도 받지 않았고 바깥출입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아내와 어린 딸이 외출 준비를 했다. 딸이 아빠에게 말을 건넸다.

   “아빠도 같이 가요.”

 

   그러자 남편이 당황하고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빠 회사 가야 해.”

 

   딸이 당돌하게 대꾸했다.

   “아빠 회사 안 나가잖아요.”

 

   딸의 말에 아빠는 당황함과 침울함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아내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딸은 아빠의 실직을 눈치 채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는 짐짓 밝은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어어…. 회사에 정리할 일도 있고…. 뭐 좀 알아볼 일도 있어. 예쁜 우리 딸이 아빠하고 같이 나가고 싶은 모양이니 다음날로 미루고 같이 가지 뭐.”

 

   가족이 함께 외출했다. 백화점에 들러 딸에게 선물을 사주고 점심식사를 같이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올 무렵 아내가 남편에게 나직이 말했다.

   “여보, 오늘 오후에 우리 집을 심방하기로 돼 있어요. 당신이 있으면 뭐라고 하겠어요? 설명하기도 창피하고…. 당신은 어디 가서 시간을 보내다 심방이 끝나면 들어오세요.”

 

   아내와 딸은 먼저 들어가고 남편은 시내에 있는 대형 서점에 들러 책 구경을 하면서 한참 시간을 보내다가 휴대전화로 심방이 끝난 것을 확인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심기가 불편해진 남편은 들어오자마자 화장실에서 담배에 불을 붙여 입에 물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아파트 베란다나 복도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던 남편이 실직 후에는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버릇이 생겼다. 아마도 출근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보이면 이웃사람들이 실직한 사실을 알게 될까봐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해 그런 것 같았다.

 

   아내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기가 죽어있는 남편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이런 상황에 짜증이 앞서 바가지를 긁었다.

   “나가서 피워요. 나가기 싫으면 끊어요! 창피하면 안 피우면 되잖아요! 간접흡연이 얼마나 나쁜지 알잖아요. 담배가 마누라나 애보다 더 좋아? 그 연기 맡고 우리가 폐암이라도 걸렸으면 좋겠어요? 돈도 못 벌면서 이참에 담배 끊어요!”

 

   아내는 말을 내뱉고 나서야 순간 아차 싶었다. 남편이 아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벌컥 화를 내며 쌓였던 울분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내는 속이 상했다. 잠시 후 남편이 밖으로 나왔다.

 

   아내는 남편에게 사과하고 싶었지만 왠지 쑥스러웠다. 남편도 화를 내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침묵을 지키며 TV를 보고, 아내는 돌아앉아 번역 아르바이트를 했다.

 

   배가 고파진 남편이 주방으로 가서 라면을 끓였다. 이때 아내가 일어났다. 그리고 새로 지어 놓은 밥과 미리 만들어 놓은 고기반찬과 새로 담근 김치 그리고 남편이 좋아하는 미역국을 담아 상을 차렸다. 남편은 약간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라면 먹고 배 덜 차면 먹을게. 아깝잖아. 버리지도 못하고….”

 

   그러자 아내가 라면그릇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버리긴 왜 버려요. 이리 줘요. 내가 먹을게.”

 

   아내가 얼른 라면을 먹었다. 남편은 뭉클한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 마. 곧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야.”

 

   그러자 아내도 다정한 표정을 지으며 격려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번역 일을 좀 더 열심히 하면 되니 생활비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안하게 먹고 천천히 알아 봐요. 당신이 받은 퇴직금도 있잖아요.”

 

   남편은 아내의 말에 또다시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내는 냉장고에서 포도주를 꺼내 남편에게 따라주었다.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아내는 남편의 팔짱을 끼었다. 남편은 팔에 힘을 꼭 주고 다른 손으로 아내의 팔을 잡았다. 편안하고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피곤했는지 먼저 잠이 들었다. 아내는 남편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니 남편이 회사 다니던 시절이 떠올랐다. 회사 일을 마치고 자주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취해 들어오는 남편이 얄밉게 느껴졌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했다.

 

   언젠가 술에 취한 남편이 돌아와 소파에 털썩 주저앉더니 이내 잠에 곯아떨어졌었다. 아내는 잠자는 남편의 양말을 벗겼었다. 양말을 벗긴 남편의 발을 본 아내는 가슴이 뭉클했었다. 땀에 밴 양말 냄새와 함께 남편의 발은 거칠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신혼 초에 남편의 발을 씻겨줄 때는 굳은살 하나 없이 깨끗했다. 영업부에 근무하던 남편은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녔으며, 잘하지도 못하는 술을 거래처 접대 때문에 과하게 마셨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때 ‘남편에게 잘해 주어야겠다’는 각오를 했었다.

 

   그럼에도 남편은 영업 실적 부진을 이유로 구조조정을 당한 것이었다. 막상 남편이 실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각오와 달리 때로는 섭섭하게 대한 적도 많았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남편 옆에 누운 아내는 남편의 가슴을 꼭 안았다.

 

   다음날부터 남편은 인터넷이나 신문을 뒤지면서 여기저기에 이력서를 내고 여러 군데 면접을 보았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다단계 판매회사이거나 근무 여건이 경력과는 전혀 맞지 않는 곳이기 일쑤였다.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아내는 남편을 격려했다.

   “요즘 청년실업이 심해 신입사원으로 들어가기도 어렵다고 하는데 직장 구하기가 쉽겠어요? 마음에 맞는 직장이 나타나지 않으면 다시 공부를 시작해 봐요. 국가고시를 보던지 자격증 시험 준비를 하면 어떻겠어요?”

 

   며칠 후, 늦은 아침에 같은 도시에 사는 아내의 언니가 밑반찬을 들고 방문했다. 현관을 열면 정면으로 보이는 것이 안방 침대였다. 처형의 눈에 자고 있는 동생 남편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언니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동생에게 살며시 물었다.

   “아니,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도 자고 있니? 혹시….”

   “아, 아냐. 오늘 월차야. 한 달에 하루 노는 월차 알잖아.”

   “그래?”

 

   얼렁뚱땅 넘기지만 언니는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언니가 돌아가자 남편은 아내에게 말했다.

   “나 내일부터 출근할거야.”

 

   아내가 기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취직됐어요?”

 

남편은 애써 밝은 표정과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변명했다.

   “내가 언제 출근한다고 했지 취직됐다고 했어?”

   “어디로 출근할 건데요?”

   “도서관에 가려고…. 가서 컴퓨터도 하고 자료도 보고, 책도 보고…. 그러다가 내키면 시험 준비하지 뭐.”

 

   다음날 남편은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도서관으로 첫 출근을 했다.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뽑아 마시려고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던 남편은 5만원과 함께 메모지 두 장을 발견했다. 한 장은 아내가 쓴 것이었다.

   ‘여보, 아무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도록 정진하세요. 파이팅! 당신의 아내가.’

 

   한 장은 딸이 크레파스로 쓴 꾸불꾸불한 글씨로 글과 함께 아빠와 자신을 그린 그림이었다.

   ‘아빠 힘내세요. 훌륭한 우리 아빠!’

 

   남편은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다. 메모를 다시 곱게 접어 주머니 속에 넣고는 어깨를 활짝 펴고 뚜벅뚜벅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저녁식사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멸치를 넣고 수제비를 끓였다. 가족이 함께 도서관에 다녀온 이야기 등 대화를 나누며 신나게 수제비를 먹었다.

 

   이때 오래전 고향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는 친정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딸은 평소 건강했던 친정아버지가 관절이 조금 안 좋다고 하셔서 걱정하던 참이어서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그 동안 간간이 전화를 했지만 남편이 실직한 후로는 먼저 전화하지 않았다. 딸은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지금 수제비를 먹고 있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했다. 그런데 수제비 먹는다는 소리를 들은 친정아버지는 갑자기 목소리가 잠기더니 말을 던졌다.

   “쌀이 떨어졌냐? 아버지가 쌀 보내줄게.”

   “에이~ 아버지, 쌀이 왜 없어요. 많이 있어요.”

 

   그동안 친정엄마가 자주 쌀과 채소를 보내주었지만 친정아버지가 쌀을 보내주겠다는 말은 와 닿는 느낌이 달랐다. 남편이 실직했지만 밥 굶을 정도는 아닌데, 자나 깨나 딸 걱정만 하는 아버지는 쌀이 떨어져 수제비를 먹는 것으로 생각한 것 같았다. 아마도 언니가 친정집에 남편 실직 사실을 알린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사위의 실직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딸은 얼른 화제를 다른 이야기로 돌렸다.

 

   며칠 뒤 아파트 경비실에서 택배가 왔다고 하여 받아보니 아버지가 보낸 누런 쌀자루였다. 여느 때 보내주던 양보다 훨씬 많았다. 딸은 순간적으로 고맙고 반갑기보다 짜증이 확 났다. 속으로 ‘누가 밥 굶을까봐…’ 하고 오기를 부리면서 말이다.

 

   시집가서 잘 살지는 못할망정 아버지를 걱정시켜드리는 자신의 처지와 과잉 걱정으로 신경 쓰는 아버지 때문에 속상했다.

 

   딸이 씩씩거리며 친정집으로 전화하자 아버지가 기침을 하면서 받았다.

   “아버지! 누가 쌀 보내라고 했어요? 밥 안 굶어요. 그런데 왜 자꾸 쌀을 보내세요. 쌀 살 돈 없을까봐 그래요?”

 

   한달음에 소리치고 나니 눈물이 막나왔다. 아버지 앞에서는 그 옛날 한없이 투정부리던 만만한 딸로 돌아갔다.

   “얘야, 아버지가 농사라도 지으니 보내주지. 외국 농산물도 개방되고 기력도 달려 이제 너한테 얼마나 더 쌀을 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니 아무 소리 말고 받아라.”

 

   딸의 목울대를 타고 안타까운 서러움이 치고 올라왔다. “도시생활을 할 때보다 고향에서 농사지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딸은 마음속으로 ‘아버지! 아직 정정한데 왜 농사 못 지어요? 아버지가 지으신 쌀 계속 먹고 싶어요’ 하면서 아버지에게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안타까움에 가슴이 아려왔다. 아버지가 보내준 쌀 속에 들어있는 진정한 사랑은 생각지도 않고 남편의 실직이라는 자격지심에 손상된 자존심을 챙기려 했던 자신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딸은 아버지와의 전화를 끊고 나서 죄송하다는 전화를 드리기가 쑥스러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아버지 죄송해요. 이서방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으니 취직은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께서 농사지어 보내주시는 쌀을 받아먹는 지금이 정말 행복해요.♥♥’

 

글 출처: 아버지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이다(윤문원, 씽크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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