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샘터

메마른 삶에 한 주걱 맑은 물이 되기를
  • 돌아가기
  • 아래로
  • 위로
  • 목록
  • 댓글

아빠가 그냥 한 잔 했단다 / 아버지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이

오작교 8

0

0

새벽 2시.

대학생 아들이 밤늦게 인터넷을 하고 있는데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 평소와 달리 술에 잔뜩 취한 아버지였다.

 

“어이구 우리 장남 아직 안 잤어?”

“아버지, 무슨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아버지가 오늘 그냥 한 잔 했단다. 엄마는?”

“주무세요.”

 

아들은 그때 재미있는 게임을 하고 있었고 아내와 딸은 자고 있었다.

 

“얘야, 얘야. 오랜만에 나랑 맥주 한잔 하자.”

“아버지…. 많이 취하셨는데 또 무슨 맥주예요?”

“괜찮다. 너하고 맥주 한잔 하고 싶다.”

 

아들은 약간 짜증이 났지만 하는 수 없이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가져와 아버지와 마주 앉았다. 아버지는 캔맥주를 앞에 놓고는 마시지도 않은 채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

 

“용돈 없지? 자, 여기 있다.”

 

만 원짜리가 여러 장이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렇게 술을 많이 하셨어요?”

“아버지가 오늘 그냥 한 잔 했단다.”

“아, 예…. 아버지…. 많이 취하셨는데 그냥 주무세요. 저는 들어갑니다.”

 

아들은 방으로 돌아와 인터넷 게임을 계속하려고 했다.

 

잠시 후 아버지가 부르자 하는 수 없이 방에서 나왔다.

 

“너 대학 졸업하려면 몇 년 남았지?”

“대학 2학년이니 아직 2년하고 한 학기 남았습니다.”

“그래? 우리 딸내미는?”

“고등학교 2학년이잖아요.”

“그래…. 내가 많이 벌어야 되는데…. 수건에 물 좀 적셔 와서 좀 닦아 줄래?”

 

아들이 수건에 물을 적시러 간 동안 아버지는 방으로 들어가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아들은 평소 아버지께서 퇴근 후에는 반드시 샤워하는 것을 보아 온지라 생전 처음인 아버지의 행동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적셔온 수건으로 아버지의 몸을 구석구석 닦아 드렸다.

 

“아이고, 착한 우리 아들…. 잠깐만 앉아 있어.”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더니 지갑을 가지고 나왔다.

 

“여기 있다. 용돈….”

아버지는 또다시 몇만 원을 꺼내 건넸다.

 

“아버지, 아까 받았는데요.”

“줄 때 받아 둬….”

“알았어요. 아버지…. 이제 주무세요.”

 

아들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컴퓨터와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잠시 후 아버지가 아들의 방으로 들어와 불을 켰다. 아들은 짜증이 나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아버지 그만 주무세요.”

“자 여기 있다. 용돈….”

“예?”

“아버지, 아까 두 번이나 돈 받았잖아요. 이제 됐어요.”

 

아버지는 또다시 몇 만 원을 주었다.

 

“아버지, 회사에서 무슨 힘든 일 있으셨어요?”

“아무 일도 없었어. 오늘 그냥 한 잔 했단다.”

 

아들은 짜증이 났다.

 

“한 잔 한 것이 아니라 열 잔도 넘게 한 것 같은데요.”

“아냐, 이놈아. 우리 딸도 용돈 좀 줘야지….”

“지금 자는데요. 아버지 제발 그만하고 주무세요.”

“내일 우리 딸내미 일어나면 네가 줘라.”

 

아버지가 5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주자 아들은 마지못해 받아두었다.

 

“아버지 이제 진짜 주무세요. 내일 출근하셔야 되잖아요.”

 

순간 술에 취한 아버지의 얼굴에 긴장한 빛이 스치더니 아들의 방에서 나갔다.

 

잠시 후 화장실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아들이 화장실로가 보았다, 아버지가 변기를 향해 토하고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등을 두드려 드렸다. 안방에서 자고 있던 어머니도 일어나 그 광경을 보고는 주방에서 꿀물을 만들었다.

 

어머니는 화장실에서 나온 아버지에게 꿀물을 건네면서 말했다.

 

“평소에 술을 많이 하지 않던 당신이 웬 일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셨어요? 회사에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요?”

“아니…. 그냥 한 잔 했지. 그런데 당신 오늘 예뻐 보이네. 미인인데….”

“매일 보는 얼굴인데 갑자기 무슨….”

 

아침이 되었다. 어머니는 술을 마신 아버지를 위해 북엇국을 끓였다. 식사를 마친 아버지는 출근 준비를 위해 머리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어머니의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리에 에프킬라를 뿌리고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이거 스프레이 아니었어?”

 

아버지는 아직도 술이 덜 깬 상태였다. 아버지는 부랴부랴 머리를 다시 감고 나서는 여느 때와 같이 출근했다.

 

보름 정도가 지났다. 아버지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출근했다. 집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한통의 우편물이 날아왔다. 어머니가 우편물을 열어보자 직장건강보험에서 지역건강보험으로 변경됐다는 내용이었다. 사유는 퇴직으로 되어 있었다.

 

한 번도 회사로 전화를 하지 않았던 어머니는 전화를 걸어 남편을 찾았다. 그러나 남편 대신 “2주 전에 퇴사하셨습니다”라는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순간 어머니는 얼마 전남편이 술에 잔뜩 취해 벌였던 해프닝이 떠올랐다. 구조조정 대상이었던 남편은 그날 퇴직하고 부하 직원들과 마지막 송별 회식을 했던 것이었다.

 

술에 취해 새벽까지 자식에게 여러 번 돈을 준 데는 이제 회사를 그만두게 되어 넉넉하게 용돈을 줄 수 없게 되었다는 아버지의 의식이 짙게 깔려 있었던 것이었다. 평소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수건에 물을 적셔 몸을 닦아달라고 한 것도 자식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아내에게 결혼 후 좀처럼 입 밖에 내지 않았던 “예쁘다”는 말도 “미안하게 됐다”는 생각의 다른 표현이었다.

 

아버지는 그 동안 매일 출근하는 것처럼 하면서 집을 나섰던 것이다.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 난 다음에 가족에게 그동안의 사정을 알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처음 며칠 동안 직장을 구하려고 이리저리 알아봤지만 여의치 않았고 자존심도 상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안 그랬는데 점심시간에 친구들을 만나는 것조차 불편한 느낌이 들어 그만두었다.

 

퇴근 무렵까지 시간을 보낼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어느 날은 기원에 가서 바둑을 두었지만 몇 판을 두어도 해는 중천에 있었다. 어느 날은 차에 등산화와 가벼운 옷을 싣고 산으로 갔다. 등산하고 나서 인근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난 다음에 다시 양복을 갈아입고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던 것이다.

 

글출처: 아버지의 술 잔에는 눈물이 절반이다(윤문원, 씽크파워)

공유스크랩
0
댓글 등록
취소 댓글 등록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삭제하시겠습니까?

목록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normal
오작교 25.12.01.15:40 8
524
normal
오작교 25.11.18.09:06 324
523
normal
오작교 25.11.18.09:02 369
522
normal
오작교 25.11.04.10:03 1797
521
normal
오작교 25.10.28.11:19 1261
520
normal
오작교 25.10.28.09:09 1969
519
normal
오작교 25.10.28.08:56 975
518
normal
오작교 25.10.20.11:06 2294
517
normal
오작교 25.09.30.19:10 2803
516
normal
오작교 25.09.30.18:59 2012
515
normal
오작교 25.09.19.09:32 2516
514
normal
오작교 25.08.22.09:31 5615
513
normal
오작교 25.08.18.10:23 6134
512
file
오작교 25.08.18.09:55 7667
511
normal
오작교 25.07.25.20:43 6181
510
normal
오작교 25.07.25.20:32 6278
509
normal
오작교 25.07.18.09:31 6966
508
normal
오작교 25.07.18.09:25 6215
507
normal
오작교 25.07.09.09:09 6455
506
normal
오작교 25.07.08.09:10 6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