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벽을 다 내주라 / 오늘의 오프닝
오래된 기억의 한 토막. 처마가 낮고 바람이 무시로 새어 드는 옛날 집에는 천장과 맞닿은 높은 곳에 사진들을 걸어 놓았습니다. 그림을 걸어도 목이 아프도록 쳐다봐야 할 곳에 걸곤 했지요. 지금도 그림을 너무 높이 걸어 놓는 집들이 적지 않습니다. 마치 다락에 모셔 둔 꿀단지처럼 말이지요.
적절한 자리에 걸린 그림 한 점은 어떤 가구가 놓인 풍경보다 아름답습니다. 빈 벽에 그림 한 점 걸어 놓으면 그 벽이 이야기를 가진 것처럼 느껴지지요. 꼭 비싼 그림일 필요도 없습니다. 아이가 그린 서툰 그림 한 점도 애정을 담아 어울리는 자리를 찾아 걸면 ‘명화’가 됩니다.
“그림을 걸려면 벽 하나를 다 내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띄엄띄엄 걸지 말고 몇 개의 그림을 한 벽에 오밀조밀 걸거나, 큰 그림 하나를 벽 하나를 다 차지하게 거는 것이 훨씬 멋지다고 하지요. 한 사람에게 마음을 다 내주듯 한 벽을 다 그림에게 내주라는 말이 마음에 듭니다.
글 출처: 김미라(오늘의 오프닝, paper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