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의 시간 /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
보낼 곳 없는 편지는 빗물에 젖어 떠내려가고, 밤 깊어 찬란한 개구리 소리는 울음이 아니라 고독이다. 누가 알 것인가? 눕지도 못하고 선 채 밤을 견뎌야 하는 나무들의 저 오랜 직립을, 벌을 받듯 서 있는 식물의 고행을, 개구리 소리 포장해 너에게 보낸다. 택배가 아니라도 고맙게 받아 들라.
때로는 여기까지가 인연이구나 하고 마음을 접어야 할 사람도 있다. 각각의 인연에도 유효기간이 있는 것이다. 유효기간뿐 아니라 유효거리 또한 있다. 몸의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의 거리도 자연히 멀어지니 그런 사람을 친구로 두면 우정을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가 한다. 유효기간이 다 된 관계를 이어가는 일은 무의미하다. 그렇게 유효기간이 다 된 관계를 가리켜 인연이 다 되었다고 한다.
결핍을 메우기 위해 만나는 상대와의 관계는 십중팔구 갈등과 직면한다. 그런 갈등은 대부분 결핍보다 더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법이니 만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내면의 결핍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결핍을 상대에게 투시하며 상대가 부족해서 갈등이 온다고 믿을 뿐이다.
인간관계가 갈등 국면으로 접어들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상대에게 뭘 바라는지 냉철하게 바라보는 일이다. 내가 바라고 있는 그것이 내 안에 있는 결핍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그래서 내가 이럴 수밖에 없다고 굳게 믿지만, 사실은 내가 이래서 그 사람이 그런 것이다.
나가르주나(공 사상을 통해 대승불교를 널리 알린 불교의 사상가이며 승려. 용수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가 말했다. “우리는 모두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옳은 말씀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시한부 인생이다. 내게 주어진 유효기간이 얼마나 되는지도 나도 모른다. 마켓에 있는 식료품 하나도 유통기간이 있건만 우리는 자신의 유통기간을 모르며 산다. 그러나 소멸하지 않는 존재가 어디 있겠는가. 당신과 내가 어떤 인간관계로 갈등하든 머지않아 우리는 소멸한다. 소멸 앞에서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다 사라지는 마당에 갈등이란 무슨 부질없는 짓인가. 그 시절 나가르주나는 이미 공(空)에 대해 가르쳤다. 공, 비어 있다는 말이다. 알고 보니 다 비어 있는 상태인데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니, 아니면 네가 옳고 내가 그르니 하는 따위의 갈등이 무슨 소용인가.
비어 있다는 말은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 저것에 기대어 이것이 생기고, 이것에 기대어 저것이 생기는 연기(緣起)의 법에 의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는 어디에도 없다. 스승이 있으니 제자가 있고, 제자가 있으니 스승이 있을 뿐, 스승도 제자도 그 하나만으로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나를 인연으로 해서 네 갈등이 생겨나고, 너를 인연으로 해서 내 갈등이 생겨났는데, 나도 없고 너도 없다면 어디에 갈등이란 것이 붙을 곳이 있겠는가. 갈등은 ‘내’가 있다는 생각에서부터 비롯한다. 그런데 내가 어디 있는가? 내가 있다고 하는 그 생각이 너와 나의 갈등을 만들었다. 그러니 울고 있는 개구리여, 나는 없다. 울고 있는 너를 듣는 내 귀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어디에도 내세울 내가 없다. 없음으로써 너와 나의 갈등은 소멸하니 소멸하지 않은 것 또한 없다.
또 하루 나는 인생을 그렇게 소멸시켰다. 아니 소멸이 아니라 소비라고 불러도 좋다. 저마다 잘난 사람과 저마다 유명한 이름과 수행 안 하는 수행자의 성공한 루저들 틈에서 내 인생의 하루를 카드도 긁지 않고 소비했다. 5월이 여름인지 봄인지 모르겠다. 비는 줄기차게 내렸고, 꽃은 억울하게 다 지고 말았다. 모란을 노래하기도 전에 아카시아가 피더니 그마저 내리는 비에 속절없이 떨어졌다. 떨어진 꽃잎은 내년에 다시 피겠지만 내가 보낸 이 봄은 올해가 마지막이다. 시한부인 인생에서 다음 해가 있다고 그 어찌 장담하겠는가.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살면서 우리는 ‘내’가 있다고 내세운다. 모든 것이 공(空)하다고 그토록 일러줬건만 믿지 않는다.
글출처 :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김재진산문집)
때로는 여기까지가 인연이구나 하고 마음을 접어야 할 사람도 있다. 각각의 인연에도 유효기간이 있는 것이다. 유효기간뿐 아니라 유효거리 또한 있다. 몸의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의 거리도 자연히 멀어지니 그런 사람을 친구로 두면 우정을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가 한다. 유효기간이 다 된 관계를 이어가는 일은 무의미하다. 그렇게 유효기간이 다 된 관계를 가리켜 인연이 다 되었다고 한다.
결핍을 메우기 위해 만나는 상대와의 관계는 십중팔구 갈등과 직면한다. 그런 갈등은 대부분 결핍보다 더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법이니 만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내면의 결핍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결핍을 상대에게 투시하며 상대가 부족해서 갈등이 온다고 믿을 뿐이다.
인간관계가 갈등 국면으로 접어들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상대에게 뭘 바라는지 냉철하게 바라보는 일이다. 내가 바라고 있는 그것이 내 안에 있는 결핍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그래서 내가 이럴 수밖에 없다고 굳게 믿지만, 사실은 내가 이래서 그 사람이 그런 것이다.
나가르주나(공 사상을 통해 대승불교를 널리 알린 불교의 사상가이며 승려. 용수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가 말했다. “우리는 모두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옳은 말씀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시한부 인생이다. 내게 주어진 유효기간이 얼마나 되는지도 나도 모른다. 마켓에 있는 식료품 하나도 유통기간이 있건만 우리는 자신의 유통기간을 모르며 산다. 그러나 소멸하지 않는 존재가 어디 있겠는가. 당신과 내가 어떤 인간관계로 갈등하든 머지않아 우리는 소멸한다. 소멸 앞에서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다 사라지는 마당에 갈등이란 무슨 부질없는 짓인가. 그 시절 나가르주나는 이미 공(空)에 대해 가르쳤다. 공, 비어 있다는 말이다. 알고 보니 다 비어 있는 상태인데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니, 아니면 네가 옳고 내가 그르니 하는 따위의 갈등이 무슨 소용인가.
비어 있다는 말은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 저것에 기대어 이것이 생기고, 이것에 기대어 저것이 생기는 연기(緣起)의 법에 의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는 어디에도 없다. 스승이 있으니 제자가 있고, 제자가 있으니 스승이 있을 뿐, 스승도 제자도 그 하나만으로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나를 인연으로 해서 네 갈등이 생겨나고, 너를 인연으로 해서 내 갈등이 생겨났는데, 나도 없고 너도 없다면 어디에 갈등이란 것이 붙을 곳이 있겠는가. 갈등은 ‘내’가 있다는 생각에서부터 비롯한다. 그런데 내가 어디 있는가? 내가 있다고 하는 그 생각이 너와 나의 갈등을 만들었다. 그러니 울고 있는 개구리여, 나는 없다. 울고 있는 너를 듣는 내 귀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어디에도 내세울 내가 없다. 없음으로써 너와 나의 갈등은 소멸하니 소멸하지 않은 것 또한 없다.
또 하루 나는 인생을 그렇게 소멸시켰다. 아니 소멸이 아니라 소비라고 불러도 좋다. 저마다 잘난 사람과 저마다 유명한 이름과 수행 안 하는 수행자의 성공한 루저들 틈에서 내 인생의 하루를 카드도 긁지 않고 소비했다. 5월이 여름인지 봄인지 모르겠다. 비는 줄기차게 내렸고, 꽃은 억울하게 다 지고 말았다. 모란을 노래하기도 전에 아카시아가 피더니 그마저 내리는 비에 속절없이 떨어졌다. 떨어진 꽃잎은 내년에 다시 피겠지만 내가 보낸 이 봄은 올해가 마지막이다. 시한부인 인생에서 다음 해가 있다고 그 어찌 장담하겠는가.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살면서 우리는 ‘내’가 있다고 내세운다. 모든 것이 공(空)하다고 그토록 일러줬건만 믿지 않는다.
글출처 :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김재진산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