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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 나를 격려하는 하루

오작교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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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가구, 낡은 집, 낡은 옷들이 너무나 지겨웠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20년 동안 알뜰히 저축한 돈으로 난생처음 새 아파트를 분양받았습니다. 결혼한 후 처음으로 새집으로 이사하면서 그녀는 결심했습니다. 낡은 것은 하나도 가지고 가지 않으리라. 낡은 것과는 철저하게 결별하리라.

   마침내 그녀는 새 아파트에서 새 가구와 새 가전제품과 새 주방 기구를 펼쳐놓고, 새 옷을 입고 새 이불을 덮는 새날을 시작했습니다. 한동안은 마치 갓 결혼한 신부처럼 모든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삶의 의욕 또한 넘쳤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심한 우울증을 알았습니다.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전보다 좋아졌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우울증은 깊어만 갔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우울증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새것으로만 둘러싸인 환경이 원인이라는 걸 문득 깨닫게 되었던 거지요. 손때가 묻고 이야기가 스며 있는 오래된 물건과 쓰다듬을 옛것이 하나도 없는 생활이 우울의 원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래된 가구를 닦으면서 가구와 이야기하고, 20년 된 옷을 입으면서 옷과 대화를 나누고, 낡은 문을 열면서 문과 소통하는 것이 삶임을 그녀는 그때 서야 알게 되었던 겁니다.


♣                                                         ♣


   손때 묻은 낡은 담요에 애착을 갖는 아이들처럼, 어른들도 자신과 함께 세월을 보낸 것들이 필요합니다.

   잡으면 손에 쏙 들어오는 편안한 만년필, 손 닿은 자리가 반질반질해진 타자기, 빛이 바랬어도 햇살을 훌륭하게 가려주고 온기를 품어주는 커튼, 한번 흘겨보기만 해도 뜯어질 듯 위태로운 이불 홑청, 낡아서 친구처럼 편안해진 의자, 하루에도 몇 번씩 식탁 위에 등장하는 익숙한 그릇들, 속을 뭉실뭉실 드러내는 아기 때의 작은 이불. 이들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우리와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 익숙한 것들이 ‘삶’이라는 다리를 굳건히 받쳐주는 교각임을 새삼 느낍니다.

글 출처 : 나를 격려하는 하루(김미라, 나무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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