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 나를 격려하는 하루
대낮에 한적한 절의 경내를 홀로 걷는 사람이 있다면, 아주 한가한 사람이거나 무척 속상한 사람 둘 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높겠지요.
오래전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마음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화를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차를 몰고 강화도로 갔습니다. 가고 오면서 순한 자연이라도 보면 마음이 좀 다스려지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한낮의 절은 너무나 고요했습니다.
경내를 왔다 갔다 하며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리려고 애쓰고 있는데, 곁은 지나치던 한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화를 내면 가장 먼저 자신이 다칩니다. 화를 낼 때는 몸에 흐르는 피의 성분까지도 달라집니다. 탐(貪), 진(瞋), 치(痴)를 버리고 먼저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화내지 마십시오. 세상을 향해 화를 내는 것은 알고보면 다 그 화내는 것 안에서 자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무섭도록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내리시는 스님 앞에서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화를 다시리지 못해 거기까지 온 것을 알아보신 것도 신기했지만, 화를 내면 피의 성분까지도 바뀐다는 것 또한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화를 내는 것은 그 화내는 것 안에서 자신을 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 또한 소름 끼치도록 전확한 지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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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하게 화를 내어본 사람들은 압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화를 내고 나면 꼭 어딘가 탈이 나거나 앓아눕게 되고, 결국은 자신이 더 고생하게 된다는 걸 말이지요. 그러므로 화낼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좋고, 화를 피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것을 잘 삭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지간한 일에는 화내지 않는 훈련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겠지요.
독일의 경찰 선발 시험에는 아주 독특한 과정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화내지 않는 인격을 가졌는지 테스트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테스트에서 탈락한다고 합니다.
“세상이 내게 커피를 권하듯 화를 권하더라도 화내지 말고 살아야지.”
마음의 텃밭에 그런 씨앗 하나 심어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출처 : 나를 격려하는 하루(김미라, 나무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