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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친다 / 아버지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오작교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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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남매 중 막내딸은 첫돌을 며칠 앞두고 고열에 시달렸다. 겨우 눈만 깜박거리며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누워있었다. 부모는 딸이 어찌될까 속이 탔다. 결국 병원에서 진찰을 한 의사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소아마비입니다.”

 

   부모는 의사 말을 듣고 아무도 눈에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세상에 딸만 보였다.

 

   ‘왜 하필 이런 일이….’

 

   부모는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두려웠다. 그렇지만 딸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자 용기가 솟아올랐다. 그 순간부터 부모와 딸은 끈질긴 운명의 동아줄로 꽁꽁 묶여졌다.

 

   부모는 마음을 다잡고 딸의 치료를 위해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운명의 십자가처럼 부모는 딸을 들춰 업고 몇 년에 걸친 세월을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용하다는 한의원을 찾아 다녔지만 딸이 장애인이 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딸은 결국 척수성소아마비로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2급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막내딸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아예 집을 학교 옆으로 이사했다. 아침마다 4남매가 제각기 시작하는 하루의 일과는 부산했지만 어머니는 항상 소아마비 딸 차지였다. 혈액 순환이 잘 되지 않는 다리에는 두터운 솜을 넣어 따뜻하게 하고, 보조기구를 신기고, 학교에 데리고 가는 일까지 어머니의 몫이었다. 딸은 자신에 대해 자책감이 들었다.

 

   ‘내가 만약 장애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부모님께 이렇게까지 수고를 끼치지 않을 텐데…. 왜 난 장애인이 돼 내 고통을 부모님께 안겨 드리는가?’

 

   어머니는 막내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화장실에 데려가기 위해 2시간에 한 번씩 학교에 가야 했다. 그런데 딸은 일종의 신경성요뇨증이 있었다. 어머니가 오면 화장실에 가고 싶지 않았고, 집으로 가기만 하면 갑자기 급해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어머니는 항상 마음을 졸이면서 틈만 나면 학교로 뛰어가고는 했다.

 

   막내딸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어머니는 딸에게 목발을 짚고 혼자 등교하게 했다, 학교까지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장애인 딸에게는 버거웠다. 특히 비나 눈이 오는 날은 그야말로 고통스런 투쟁이었다.

 

   겨울에 눈이 오는 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어머니는 연탄재를 들고 학교까지 여러 번 왕복해야만 했다. 흰 눈 위에 갈색선이 그어질 정도로 연탄재를 부수어 눈길 위에 깔았다. 그래도 미끄러워 어머니는 딸을 업어야 했다. 집에 도착할 때쯤이면 숨이 턱에 차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딸은 그런 어머니를 보며 문득 어머니의 이마에 흐르는 땀이 눈물로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때 어머니가 혼잣말처럼 나직이 말했다.

 

   “나 죽으면 넌 어떡하니?”

 

   언젠가 어머니와 딸이 함께 걸을 때, 뒤로 아이들이 쫓아다니며 놀리거나 걷는 흉내를 냈다. 순간 어머니는 홱 뒤돌아서서 날카롭게 외쳤다.

 

   “그만두지 못해! 얘가 너한테 밥을 달라던, 옷을 달라던!”

 

   언제나 조신하고 말없는 어머니였지만 몸이 불편한 딸이 이 세상에 발붙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온 몸을 던지는 억척스러움을 발휘했다. 눈이 오면 눈 위로 연탄재를 깔고, 비가 오면 한 손으로는 등에 업힌 딸을 받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우산을 받쳐 든 채 딸의 두 다리가 되고 세상으로부터 방패막이가 됐다.

 

   아버지도 딸에게 격려와 배려로 사랑을 심어주고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날이면 딸은 슬픔에 잠긴 얼굴로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친구들은 기쁜 얼굴로 열심히 운동회에 임하고 있는데 딸은 그늘 아래 쓸쓸히 앉아있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앉아있는 딸의 어깨를 어루만져주며 힘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네가 다리는 불편하지만, 넌 결코 장애인이 아니야. 신체의 장애보다 마음의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 아버지는 네가 밝은 자세로 떳떳하게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기를 원해.”

 

   아버지의 격려는 딸을 명랑하고 강인하게 만들었다. 다리가 불편한 딸은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 열심히 책을 읽었고 사색했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았다. 장애는 장애일 뿐이라는 것을…. 더 이상 다리의 장애가 자신의 꿈을 이루는데 장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딸은 결심했다.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을…!

 

   아버지는 딸이 떳떳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은 오직 남과 같은 교육을 받는 길이라고 판단하고 딸을 장애인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보내는 일에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초등학교 이후 상급학교들은 딸의 신체적 장애를 이유로 입학 허가를 꺼렸다. 어머니가 학교에 가서 사정했지만 ‘예의 바르게’ 거절당했다.

 

   “장애인 학생이 한 명 들어오면 행정이나 교실 배정 등 복잡해집니다. 장애인재활학교로 보내십시오.”

 

   어머니는 교무실을 나오자마자 펑펑 울었다. 어머니는 울음을 애써 감추며 어깨가 축 늘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딸의 눈을 피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결과를 직감하고 헛기침을 했다.

 

   다음날 아버지가 학교로 찾아가 교장을 만났다. 딸의 신체적인 상황과 명랑한 성격, 초등학교 시절의 우수한 성적을 설명하고 사정을 했다. 그래도 여의치 않자 아버지는 장애자와 비장애자가 함께 생활하는 외국의 사례를 들면서 항의하기도 했다. 결국 학교는 입학을 허가하고 1층 교실에 배정했다.

 

   어렵사리 딸이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버스를 타고 혼자 등교하게 했다. 어느 날, 아침에 등교하려는데 비가 내리고 있었다. 딸은 평소보다 일찍 어머니와 함께 집을 나섰다. 어머니는 딸을 업고 버스 타는 데까지 데려주었다. 딸은 중학생이 되어 무거워진 자신을 업은 어머니의 팔이 자주 풀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송구스러운 마음뿐이었다.

 

   어머니는 한 손으로 딸을 받쳐 업고, 다른 한 손에는 딸의 목발 한 개를 들었다. 딸은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나머지 목발 한 개를 들었다. 딸은 어머니가 비에 맞을까 봐 우산을 앞으로 기울이곤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앞이 안 보인다고 하며 자꾸만 우산을 뒤로 젖히라고 했다. 덕분에 딸은 비 한 방울 맞지 않았지만, 어느새 어머니의 얼굴에는 빗물이 턱밑까지 흘러내렸다. 딸은 미안한 마음에 어머니 등에 얼굴을 갖다 댔다. 그리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왜 비를 내려 우리 엄마를 더 힘들게 하는 거야?”

 

   딸은 어머니와 함께 버스를 타고 등교했다. 어머니는 비나 눈이 오면 학교까지 등하교의 힘겨운 배웅을 했다.

 

   며칠 뒤 딸이 수업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동안 보슬비는 그치지 않았다. 등교할 때에는 맑은 날씨였던지라 우산도 없었다.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설 때에는 비가 오지 않아 어머니는 학교로 마중 나오지 않았다.

 

   버스는 정류장마다 정차를 했다. 딸이 먼저 내리는 친구 들을 보니 어머니들이 미리 우산을 들고 나와 있었다. 딸은 어머니도 지금쯤 여느 때처럼 마중 나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버스가 빨리 도착하기만을 바라며 창밖의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은 섭섭했지만 이젠 비가 오더라도 혼자서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어머니께 보여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목발을 짚고 빗속을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했다. 딸에게 있어서 빗길을 혼자 걷는 것은 처음이었다. 두려웠지만 조심조심 걸었다. 그러나 결국 물에 괸 웅덩이를 건너다 잘못하여 넘어지고 말았다. 한 순간에 운동화와 양말이 젖었고 넘어지면서 손으로 물을 짚는 바람에 가슴팍까지 흙탕물이 튀었다. 흙탕물에 빠진 낭패감에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거기 서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창피한 생각에 얼굴이 달아오르고 마음이 급해졌다. 빨리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지만 급히 서두르다보니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일어나려고 하면 주저앉고, 또 일어나려고 하면 주저앉고…. 몇 번이나 해봤지만 허사였다. 이미 바지도 다 젖어버렸다. 그때 눈앞에 의자 하나가 보였다. 그 의자가 있는 곳까지 목발을 옆으로 질질 끌며 필사적으로 기었다. 의자를 짚고 일어나는 데는 별로 힘들지 않았다.

 

   딸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서야 목발을 짚고 다시 걸을 수가 있었다. 딸이 일어나서 막 걸음을 옮기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 우산을 들어 비를 막아주었다. 뒤돌아봤다.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괴어있었다. 딸은 아무 말도 못하고 어머니만 바라보며 한동안 그냥 그 자리에 서있었다. 어머니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너를 줄곧 지켜보았다. 네가 혼자서 걸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냥 내버려둔 거야. 정말 기특하고 장하구나.”

 

   어머니는 눈물을 감추며 딸에게 미소를 보냈다. 딸은 혼자서 해냈다는 뿌듯함 때문에 마냥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소아마비인 딸과 아버지와의 추억은 아름다운 여행과도 같았다. 아버지는 딸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공원을 돌면서 격려의 말을 던졌다. 딸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미래의 꿈을 털어놓으면서 구김살 없이 성장해 갔다. 딸이 시험 공부를 하는 기간에는 평소 술을 즐기는 아버지는 술을 마시지 않고 일찍 퇴근하여 딸이 자기 전에 먼저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학창 시절 딸의 성적은 항상 최상위를 유지했고 친구들도 많았다. 방과 후 특별활동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친구들보다 몇 배는 느리게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 일찍 일 처리를 시작했다. 소풍날에는 남들보다 일찍 출발해 먼저 가있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처음부터 포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부모의 배려와 수고가 가장 큰 힘이 되었다.

 

   딸은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딸은 장애인 운전면허를 따고 자신의 신체에 맞게 개조한 차를 운전하며 학교로 등교했다. 열심히 대학 생활을 보낸 딸은 전체수석으로 졸업 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번번이 취직을 거절당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외국계회사에 취업했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기 몫을 하고 주어진 역할에 정당한 보수를 받겠다는 꿈이 이뤄진 것이었다. 첫 월급을 탄 딸은 부모에게 내의와 양말과 함께 전동발마사지기를 선물했다. 그것은 자신의 불편한 다리를 대신하여 수고를 다해 주신 부모에 대한 고마움의 상징이었다.

 

   딸은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세월이 흐르면서 진급을 거듭하고 고액 연봉을 받았다. 딸은 현실에 안주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벤처기업을 창업하여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는 부모가 딸에게 신체적 장애와 상관없이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정신을 키워준 덕분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딸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벼랑 끝으로 밀쳐내는 세상에 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와 큰 힘이 돼주었다. 아버지는 ‘살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함께 한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어머니는 한 번도 딸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딸은 그동안의 숱한 난관을 덤덤히 뒤돌아보았다.

 

   “내 인생에 수십 번을 넘어졌습니다. 남보다 조금 불편한 신체를 가지고 있기에 좀 더 자주 넘어졌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넘어지기 전에 이미 넘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었습니다. 넘어질 때마다 번번이 죽을 힘을 다해 다시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나는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장애를 안고 세상에 나온 저를 위해 든든하고 강한 지팡이가 되어 주신 분들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든 것은 희망에서 시작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딸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여기고 있다.

 

글 출처: 아버지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이다(윤문원, 씽크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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