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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견뎌 낼 거야 / 아버지의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오작교 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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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전 아내와 사별한 아버지는 결혼을 앞둔 딸과 군복무를 하고 있는 아들을 두고 있었다.

 

   딸의 결혼식을 1주일쯤 앞둔 날부터 아버지는 마음이 이상해졌다. 입맛도 없고, 먼 산 바라보는 사람처럼 멍해졌다. 결혼식 전날 아버지와 딸이 마주앉았다.

 

   “엄마 없이 이렇게 성장해 이제 시집가는 날을 맞았구나. 네가 중학교 2학년 때 엄마는 저 먼 하늘나라로 갔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홀아버지인 내 밑에서 훌륭하게 자라준 너에게 감사하고 싶구나. 엄마가 살아 있어서 네 결혼식이라도 봤으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와 딸은 부둥켜안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한참을 울다 겨우 진정한 아버지는 말을 이어나갔다.

 

   “아빠는 걱정하지 마라. 일에 몰두하면서 외로움을 견뎌낼 거야. 아빠는 이제 조용히 뒤에서 너를 지켜볼게. 좋은 엄마 현명한 아내가 되고, 네가 가진 꿈을 이루고 펼쳐 나가 기를 기원한다. 너는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임을 잊지 말아라. 사랑한다. 그리고 내일 결혼식장에서는 절대로 울지 말자. 기쁜 표정을 짓도록 하자. 잠을 푹 자야 신부화장이 잘 된다고 하니 일찍 자거라.”

 

   하지만 정작 아버지는 밤새 한잠도 이루지 못했다. 방송을 마치는 신호인 애국가가 나올 때까지 텔레비전을 벗 삼아 심란한 마음을 달랬다. 아내 생각도 나고, 딸의 행복에 대한 괜한 걱정도 들었다.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결혼식 날, 아버지와 딸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는 신부가 입장할 시간이 됐는데도 신부가 대기실에서 나오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갑자기 “입장하세요”라고 말했다. 신부도 없는데 무슨 입장이냐고 말할 참이었는데 바로 옆에 딸인 신부가 있었다. 아버지는 무심결에 보기는 했지만 다른 신부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지간히 정신이 없었던 상태에서 곱게 화장하고 은은한 드레스로 온몸을 휘감은 단아한 모습의 딸을 아버지는 몰라보았던 것이다.

 

   딸은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식장으로 입장하면서 아버지의 팔이 그렇게 따뜻한 줄 처음 알았다. 그동안 왜 그렇게 팔에 매달려 어리광을 피우며 더욱 다정스럽게 대해 드리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에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결혼식이 끝나고 딸이 폐백실로 들어가고 나자 아버지는 화장실에 들어가 한참동안 눈물을 흘렸다.

 

   집으로 돌아온 저녁, 불 꺼진 딸의 방을 향해 습관적으로 시선을 돌려 방문을 열려다 몇 번이나 멈칫거렸다. 그때야 딸이 자신의 품을 떠났다는 실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휑한 딸의 방을 서성거리며 가슴속으로 싸한 기운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그래, 내 딸이 아내라는 이름을 새로 얻었지’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딸을 시집보내고 아버지는 서운함보다 기쁜 감정을 앞세우기로 했다. 딸의 빈자리가 주는 허전함이 있었지만 반듯하게 자랐다는 자랑스러움이 뿌듯하고 행복한 느낌이 들게 했다. 아내 생각이 점점 간절해졌다. 결혼식 다음날 아버지는 아내 산소에 갔다.

 

   “이렇게 좋은 날도 보지 못하고 먼저 가버린 야속한 사람…. 기쁨을 나와 함께 했더라면…. 세심한 엄마의 손길이 더욱 필요했는데…. 어린 자식들을 두고 눈을 감기 전에 얼마나 마음에 걸려 했었나. 이제는 걱정하지 마.”

 

   그날 아버지는 주위 사람들과 취기가 오를 정도로 술을 마셨다. 다음날 잠에서 깼더니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오만 데가 쑤시고 결렸다. 몸살이었다. 결혼식 끝나고 친정엄마들이 아파 눕는다더니 자신이 그 꼴이라고 생각했다. 핑계 김에 하루 푹 쉬면서 여러 가지 상념을 떠올렸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아온 지난 세월의 흔적이 되살아났다.

 

   사춘기가 막 시작되던 중학교 2학년 딸과 초등학교 5학년 아들에게 유방암으로 투병하던 엄마와의 영원한 이별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자식들이 감당해야 할 충격에 전전긍긍하다 보니 아버지는 슬픔을 토해낼 여유조차 없었다. 하지만 딸은 어른스럽게 적당하게 슬퍼하고 나머지는 적당하게 속으로 묻어두었다. 오히려 슬픔에 젖어있는 아버지를 위로 하고 장녀로서 엄마의 몫까지 감당하는 그런 딸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버지 친척들을 비롯한 주변에서는 시간을 끌면 점점 힘들어지니 빨리 재혼을 서두르라고 권유했지만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인생보다 자식의 인생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예민한 시기를 관통하는 자식들에게 또 한 번의 상처가 될까 두려웠다. 새엄마를 들이느니 차라리 자신이 엄마 노릇까지 1인 2역을 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새벽에 일어나 식사 준비하고, 도시락 싸고, 집안 청소하고, 세탁기 돌리는 일까지 일체의 가사노동과 교육 문제, 자식들과의 정서적 교감까지 모두 자신의 몫으로 돌렸다. 직장에서의 바쁜 일과와 함께 몸은 고되었어도 마음은 편했다. 양품점에서 딸의 속옷을 고르다 난처했던 기억도 추억으로 남았다.

 

   결혼 후 1년 만에 딸이 외손자를 낳았다. 아버지는 그때 당장 달려가서 축하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산후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중이라 망설여졌다. ‘아내가 살아있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는 꽃집에 가서 꽃이 핀 동양란을 배달하게 했다.

 

   딸이 산후조리원으로 옮겨 몸조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사위로부터 딸이 산후 우울증을 겪는다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는 산후조리원으로 찾아가 딸을 만났다.

 

   “아기가 건강하다니 무엇보다 다행이구나. 혹여 네가 자식을 낳아 보니 엄마 생각이 나서 산후 우울증으로 고생한다면 이 편지를 보고 늘 좋은 생각을 하도록 해라.”

 

   아버지는 봉지에 담아온 것과 함께 편지를 내밀었다. 그것은 딸을 낳았을 때 입힌 배냇저고리와 세상을 떠난 아내가 딸이 시집가서 자식을 낳으면 전해달라고 했던 편지였다.

 

   ‘나의 딸에게. 정말 오래됐겠구나. 지금쯤이면 나를 다 잊었겠지. 그러면 다행이지 뭐니. 네가 크는 걸 봤으면 좋았을 텐데…. 이 배냇저고리를 입은 네가 이제는 자라서 자식을 낳았겠구나. 이 세상에서 어머니가 되는 일은 그리 수월하지 않단다. 너그럽게 마음 가다듬고 좋은 생각만 하여라.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 저 하늘에서 언제나 함께할 거야. 언제나 네 곁에서 너를 지켜주마. 네가 내 딸인 것과 너를 만났던 것이 자랑스럽다. 항상 너 자신에 충실하렴. 너를 영원히 사랑하는 엄마가.’

 

   딸은 어머니의 편지를 읽고 자신이 태어날 때 입었던 배냇저고리를 만지면서 새로운 용기를 가졌다.

 

글출처: 아버지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이다(윤문원, 씽크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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