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랬었구나 / 아버지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딸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지만 그 깊은 사랑을 감춘 체 넌지시 표현하곤 했다.
딸이 학창시절에 밤늦은 시간까지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면 아버지는 자지 않고 기침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러면서 어머니에게 “공부하고 있는 아이한테 미숫가루라도 좀 타서 갖다 주면 안 되나” 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아버지는 가끔 위인전 등 책을 사서 아무 말 없이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했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딸 자신보다도 아버지가 먼저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을 주장했다.
딸의 결혼식 하루 전날에 아버지는 많은 눈물을 딸 몰래 흘렸다. 하지만 정작 결혼식 당일에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딸의 손을 잡고 입장했다. 딸의 손을 놓고 사위에게 인계하면서 “잘 부탁하네”라는 한 마디만을 건네며 고개를 숙였다.
딸은 친정과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딸이 임신을 했다. 아버지는 예전에 아내가 딸을 임신했을 때 했던 것처럼 이제는 임신한 딸을 위해 잉어를 고아서 부지런히 날랐다. 딸이 외손녀를 낳자 아버지는 가물치를 사서 손수 고우면서 아내에게 한마디 건넸다.
“가물치를 몇 십 년 만에 고우네. 당신이 막내 임신했을 때 해보고 처음 하는 것 아닌가 싶어. 이제는 그때 뱃속에 들어있던 그 아이가 아이를 낳아서 가물치를 고우니 이상한 기분이 드네.”
아버지는 딸이 결혼한 지 3년이나 되었지만 마음이 안 놓이는지 자주 안부 전화를 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 딸의 집으로 걸려오는 전화의 대부분은 아버지의 전화로 채워졌다. 안부 전화의 핑계는 외손녀였다. 말을 배우느라 하루 종일 재재거리는 세 살짜리 외손녀와의 통화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오가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새벽 다섯 시쯤이었다. 딸은 갑작스런 초인종 소리에 깜짝 놀라 옆에 있던 남편을 깨우며 마음을 움츠리고 있었다. 이때 바깥에서 익숙한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딸은 얼른 대문을 열어보았다. 걱정스럽고 당황한 표정의 아버지 뒤에는 택시가 서 있었다. 아버지가 타고 온 차였다.
“아버지, 이 시간에 웬일….”
딸은 집에 무슨 안 좋은 급한 일이 벌어졌나 싶어서 놀란 마음으로 더듬거리며 말을 꺼내려했다. 그때 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한마디만 건넸다.
“아무것도 아니다. 잘 있으니 됐다. 나 그만 간다.”
“아버지, 아버지….”
딸이 제대로 인사할 겨를도 없이 아버지는 타고 온 택시를 타고 그 길로 집으로 되돌아갔다.
‘도대체 왜 새벽부터 오셨다가 금세 떠나신 걸까?’
딸은 아버지가 새벽에 온 연유를 알아보기 위해 친정으로 전화를 걸려고 전화기를 들었다. 그런데 전화기에서 아무런 신호음이 들리지 않았다. 딸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리저리 살펴보고 전화 코드가 빠져 있는 걸 발견했다. 한창 개구쟁이 짓을 하는 세 살배기 딸아이가 전화 코드를 뽑는 장난을 또 친 것이었다. 코드를 꽂아 전화를 하자 친정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 너희 아버지 한 잠도 못 주무셨다. 그러니 난들 잘 수 있었겠냐? 한밤중에 가신다는 걸 억지로 말려 그나마 날 밝자마자 택시 잡아타고 가신 거다. 나 원….”
딸은 친정엄마로부터 그 말을 듣는 순간에 울컥 눈물이 배어 나왔다.
‘아, 그랬었구나!’
친정아버지가 밤늦게 딸집에 전화를 했는데 철없는 외손녀가 전화 코드를 빼놓은 것이었다. 그 때문에 여러 번 전화를 걸어도 받지를 않으니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하는 걱정으로 그렇게 밤잠을 설치고 새벽에 찾아오신 것이었다. 자다가 깬 부스스한 딸의 얼굴이었지만 무사함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발길을 돌린 것이었다.
40대 후반이 된 딸에게는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 전화에 얽힌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이 가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딸이 아버지 생일 선물로 최신형 스마트폰을 선물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요금은 제가 부담하기로 되어있으니, 산책하면서 TV도 보시고 마음대로 전화하세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글 출처: 아버지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이다(윤문식, 씽크파워)





